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신림역과 서현역 묻지마 칼부림 사건을 계기로 국민에게 심리상담을 제공하겠다며 추진하는 '마음건강 투자사업' 구축 예산 208억원이 내년 예산에서 삭감될 것으로 보인다. 내년 겨울철에 유행할 코로나19 변이에 대응해 도입하는 백신 구매 예산 3618억원과 수입 수산물 안전 관리 홍보 예산은 정부 원안대로 통과될 전망이다.
16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15일 예산안조정소위원회를 열고 보건복지위원회 소관 부처인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질병관리청이 올린 2024년도 예산안에 대한 감액 심사를 실시하고 이같은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확인됐다.
통상적으로 복지위 상임위 의결을 거친 소관부처 새해 예산은 예결특위로 넘어가 예산조정소위의 심사를 받는다. 이날 심사에서는 복지위에서 줄인 정부 예산에 대한 심사가 진행됐다. 각 부처는 상임위에서 예산을 깎은 사업 가운데, 정부 원안대로 원상복귀 시키고 싶은 사업을 추려서 다시 예결위에 소개하고 예결위원과 기획재정부를 설득하게 된다.
복지부는 올해 8월 서울 신림역과 분당 서현역 등에서 잇따라 묻지마 칼부림이 벌어졌고 특히 분당 서현역 피의자는 조현병 환자로 밝혀지면서 정신건강 사업 예산을 내년 예산에 넣었다. 범죄 처벌도 필요하지만, 사회 안전 예방을 위해 정신건강 이상자들의 치료 실효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기 때문이다. 또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한 범죄로 국민 정신건강을 보살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복지부는 내년 8만명을 시작으로 2025년 16만명, 2026년에는 25만명, 2027년엔 50만명까지 정신건강 심리상담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이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정부가 계획한 내년 예산 539억원 가운데, 시스템 구축에 들어갈 208억원이 복지위 심사에서 삭감됐다. 사업이 기재부의 정보화전략사업(ISP) 절차를 통과하지 못한 때문이다. 정부 자체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기재부의 ISP 절차를 통과해야 한다.
복지부는 이번 예산소위에서 제공하는 '국민 마음건강 투자사업' 예산 가운데 208억원이 삭감된 안건을 복구해 줄 것을 제안했다. 박민수 2차관은 "ISP를 서둘러 하려고 했는데 7월부터 준비를 시작해서 시간을 맞추지 못했다"며 "11월 중에 집행하고 절차를 통과하겠으니 조건부로라도 예산을 배정해 달라"고 말했다. 심리 상담을 효율적으로 하려면, 상담 서비스의 기록을 담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기재부 관계자도 "전액 삭감보다는 사업을 조정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여야 모두 '원칙을 무너뜨리면 안된다'고 막아섰고 208억원은 상임위 결정대로 삭감됐다. 다만 심리상담 단가를 시간당 8만원을 6만원으로 낮춰 35억7400만원을 더 줄이자는 의견은 보류됐다. 이처럼 안건이 보류된 경우에는 복지부와 기재부 여야 간사가 합의를 거쳐 감액 규모를 조정하게 된다.
질병청도 내년도 코로나19 백신 도입 사업에 필요한 3618억원을 원상복구해 줄 것을 요청했다. 앞서 보건복지위 상임위에서는 국내에 도입된 백신이 5142만회 분에 이를 정도로 많으니, 내년도 도입 예산 전액을 삭감할 것을 의결했다. 질병청은 매년 새 코로나19 변이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과거에 도입된 백신을 쓰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며 예산 복구를 요청했다.
지영미 청장은 "지난 2020년에 들여온 백신은 내년 봄까지 맞는 동절기까지 쓰고 나면 소진된다"며 "내년에 유행할 변이에 대응할 백신은 내년에 5~6월에 다시 계약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에 남아있는 백신 물량 5142만 회분은 노바백스 백신과 SK바이오사이언스(302440)가 개발한 스카이코비원으로 내년이면 폐기를 해야 한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반면 국가 통합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 사업에서 2억 6300만원이 감액된 것은 이견 없이 확정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상임위에서 깎인 수입 수산물 안전관리 홍보사업 예산 9200만원도 원상복구할 것을 요청했다. 복지위는 후쿠시마 처리수를 방류한 이후 안전 홍보 필요성이 떨어지므로 감액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오 처장은 "홍보비는 정부의 수입 수산물 안전 관리 검사 체계를 설명하는 목적인 것이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안전하다고 홍보하는 게 아니다"라고 맞섰고 예산소위는 이를 받아들였다.
예결위는 이날 감액 심사를 끝으로 복지위에서 증액한 사업을 심의하게 된다. 앞서 복지위는 당초 복지부가 올린 예산보다 3조4919억원, 식약처는 713억원, 질병청은 1798억원씩 증액을 의결했다. 하지만 이렇게 증액한 예산이 예결위에서 그대로 반영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 정치권 설명이다.
각 상임위가 증액한 예산은 예결위로 올라가 삭감되는 수순을 밟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정부가 제출한 올해 예산 원안은 639조원이었다. 상임위에서 증액된 것이 3조 9000억원이었지만, 정작 예결위를 거쳐 총 지출규모는 638조7000억원으로 오히려 줄었다.
국회 관계자는 "총 지출 규모에서 보면 국회에서 변동폭은 0.05% 정도밖에 안된다"며 "이것이 국회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기재부와 각 부처가 국회가 열리기 전에 미리 소통을 해서 증액하기로 합의를 했거나 절차상의 문제가 있어서, 예결위에 안건을 상정하고 증액하는 사례도 있지만 그런 사례는 극히 드물다"라고 말했다.
이날 복지부에서는 이기일 1차관, 박민수 2차관, 김혜진 기획조정실장이 참석했고, 식약처는 오유경 처장 우영택 기획조정관, 질병청에선 지영미 청장과 홍정익 기획조정관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