1월 11일(현지 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 한 사무실에서 조선비즈와 만난 정승원 한올바이오파마 대표이사. /샌프란시스코(미국)=허지윤 기자

바이오 신약 연구·개발(R&D) 전문기업 한올바이오파마(009420)대웅제약(069620)의 자회사로, 올해 창립 51주년을 맞았다. 지난해 회사는 양적·질적 성장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았다. 회사의 정체성인 신약 개발 사업에서 의미 있는 신호가 켜진 것이다. 주요 파이프라인인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HL161(물질명 바토클리맙)’의 임상3상 결과를 올해 하반기 앞두고 있다.

또 자가면역질환 치료 항체신약 임상1상과 함께 2상 준비를 해야 하는 파킨슨병 치료 신약과 안구건조증 치료제 ‘HL036(물질명 탄파너셉트)’도 임상3상에 재도전하는 안구건조증 치료제도 있다. 새로운 타깃에 대한 항체 개발 프로그램도 곧 시작할 계획이다.

이달 11일(현지 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공유오피스에서 만난 정승원 한올바이오파마 대표는 “최근 3년이 변화와 도약을 위해 기반을 닦는 시기였다”며 “2024년은 한올바이오파마의 변화가 눈에 보일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8일부터 이날까지 열린 세계 최대 규모의 제약·바이오 투자 행사로 불리는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 참여했다. 현재 미국 보스턴에 거주하고 있는 정 대표는 이번 콘퍼런스 기간 동안 많은 제약바이오 기업과 스타트업, 기관 투자자들과 회의를 이어갔다. 그는 “만날 사람이 많다 보니 아예 샌프란시스코에 사무 공간을 빌렸다”고 했다.

한올바이오파마가 개발한 ‘바토클리맙’은 2017년 미국 이뮤노반트에 이전한 FcRn 항체 신약 후보 물질이다. 자가면역질환은 세균, 바이러스, 이물질 같은 외부 병원균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항체가 자기 몸을 공격하면서 100가지 이상의 질환으로 나타난다. 사람 몸의 모든 장기와 조직에 나타날 수 있는데 갑상선, 췌장, 부신 등의 내분비기관과 적혈구, 결체 조직인 피부, 근육, 관절에 증상이 주로 나타난다. 환자가 많은 류머티즘관절염이나 크론병은 약이 개발돼 있지만 혈소판 감소증, 천포창, 시신경척수염, 다발신경병증 같은 병은 마땅한 약이 없다.

치료법으로 자신의 몸을 공격하는 자가항체 농도를 낮춰주는 방법이 개발되고 있는데 한올바이오파마는 자가항체 분해를 촉진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 자가항체를 몸에 축적시키는 FcRn이라는 수용체를 억제하면 자가항체가 제거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현재까지 여러 기업이 개발 중인 동종계열 약물과 임상 데이터를 비교했을 때 유효성, 부작용, 환자의 투약 편의성에서 우위를 확보한 것으로 평가돼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정 대표는 “FcRn억제제가 자가면역질환 치료의 새로운 표준이 되고 치료 패러다임을 바꿀 것”이라며 “이 치료제가 개발되면 애브비의 블록버스터급 면역질환 치료제 휴미라(성분명 아달리무맙) 이상의 시장이 열릴 것”이라고 했다.

의사 출신 기업가인 정 대표의 이력은 화려하다. 연세대 의대를 졸업해 컨설팅기업 베인앤컴퍼니를 거쳐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마친 뒤 15년 간 글로벌 제약사에서 일했다. 12년간 스위스 생명공학기업 노바티스에서 신경과, 호흡기, 소화기 질환 영역에서 제품개발과 상업화 전략과 마케팅을 맡았다. 벨기에 생명공학기업 UCB에서는 중국과 일본을 맡아 다양한 의약품의 시장 확장을 주도했다. 다음은 정 대표와 일문일답.

-의사 길을 가지 않은 이유가 궁금하다.

“고민과 방황의 시절이 있었다. 공중보건의사 복무 기간을 마칠 무렵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 고민하고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아갈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그리고 평범한 의사의 길이 아닌 다른 길을 가보기로 결심했다. 2000년 입사한 곳이 배인앤컴퍼니였다. 금융사를 포함해 기업을 자문하는 컨설턴트로서의 일은 꽤 잘 맞았다.

하지만 어느 날 ‘의대를 나온 사람으로서 환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지 않겠나’하는 생각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마침 제약회사에서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고, 마침내 제약산업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신약을 개발하는 일을 업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환자를 위한 일이면서 과학을 공부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경험할 기회를 만날 수 있는 일이 즐겁고 재미있었다.”

-대표가 된 뒤 회사엔 어떤 변화가 있었나.

“신약 개발 전략을 계속 강화해 왔다. 미국 보스턴에 사무소와 연구소를 설립하고, 현지에서 연구 인력을 늘리고 인재를 영입했다. 초기 바이오 기업 투자를 진행하면서 투자한 회사들하고 공동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새로운 과학을 보기 위한 목적이기도 하다. 지난해 5월에는 회사가 2021년 시리즈A단계에서 투자해 인연을 맺은 보스턴 소재 신약개발회사 ‘뉴론’과 파킨슨병 치료제를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회사에 막 들어왔을 때만 해도 안구건조증 치료제와 자가면역질환 치료제만이 파이프라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4개 프로그램, 6종의 치료후보물질로 확대됐다.”

-파이프라인은 성장력과 직결된다. 주요 파이프라인 개발 현황을 소개해달라.

“대표적인 파이프라인으로 ‘자가면역질환 치료 항체신약’과 ‘안구건조증 치료 바이오신약’, ‘면역항암 항체신약’, ‘신경질환 치료 신약’이 있다. 근무력증·갑상선안병증·면역혈소판감소증·그레이브스병 치료 신약 HL161과 안구건조증 치료신약 HL036이 현재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항암 분야에선 HL186(고형암)과 HL187(고형암)이 있고, 면역신경 분야에선 HL192(파킨슨병)이 치료신약으로 개발되고 있다. HL036은 연내 임상 3상 진입하고, 임상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올해 하반기에 파킨슨병 치료제 HL192 임상 1상 톱라인 데이터도 발표될 예정이다.”

-글로벌 시장에선 FcRn 억제제인 바토클리맙에 대한 관심이 가장 많은 것 같다.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새로운 표준이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바토클리맙(HL161)은 다양한 자가면역질환을 대상으로 개발 중이다. 미국과 유럽을 포함한 여러 국가에서 중증근무력증(MG)과 갑상선안병증(TED)에 대한 임상 3상을 진행 중이다. 각각 올해 하반기와 2025년 상반기에 톱라인(초기결과) 정보가 나올 예정이다. 염증성 탈수초성 다발성신경병증(CIDP)에 대한 피보탈 임상(상용화 긱전 임상) 2b상 초기 데이터도 올해 상반기 나올 것으로 본다.

프로젝트명 ‘IMVT-1402(HL161ANS)’의 임상 1상 초기 데이터는 지난해 나왔다. 하지만 임상 1상에서 높은 수준의 항체 저해 효능을 나타냈으며, LDL(저밀도지단백) 콜레스테롤 증가와 알부민 수치 감소는 관찰되지 않았다. 갑상선 호르몬이 과잉 분비되는 갑상선기능 항진증인 그레이브스병 환자를 대상으로 바토클리맙의 효능과 안전성을 평가한 임상 2상 초기 데이터도 지난해 말 긍정적으로 나왔다.”

이뮤노반트 IR 자료

- 안구건조증 치료 신약으로 개발 중인 탄파너셉트(HL036)의 경우, 두번에 걸쳐 주요 지표를 달성하지 못했는데도 다시 임상 3상에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누가 ‘삼수’라고 하더라. 앞선 임상시험을 통해서 많은 것을 얻었다. 우리가 얻은 데이터를 따라가고 있을 뿐이다. 데이터를 보면 볼수록 너무나도 명확하게 다음 방향을 제시하고 있으니, 이를 따라가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앞서 진행한 임상3상에서 환자의 주관이 반영되면서 생기는 플라시보, 즉 위약 콘트롤이 제대로 안된 문제가 있었다.

주요 평가 변수로 분류되지 않던 ‘환자 눈물분비량 증가율’에서 유의미한 개선 효과가 나타났다. 이는 안구건조증 치료제 개발 임상에서 굉장히 입증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많은 기업이 애초에 보지 않았던 부분인데 진행된 시험에서 새 데이터가 확보된 것이다. 다시 임상시험을 거슬러 올라 면밀히 분석했고, 우리의 약물이 눈에 염증을 가라앉혀 눈물의 양을 늘리는 특성을 지녔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눈물 분비량을 늘리는 것을 주요 지표로 두고 다시 임상시험을 진행해 보려고 한다. 위험이 있더라도 이를 확인하지 않고 넘어가면 나중에 엄청나게 후회할 것으로 생각했다. 임상3상 데이터가 성공적으로 나온다면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 9부 능선을 넘을 수 있다고 본다. 어려운 길이라서 치료제 개발에 성공한다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수 있다.”

-새로운 타깃을 향한 항체 개발 프로그램도 곧 공개한다고.

“지금은 세부 내용을 밝히기 어렵다. 회사가 항상 새로운 타깃의 새로운 항체를 개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새 타깃을 발굴하기까지 제법 시간이 걸린다.

다양한 방식으로 찾는다. 물질에 대한 확신과 시장에서 제품화했을 때 차별화할 수 있을지 등에 대한 아이디어가 명확해지면 프로그램을 시작할 수 있는데, 어렵게 하나를 찾은 것 같다. 올해 안에, 조만간 공개하겠다.”

-한올바이오파마의 강점으로 ‘개방형 혁신(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이 꼽힌다. 현재의 주요 파이프라인도 해외 파트너사와 공동 개발해 이뤄낸 결과다. 최근 투자한 바이오텍에 대해서도 궁금하다.

“파킨슨병 치료 신약 개발 분야인 뉴론 외에도 여러 바이오텍에 투자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 치료 신약 후보 물질을 개발 중인 미국 보스턴의 바이오기업인 ‘인테론(Interon)’, 미국 하버드대 출신 면역학자 프랭크 보리엘로 박사가 2016년 설립해 면역세포치료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는 ‘알로플랙스(Alloplex Biotherapeutics)’, 세포 리프로그래밍을 통한 치료제를 연구하는 ‘턴 바이오테크놀로지스(Turn Biotechnologies)’가 있다.

다양한 바이오기업에 투자하고 교류하면서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해 개발 기회를 꾸준히 살펴보고 있다. 올해도 바이오텍 투자와 함께 연구 프로그램 발굴과 개발을 위한 협력을 이어 나갈 거다.”

-회사를 어떻게 발전시킬까.

“제가 몸담았던 UCB 같은 기업이 되는 게 꿈이다. UCB는 ‘사이언스’ 즉 연구를 열심히 하는 회사다. 동시에 위험을 감수하면서 과감하게 투자하고 지속해 합병도 하는 회사다. 특정 질환군이 아니라 여러 전문성과 강점을 지닌 회사로 성장했다. 100년이 넘은 역사를 가진 기업인데 벨기에 국민도 회사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