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체중감량 전문 약국에서 젭바운드 출시를 앞두고 SNS에 사진을 올리고 홍보했다./페이스북 캡처

"혹시 위고비에서 젭바운드로 갈아타신 분 없나요? 위고비를 7개월 동안 맞았는데 12㎏ 밖에 감량을 못했어요. 피부도 가렵고요."

미국 제약사 일라이 릴리가 이달 5일(현지 시각) 새 비만약 젭바운드(성분명 터제파타이드)의 판매에 돌입한 직후 아만다 멀린스라는 한 미국 여성이 자신의 페이스북 '젭바운드 체중 조절' 모임에 올린 글이다. 글에서 언급된 위고비는 노보 노디스크의 글루카곤유사펩타이드(GLP)-1 계열 비만치료제이고, 젭바운드는 일라이 릴리가 개발에 성공해 최근 허가를 받은 같은 계열 비만치료제다.

위고비와 젭바운드는 일주일에 한 번 환자가 스스로 맞는 주사 방식의 비만약이다. 체중이 105㎏인 사람이 매주 젭바운드 5㎎을 맞으면 72주 후 몸무게가 평균 16.1㎏이 줄어든다. 매주 10㎎을 투여하면 22.2㎏, 15㎎을 맞으면 23.6㎏이 빠지는 것으로 임상시험 결과 확인됐다. 체중 감량률로 환산하면 위고비는 68주 투여 후 15%, 젭바운드는 72주 투여 후 21%의 몸무게가 줄었다. 젭비운드가 위고비보다 높은 체중감량 효과를 보인다는 뜻이다.

이런 젭바운드가 정식으로 출시되면서 글로벌 비만 시장을 두고 두 회사의 진검승부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현재 연간 3조 원 규모인 비만치료제 시장은 오는 2030년까지 약 40조 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릴리는 젭바운드 정식 판매를 알리면서 마케팅 전쟁을 예고했다. 릴리의 론다 파 체코(Rhonda Pacheco) 당뇨병 비만 담당 부사장은 성명을 내고 "수백만 명의 미국인이 젭바운드를 쓸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고, 홈페이지에는 '단돈 25달러면 젭바운드를 쓸 수 있다'고 홍보했다. 제약업계는 젭바운드가 내년에야 시장에 나올 것으로 예상했는데, 한 달 앞섰다.

젭바운드 한 달 약값은 1060달러로, 1350달러인 위고비보다 20% 싸게 책정됐다. 민간 보험을 활용하면 가격은 더 떨어진다. 젭바운드는 이달 1일 미국 민간보험인 익스프레스 스크립트와 시그나헬스케어에 급여 의약품으로 등재됐고 이달 15일부터 시그나 헬스케어 처방집에 추가된다. 이들 보험사 가입자는 의사가 처방하면 월 25달러에 이 약을 구입할 수 있다.

릴리는 두 개 보험사 이외에 보험사들과 협약을 맺고 할인카드를 발급하기로 했다. 이 할인카드를 받으면 약값은 월 550달러(약72만원)으로 떨어진다. 비급여로 월 72만원이면 젭바운드를 쓸 수 있다. 노보 노디스크가 할인카드를 적용하면 월 약값이 920달러(약 120만 원)인 것과 비교하면 '반값'이다.

릴리가 공격적 가격 정책을 펴는 것은 그만큼 비만 치료제 시장이 뜨겁기 때문이다. 미국 JP모간체이스는 비만치료제 시장 규모가 지난해 말 24억달러(약 3조원)에서 2030년 330억달러(약 4조원), 2032년 710억달러(약 93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11월 13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뉴컬럼비아에서 레베카 칼이 매주 웨고비 주사를 맞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릴리의 공격에 노보 노디스크는 한발 빼는 모습이다. 라스 프루어가르드 예르겐센 노보 노디스크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27일(현지 시각)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위고비 약효가 없으면 약값을 받지 않는 가격 정책을 계획하고 있다"고 답했다. 가격 경쟁이 아닌 제품력으로 승부하겠단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전략은 고육지책으로 보이기도 한다. 지금도 노보 노디스크는 위고비의 넘치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곤욕을 겪고 있다. 위고비와 같은 성분의 당뇨병 치료제인 오젬픽과 마운자로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공급 부족 약물'에 올라있는 상태다. 오죽하면 미국 CNBC는 젭바운드 출시 소식과 함께 "젭바운드가 위고비 공급 부족 문제를 해결할 대안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공급 부족이 심하다보니 미국 FDA에서 위고비의 경우 복합의약품으로 생산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조영민 서울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복합의약품에 불순물 문제가 불거지면서, 위고비 자체의 부작용 문제가 이슈가 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지금으로서는 가격을 낮추는 게 이득이 없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노보 노디스크는 가격을 낮추는 대신 미국 유럽 외 다른 국가로 위고비 시장 확대를 꾀하고 있다. 이미 내년 2월 22일 일본 출시를 발표했는데 이는 미국과 영국, 독일, 노르웨이, 덴마크에 이어 여섯 번째이자 아시아 국가로는 최초다.

또 위고비가 비만뿐 아니라 심혈관 질환, 지방간, 췌장 질환에도 쓰일 수 있을 지 임상에 나섰다. 얼마 전 비만 환자의 심혈관 질환 치료에도 효과가 있다는 것을 증명한 논문을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NEJM)에 발표하기도 했다. 조 교수는 "위고비를 췌장 질환 치료제로 임상한 시험은 예상보다 일찍 마친 것으로 안다"며 "결과가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좋았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만 비만 치료 게임체인저를 한국에서 만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위고비는 올해 5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비만치료제로 허가받았지만, 정식 출시일은 정해지지 않았다. 젭바운드는 아직 국내 품목 허가를 받지 않았다. 젭바운드의 제2형 당뇨병 치료제 버전인 마운자로도 올해 6월 식약처 허가를 받았지만 아직 시장에 출시되지 않았다. 일각에선 이런 점을 보면 내년을 넘기고 내후년이 돼야 한국 시장에 선보일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