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로 검색에서 나오는 일본 도쿄 줄기세포 시술 병원 외국인 환자 대상 광고/홈페이지 캡처

일본 도쿄에는 미용이나 재생을 목적으로 자가(自家) 줄기세포 시술을 하는 병원을 찾는 것이 어렵지 않다. 지난 30일 구글에서 영어로 ‘tokyo cell therapy clinic’을 검색하자 수십 개 병원과 의원 명단과 광고가 떴다. 검색 결과는 0.5초 만에 633만 개가 나왔다. 구글 광고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도쿄 미나토구의 한 줄기세포 시술 병원 홈페이지를 보니 시술 가격은 80만엔(약 730만 원)부터 1000만엔(약 9100만원)으로 다양했다.

내 몸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데 드는 비용이 80만엔 정도이고, 추출해서 배양부터 주입까지 한 번에 해결하는 패키지 상품은 1000만엔으로 책정돼 있었다. 한국에서는 피부 미용 시술과 성형 수술을 하려고 수천만 원을 쓰는 사람을 찾는 것이 어렵지 않다. 그런데, 도쿄에 가면 1억 원에 줄기세포를 주사로 맞고 젊어질 수 있다. 그러니 10여 년 전부터 한국에서 일본으로 줄기세포 원정을 가는 환자들이 줄을 잇는다.

줄기세포는 크게 배아줄기세포, 유도만능줄기(iPS)세포, 성체줄기세포로 나뉜다. 배아줄기세포는 난자 등에서 추출하는 원시세포이고, iPS세포는 다 자란 세포를 원시세포 상태로 만든 줄기세포다. 세포 재생 효과로 따지면 배아줄기 iPS 세포가 탁월하지만, 윤리적 기술적으로 아직 한계가 있다.

그래서 대중화된 것이 성체줄기세포다. 성체줄기세포는 내 몸 세포가 손상되면, 대체하려고 생기는 세포다. 태반, 골수, 지방 조직에서 주로 추출하는데, 일본에서는 성체줄기세포를 활용한 자가 시술 규제를 획기적으로 풀었다.

방법은 복부 지방 조직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를 배양기에 넣고 그 수를 늘려서 정맥 주사(링거) 형태로 다시 몸 안에 넣는 식이다. 한국에선 줄기세포 배양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지만, 일본은 환자가 자기 세포를 자기 몸에 다시 주입하는 자가(自家) 방식은 의사가 할 수 있는 시술로 본다. 대신 줄기세포를 배양하는 과정이 안전한지만 검증한다.

조선DB

문제는 미용 재생의료 목적의 줄기세포 시술 시장이 커지면서 iPS 세포로 난치병 치료에 도전하는 바이오벤처가 태동하기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줄기세포 연구 활성화를 목적으로 동네 병원에서도 자유롭게 시술할 정도로 규제를 풀었는데, 도리어 미용과 재생의료 시술 쪽으로 연구 인력이 몰리면서 오히려 줄기세포 기술을 신약으로 만드는 산업화는 뒷전이 됐다는 것이다.

노벨상을 수상한 일본 교토대 야마나카 신야 교수팀이 올해 일본 정부 연구지원 프로젝트에서 탈락한 결과의 배경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과학계 관계자는 “iPS 세포 상업화를 위해 일본 AMED에서 1000억 엔(약 1조 원) 가량을 지난 10년 동안 투입했는데, 기대만큼 큰 성과를 못 냈다”며 “일본 정부는 요즘 줄기세포보다는 유전자 치료제로 연구 방향을 선회하는 움직임을 보인다”라고 말했다.

교토대 연구팀은 자신들이 개발한 iPS 세포를 오사카대, 게이오대 등 다른 대학 연구자들에게 나눠주면서 연합군까지 구축했지만, 학계의 연구가 산업화로 연결되지 않았다. 오사카대 병원 심장혈관외과팀은 2018년 iPS 세포로 만든 심장근육 세포를 심부전 환자에게 시술하는 임상 연구 승인을 받았고 2019년 이식할 계획을 밝혔지만, 아직 상업화에 성공하지 못했다. 도쿄대와 게이오대 신경줄기세포 연구팀은 사고로 척수(척추 내 신경 다발)를 다쳐 다리를 못 쓰게 된 환자에게 iPS 척수 신경세포를 이식하는 연구 임상을 승인을 받았지만 감감무소식이다.

◇ 한국에게 일본과 손잡을 기회가 될 수도

iPS 세포를 이용해 파킨슨병 치료에 성공한 한인 과학자인 하버드대 의대 김광수 교수는 “iPS 세포는 이론적으로 어떤 세포로든 분화할 수 있지만 실제 사람에게 주입할 수준의 질 높은 세포를 만드는 것이 절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야마나카 교수팀의 iPS 세포가 환자 맞춤형 세포치료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적 완성도를 갖추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세포치료제를 개발하는 바이오벤처가 교토대 연구팀이 개발한 iPS 세포주가 아니라 자체 세포주를 개발한다는 얘기도 있다. 국내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 바이오벤처 관계자는 “10년 전은 몰라도, 이제 정상세포를 iPS 세포로 분화하는 유전자 기술은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혔고, 일반화됐다”고 말했다. 김광수 교수는 “야마나카 교수가 iPS 세포로 노벨상을 받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경쟁에서 졌다’는 좌절감을 느꼈다”며 “하지만 iPS 세포를 활용해 파킨슨병을 치료하는 치료제를 개발 임상에 성공한 건 우리가 먼저”라고 설명해다.

국내 바이오벤처 업계에 이 같은 일본 상황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일본에서 iPS세포를 활용한다면, 미국, 유럽 등은 배아줄기(ES)세포로 분화한 연구를 주로 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배아줄기세포 치료제 연구가 여럿 진행되고 있다. 연세대 의대 생리학 교실 김동욱 교수팀이 대표적이다. 김 교수팀은 미국 바이엘이 시도하는 배아줄기세포 유래 파킨슨병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김동욱 교수팀이 올해 실시한 배아줄기세포 유래 파킨선병 치료제 비임상 동물실험 결과는 셀(Cell)에서 발행하는 셀 스템 셀(Cell Stem Cell, IF 23.9)에 게재됐다. 김동욱 교수는 “임상용 배아줄기세포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고수율 도파민 신경전구세포 대량 생산법을 개발했다”며 “도파민 세포의 순도도 매우 높고 동물 실험 결과 비교도 우수해 바이엘의 세포주보다 우리가 더 좋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한국이 일본보다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앞서 있다”고 말했다.

NK세포를 연구하는 최승호 파나셀바이오텍 대표도 “일본이 줄기세포 치료를 먼저 하긴 했지만, 최초 연구에서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며 “일본의 병원마다 배양한 줄기세포의 순도와 질에서도 차이가 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한국에서 줄기세포의 질 관리를 명확하게 한다면 오히려 기회가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임상 경험은 부족하더라도 기술적으로 뛰어나다면 따라잡고 뛰어넘을 수 있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