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 박재현 대표이사는 "한국인에 맞는 GLP-1비만치료제 개발에 자신있다"고 말했다. 박 대표가 지난 9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조선비즈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조선비즈

한미약품(128940)은 지난 9월 인슐린 분비와 식욕 억제 기능이 있는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비만치료제를 신성장 동력으로 선택하고 ‘H.O.P(한미 비만 파이프라인)’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비만 예방, 치료, 관리 등 모든 과정을 해결하는 맞춤형 혁신 신약을 차례로 내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한미그룹 전략기획실장으로 부임한 임주현 사장 주도로 시작된 이 프로젝트에는 한미 그룹사 주요 핵심 연구 부서들이 모두 참여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가 처음 공개됐을 때 제약업계에선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국내에서 한미약품이 대사질환에서 독보적인 전문성을 가진 곳이기 때문이다. 한미약품이 지난 2015년 프랑스 사노피에 5조 원 규모로 기술을 수출한 당뇨약 후보물질이 GLP-1이었다.

박재현 한미약품 대표는 지난 9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가진 조선비즈의 인터뷰에서 “한미약품의 GLP-1 기술은 글로벌 수준”이라며 “한국인에게 맞는 GLP-1 비만치료제 개발에 자신 있다”고 말했다.

프로젝트 발표 한 달 후인 올해 10월 한미약품은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한국인 맞춤형 GLP-1 비만치료제에 대한 임상 3상 승인을 받았다. 사노피에 기술을 이전했다가 되돌려 받은 ‘에페글레나타이드’다. 세계 시장을 휩쓸고 있는 GLP-1 비만치료제 위고비처럼 일주일에 한 번 주사를 맞는 방식이다.

박 대표는 한국인 맞춤 GLP-1 비만치료제 상용화 시기에 대해선 “임상 일정 등을 고려하면 2027년 1분기쯤 가능하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미국 머크(MSD)사에 수출한 비알코올성 지방간염(NASH) 신약 후보물질 ‘에피노페그듀타이드’와 관련해서는 “MSD가 임상 3상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단순히 NASH 치료제 하나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측면을 보고 임상을 확대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NASH는 음주와 상관없이 간에 중성지방이 과도하게 축적돼 발생하는 질환이다. 심하면 간경화·간부전 등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발병 초기에는 증상이 없어서 진단이 어렵고, 아직 개발된 마땅한 치료제도 없다.

이 때문에 생활 습관을 개선해서 체중을 줄이고 고혈압 당뇨 수치를 조절하는 것이 유일한 해법으로 통했다. 에피노페그듀타이드 역시 비만치료제인 위고비와 마운자로의 주성분인 GLP-1 수용체를 주성분으로 하는 바이오의약품이다. 위고비를 개발한 노보노디스크도 위고비를 활용한 NASH 치료제를 임상 중이다.

MSD는 올해 6월 유럽간학회(EASL)에서 ‘에피노페그듀타이드’ 임상 2a상 중간결과를 공개하고 2b상에 돌입했다. 임상 2a상은 치료 기전을 확인하는 과정이고, 2b상은 임상 3상에 들어가기에 앞서 환자 치료에 최적화된 약물 용량을 결정하는 단계다. 임상이 이제 막바지에 왔다는 뜻이다.

한미약품이 올해 9월 발표한 ‘H.O.P(한미 비만 파이프라인)’ 프로젝트 구성도. 이 프로젝트는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비만치료제를 신성장 동력으로 선택했다. /한미약품 제공

박 대표는 영남대 약대를 졸업하고, 이듬해인 1993년 한미약품에 입사해 팔탄공장 공장장 등을 거쳐 올해 3월 대표이사에 오른 한미맨이다. 성균관대 제약학과 박사인 그는 한미약품의 고혈압 복합개량신약 아모잘탄을 개발한 공을 인정받아 충무공상, 장영실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표창 등을 받았다.

-3월 대표 취임 이후 6개월이 지났다. 취임 전후 한미약품에 달라진 점이 있나.

“한미의 핵심 DNA는 ‘변화와 혁신’이다. 그러니 내가 대표에 취임했다고 방향성이나 경영 기조가 바뀌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늘 변화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다.”

-얼마 전 발표한 H.O.P 프로젝트가 궁금하다. 이 중에서도 한국형 GLP-1 비만치료제가 가장 큰 주목을 받았다. 상용화 시점은 언제로 보고 있나.

“에페글레나타이드라는 후보물질이다. 사노피가 글로벌 임상 3상까지 했고, 국제학술지 NEJM(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슨)에도 논문이 게재됐다. ‘경제적인 한국인 맞춤형 GLP-1′으로 3년 안에 상용화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27년 1분기를 기대하고 있다.”

H.O.P 프로젝트는 비만 치료의 전주기 관리를 포함하고 있다. GLP-1 비만치료제부터 GLP-1을 투약할 때 나타날 수 있는 근감소나, 요요현상 극복에 도움이 되는 치료제, 환자들이 비만 관리를 할 수 있도록 돕는 디지털 치료제도 포함된다.

-한미가 ‘비만’에 집중하는 이유가 있나

“‘비만’만 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비만을 주목하는 것이 비만이 모든 대사 질환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한미는 대사질환 분야 치료제 발굴과 개발에 독보적인 역량을 갖추고 있다. 특히 GLP-1은 글로벌 수준의 역량을 갖고 있다. 위고비, 삭센다 GLP-1 비만치료제가 비싼 약값에도 품귀 현상을 빚는 상황에서 한미가 분명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NASH치료제로 개발하는 신약 후보물질 ‘에피노페그듀타이드’는 진행 상황이 어떤 지 궁금하다.

“수치가 잘 나온다고 들었다. MSD에서도 이례적으로 속도를 빠르게 잡아간다고 들었다. 일주일에 한번, 2주일에 한 번 투약 용량을 달리하는 방식으로도 임상이 추가된 것으로 안다. 단순히 (NASH) 하나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보고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것으로 들었다.”

-호중구감소증 치료제 롤론티스의 미국 시장 평가는 어떤가.

“롤론티스는 ‘롤베돈’이라는 이름으로 작년 9월 FDA시판 허가를 받았다. 미국 시장 진출 1년 만인데, 현지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롤베돈은 미국에서 올해 1분기 1560만 달러(약 208억원), 2분기 2100만 달러(약 280억원)의 매출을 냈다. 올해부터 미국 클리닉 시장의 22%를 차지하는 상위 3개 커뮤니티에서 롤베돈을 활용하기 시작했고, 미국국가종합암네트워크(NCCN)의 가이드라인에도 롤베돈이 포함됐다.”

-한미약품 미국 파트너인 스펙트럼이 다른 회사에 인수됐다. 이건 영향이 없나.

“스펙트럼을 인수한 회사는 비대면 세일즈 마케팅 전문 제약사인 ‘어썰티오(Assertio)’라는 곳이다. 큰 회사에 인수됐으니, 오히려 롤베돈의 장기적 성장 기반을 마련했다고 본다.”

-한미가 올해 최대 실적을 달성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올해 매출 목표는 1조 4000억 원이었는데 3분기에 매출 1조 원을 넘어섰으니, 목표 달성은 무난할 것으로 본다. 작년 한 해 100억 원 이상 처방 매출을 달성한 제품 18종을 출시했는데, 이 가운데 17종이 자체 개발 제품이다. 경쟁력 있는 자체 개발 제품을 통해서 매출을 내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차별점이라고 본다.”

한미약품이 개발한 이상지질혈증 치료 복합신약인 ‘로수젯’은 지난해 1403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이는 국내 제약사가 독자 개발한 단일 복합신약으로는 가장 많은 수준이다. 고혈압치료제 제품군인 아모잘탄패밀리는 지난 2021년 12월 누적 처방 매출 1조 원을 기록했다.

고지혈증 복합 치료제 ‘로수젯’

-정부는 연구개발(R&D) 예산을 줄이는 추세다. 한미는 어떤가.

“한미약품은 매년 매출의 15~20%를 R&D에 투자하고 있다. 하지만 액수에 따라서 투자하는 게 아니다. 한미는 ‘남는 연구비를 쓰려고 수행되는 연구’는 철저히 경계한다. 한미약품은 최근 10년 동안 신약 개발 연구, 제품 상용화에 필수적인 생산시설에 3조 원 넘게 투자했다.”

-올해 한미가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한미 DNA를 다시 각인하고, 헬스케어 시장 선도를 위한 심층 전략 검토가 이뤄졌다. 부문별 새로운 리더십을 구축했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해 실행 단계로 끌어올렸다. 한미가 준비해 온 새로운 비전이 올해를 기점으로 구체화할 것이다.”

-그렇다면 넥스트 10년은 어떻게 구상하고 있나. 2032년까지 그룹사 합산 매출 5조 원 도전 계획을 발표했다.

“목표를 세우면 ’이게 될까’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성공 사례가 나오면서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성장은 탄력을 받게 돼 있다고 생각한다. 향후 10년 동안 현재 개발하고 있는 신약의 상용화를 해 나갈 계획이다. 2023년 매출 5조 원 목표 가운데 상당 부분은 한미약품의 몫이다. 한미약품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면, 이 목표는 달성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