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넥신 홍성준 대표가 서울 마곡동 본사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김명지 기자

지난달 23일 인도네시아 식품의약품안전처(BPOM)가 수도 자카르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자국 최대 제약사인 카르베파마(Kalbe Pharma)가 한국 바이오벤처 제넥신(095700)으로부터 기술이전 받은 만성 신장 질환 빈혈 치료제 '에페사'의 품목허가를 알리는 자리였다.

신장은 체내 산소공급량이 떨어지면, 적혈구를 생산하라고 알려주는 호르몬(EPO, 적혈구생성인자)을 분비한다. 신장 기능이 떨어지면 이 호르몬 양이 줄어들고, 적혈구 수가 모자라 악성 빈혈이 생긴다. 에페사는 EPO에 작용하는 바이오의약품이다.

EPO는 1980년대 개발된 성분으로 1990년대부터 '조혈제'로 쓰였다. 지금은 미국 암젠과 일본 쿄와기린이 2001년 개발한 '아라네스프'가 시장을 잡고 있다. 아라네스프는 이틀에 한 번 맞아야 하는 EPO를 1~2주에 한 번 맞아도 되도록 개량했다. 이 약의 작년 매출은 14억 달러(약 1조8000억원)에 이른다.

에페사는 아라네스프보다 개량된 3세대 바이오베터(성능이 좋은 복제약)로 손꼽힌다. 아라네스프는 1~2주에 1번 맞는다면, 에페사는 2~4주에 한 번 맞는 식이다. 경쟁자로는 로슈의 '미쎄라'가 있다. 이렇게 에페사의 약효가 아무리 좋아도 인도네시아 식약처가 바이오시밀러 개발로 직접 기자회견을 한 것은 이례적이다.

식민지 역사가 긴 인도네시아는 화학의약품 제네릭(복제약) 강국으로 통하지만, 바이오의약품 개발은 성공한 적이 없다. 홍성준 제넥신 대표는 "카르베파마는 한국으로 치면 유한양행 같은 회사인데, 이 전통제약사가 새로운 방식의 신약 개발에 성공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에페사는 제넥신에게도 의미가 깊다. 제넥신이 지난 1999년 설립 이후 품목허가를 받은 최초의 의약품이기 때문이다. 제넥신은 그동안 '신약 개발 회사'지만 허가받은 약은 없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에페사는 지난 23일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투석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 3상 임상시험계획(IND)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제넥신은 자본 시장이 돈줄이 말라붙으면서 경영이 어려울 것이란 소문에 시달렸다. 코로나19 백신 등 주요 신약 개발 프로젝트를 중단한 데 이어, 일본 아지노모도와 협력해 설립한 회사 지분을 얼마 전 매각했다. '글로벌' 진출을 내걸고 영입한 닐 워마 대표도 최근 사임했다.

홍성준 제넥신 대표를 만나 인터뷰했다. 홍 대표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밴더빌트 로스쿨에서 법학석사를 받은 재무⋅회계통으로 통한다. 필립모리스, 나이키코리아, 한독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역임했다. 지난 2020년부터 제넥신 CFO를 맡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번에 한국 식약처에 품목허가를 신청을 준비하고 있는 에페사가 인도네시아에서 먼저 허가를 받았다. 어떤 배경이 있는지 궁금하다.

"제넥신은 카르베파마와 손잡고 조인트벤처 KG바이오로직스(Kalbe Genexine Biologics)를 설립해 한국 등 7개국에서 비투석 환자 대상 임상시험을 실시했고,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먼저 품목허가를 신청했다. 카르베파마는 시가총액 50억 달러(약 6조 5300억원)에 작년 연 매출 29조 루피아(약 2조 4300억원)의 대형 제약사다. 인도네시아는 만성신부전 환자가 10만 명에 달하기 때문에 국가적인 관심도 컸던 것으로 안다."

인도네시아 식약처(BPOM)가 지난달 23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넥신과 KG 바이오가 공동개발한 지속형 신성빈혈 치료제 에페사(Efesa)의 품목허가 이후 향후 계획을 알렸다./제넥신 제공

-KG바이오가 제넥신의 합작 자회사인데, 기술을 이전해서 허가를 받은 게 무슨 큰 성과냐는 말도 시장에 있었다.

"카르베파마와 제넥신이 6대 4로 지분을 투자해 KG바이오를 설립한 것은 맞다. 하지만 지난해 미국 사모펀드에 지분을 매각하면서 구조가 달라졌다. KG바이오 최대 주주가 카르베파마이고, 2대 주주는 미국 사모펀드, 그 다음이 제넥신이다. 카르베파마의 바이오의약품 생산은 KG바이오가 하게 된다. 앞으로 에페사 매출이 나기 시작하면 KG바이오가 기업공개(IPO)를 할 가능성도 있다."

-에페사의 가장 큰 장점은 뭔가.

"공정개발에 공을 많이 들여서 수율을 높였다. EPO 의약품이 시중에 많지만, 에페사는 기술 대비 원가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뜻이다. 현재 4주에 한 번 맞아도 되는 약을 개발하고 있으니, 이것까지 도전해 볼만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에페사의 국내 허가는 언제쯤으로 기대해야 하나.

"이르면 내년에 비투석 환자를 대상으로 품목 허가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임상 결과가 잘 나온 건 맞지만, 갈 길이 멀다. 품목 허가를 받아도 시장에서 팔리려면 건강보험 약가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앞으로 1년 6개월 안에 진짜 약국에서 팔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한국 시장 규모는 400억~500억 원 정도로 보고 있다."

-에페사의 이후에 준비된 후속 파이프라인은 뭐가 있나.

"아이맵바이오파마와 성장촉진제 후보물질 GX-H9을 공동개발하고 있다. 중국에서 임상 3상 연구를 마치고 결과보고서를 정리하고 있다. 내년에 중국에 품목허가를 신청하고 2025년 중국 상용화를 계획하고 있다. 2022년 기준으로 중국 소아 청소년 가운데 약 340만 명이 성장호르몬 결핍증이 있고, 이 성장호르몬 시장이 30억 달러(약 4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안다."

-파이프라인 정리를 끝난 건가. 작년 이맘때 닐 워마 대표는 불필요한 파이프라인을 정리하겠다고 밝혔다.

"작년 4분기에 4개 핵심 파이프라인을 선택해 임상에 집중하고 있다. 나머지 파이프라인은 시기를 엿보고 있다. 지금은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 비임상과 임상 1상 단계의 초기 후보물질을 찾아서, 개발할 계획이다. 새로운 후보물질 탐색 작업을 한 지는 6개월 정도 됐고, 최근에는 이런 작업을 도와 줄 컨설팅 회사와 계약을 맺었다."

-새로운 후보물질을 살 수 있을 여력이 있나.

"시장에 좋은 후보가 나오면 사들일 준비가 충분히 돼 있다. 올해 들어 유상증자 등을 합치면 올해에만 1200억 원 정도 자금을 확보했다. 결과적으로 현금이 800억 원 정도 있다. 내년에 크게 지출할 비용은 에페사 유럽 임상3상 정도인데, 이 임상은 44개월가량 걸리기 때문에 크게 부담이 되지 않는다."

제넥신 파이프라인

-아지노모도 제넥신 지분을 헐값에 매각했다는 얘기도 있다.

"헐값 매각은 아니다. 오히려 성공한 매매였다. 아지노모도제넥신은 배지 위탁생산(CMO)공장인데, 제넥신이 10년 전에 89억 원에 매입해서 이번에 193억 원에 팔았다. 첫 협상가는 100억 원부터 시작했으나, 매출 전망과 가치 평가를 통해서 판매가격을 높일 수 있었다. 코로나19 때 매출이 크게 늘면서 매각할 때 좋은 값을 받을 수 있었다."

-닐 워마 대표는 왜 사임한 건가.

"워마 대표가 미국을 오가면서 회사 운영을 했던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글로벌화를 목적으로 영입했지만, 정작 내부 직원과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는 불만도 있었다. 그런 도중 회사 주가가 많이 떨어지는 등 우여곡절 끝에 미국의 가족에게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전달해 왔다."

-제넥신의 단독대표를 수락한 배경이 궁금하다. 재무나 회계 쪽은 전문가지만 연구개발(R&D)과 기업 경영에는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제넥신에서 근무한 지 3년이 넘었고, 제넥신의 인적자원(HR)업무도 맡아왔다. 직원들과 소통하면서 내부 사정을 충분히 파악했다. 연구개발 쪽은 부족한 게 맞다. 그래서 역량있는 임원진을 찾고 있다."

홍 대표는 신약 개발과 관련한 지식을 쌓기 위해 약대 편입 전문 학원의 강의를 들으면서 공부했다고 말했다. 홍 대표는 "구글도 검색하고 유튜브도 보면서 3년을 공부했다"며 "매주 임원 회의에서 박사급 연구원들 앞에서 영어로 발표했었다"고 말했다.

-리더십에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

"성과 보상 문화 정립이다. 지난달 취임 일주일 만에 대강당에 전 직원을 불러 모아 회사 상황을 설명하고, '성과에는 보상하지만, 성과가 없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그저그런 해피 투게더'는 안된다고 못 박았다. 다만 희망퇴직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 번 룰(규정)을 정하면, 공정하고 투명하게 지키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대강당 분위기가 가라앉았을 것 같다.

"나중에 피드백을 받아보니, 오히려 안심했다는 반응도 있었다.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다'는 말에 오히려 위안을 얻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 연말 인사고과가 시작된다. "

-제넥신의 흑자 전환은 언제쯤 가능할까.

"제일 중요한 건 영업이익이다. 영업이익이 흑자로 전환하려면 매출을 늘리거나 비용을 줄여야 한다. 먼저 비용을 줄이려고 허리띠를 졸라맨 지는 1년이 넘었다. 희망퇴직을 시행하지는 않았지만, 추가 채용을 중단하고, 불필요한 비용은 모두 없앴다. 결과적으로 1년 전과 비교하면 직원의 15%가량이 줄었고, 임원 숫자도 종전 15명에서 8명으로 감축했다."

-매출은 어떻게 늘릴 생각인가.

"매출을 늘리기 위해선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신약이 상용화돼 매출을 일으키거나, 후보물질을 기술 수출하는 방법이다. DNA 백신의 두경부암 임상 3상으로 적응증을 변경하는 동시에 기술 수출도 계속 두드리고 있다."

-제넥신 주가는 언제쯤 오를까.

"주가 전망은 저희 집사람한테도 얘기 안 한다. 앞으로 지켜봐 달라. 에페사의 경우 인도네시아 품목 허가는 이제 시작이다. 한국, 말레이시아, 대만, 호주 등 임상한 7개 국가에 순차적으로 품목허가 신청서(BLA)를 접수하고 있다. 성과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제넥신은 성영철 회장이 포항공대 생명과학과 교수였던 1999년 학내 바이오벤처로 설립한 회사다. 그 당시 에이즈바이러스(HIV) DNA백신을 개발해 주목을 받았다. 제약바이오 투자 바람이 불던 지난 2018년 제넥신 시총은 2조 원을 넘었으나, 현재 시총은 4400억 원으로 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