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섭 이원다이애그노믹스(EDGC) 대표가 지난 9월 18일 인천 송도 본사 연구실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김명지 기자

"미국에서 뇌종양에 걸린 올해 4살인 환자가 사경을 헤매고 있습니다. 과거에 완치 판정을 받았는데, 최근 암이 재발했어요. 이 소녀를 살릴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실 분들은 답장을 주세요."

유전체 연구기업 이원다이애그노믹스(EDGC)의 이민섭 회장(57·사진)은 지난달 18일 미국의 암 극복 프로젝트인 '캔서문샷'의 민관협력 프로젝트인 '캔서엑스(X)' 운영진으로부터 이 같은 내용의 이메일을 받았다.

'캔서엑스'는 미국의 모핏 암센터와 디지털의학학회(DiME)가 올해 6월 출범시킨 공공과 민간 협력체다. 현재 디지털 솔루션을 활용한 암 극복을 목표로 전세계 130개 기관과 기업이 모였다. 미국 MD 앤더슨 암센터, 존슨앤존슨(J&J)은 물론 인텔, 아마존, 오라클 같은 정보기술(IT) 기업들이 가입했다. 지난 9월 미국 워싱턴DC에서 첫 회의를 열었다.

한국에선 인공지능(AI) 의료기업체인 루닛(328130)이 이름을 올리면서 알려졌다. EDGC(245620)는 지난 8월 합류했다. 이 대표는 "캔서엑스라는 울타리 안에서 함께 연구해서 혁신을 이뤄보자는 취지의 '네트워크'"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이번 이메일을 보면 알겠지만, 프로젝트가 굉장히 빠르고 구체적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메일을 받자마자 주최 측에 "환자 유전자를 인공지능(AI)로 분석해 그에 맞는 표적 항암제를 찾아 내겠다. 환자의 샘플을 달라고 답장을 보냈다"며 "샘플이 오면 곧바로 분석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EDGC는 혈액 소변 침방울 같은 환자 검체에서 떠다니는 암 조각에서 후성(後性)유전체를 AI로 분석해 암을 진단하는 기술을 갖고 있는 기업이다. 암은 수많은 세포분열 과정에서 유전자들이 일으킨 돌연변이로 발생한다. 후성유전체는 사람이 살면서 변형된 DNA를 뜻한다.

지금은 수술로 떼낸 종양 조직검사로 암을 진단하는데 혈액 속 변형된 유전체 패턴을 분석하면 쉽고 간편하게 암을 조기 진단할 수 있다. EDGC는 대장암⋅폐암⋅유방암⋅위암 등 4종의 암을 피 한 방울로 진단하는 기술을 개발해 국제 학술지에 논문으로 게재했다.

캔서엑스에 합류한 기업들. 노란색은 한국 기업들./캔서엑스 홈페이지 캡처

이 대표는 암 조기 진단 기술이 캔서 문샷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캔서문샷 재개를 선언하면서 25년내 암 사망률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환자의 사망률을 낮출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획기적인 치료법을 개발하거나 치료 환자의 숫자를 늘리면 된다. 모수를 늘리면 확률은 떨어진다.

이 대표는 경희대 생물학과를 졸업한 뒤 캘리포니아주립대 대학원 생물학·미생물학과에서 석사, 미국 씨티오브홉 국립 메디컬센터에서 생명과학과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 의대에서 유전체학 박사 후 연구원을 거쳐 미국의 유전체회사인 제네상스제약과 시쿼놈에서 근무했다.

미국에서 유전체 분석 회사 다이애그노믹스를 창업하고 2013년 이원그룹과 조인트벤처인 EDGC를 설립했다. 지난해 7월부터는 EDGC 단독 대표를 맡고 있다. 다음은 이 대표와의 일문일답.

-캔서문샷 중에서도 캔서엑스에 합류했다. 캔서엑스의 핵심은 무엇인가.

"캔서엑스의 핵심은 '디지털'이다. 캔서문샷을 첫 출범시킨 시기만 해도 디지털헬스라는 개념이 없었다. 그런데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디지털 헬스에 대한 위상이 높아졌다. AI 머신러닝(기계학습)과 같은 디지털 기술이 급격히 발전했다."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첫 회의 분위기는 어땠나. 특이한 점이 있었나.

"한국 바이오 위상이 많이 올라갔다. 10년 전에는 해외 학회를 가면 '미국 다이애그노믹스 대표이사'라고 소개했다. 요즘엔 일부러 한국 명함을 쓴다. 한국 명함으로 '한국과 미국을 오가면서 생활한다'고 소개하니 다들 더 관심을 가졌다."

-어째서 그런가.

"아시아에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거주한다. 예전에는 선진국 바이오 기업들이 중국 기업과 주로 파트너십을 맺었는데, 미중 관계 악화로 중국 관계가 끊어졌다. 중국을 제외하면 한국·일본·싱가포르가 있는데 일본은 유전체 연구가 최근 20년 동안 정체해 있다. 싱가포르는 규모가 너무 작다. 한국의 바이오 기업들이 글로벌 비즈니스를 할만 한 역량만 갖춘다면 세계 시장에서 굉장히 큰 각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DGC의 경쟁력은 뭔가. 혈액으로 암을 진단하는 서비스는 많다.

"우리가 가진 기술은 사람의 후성유전체를 AI로 프로파일링하는 것이다. 6만5000명의 후성유전체를 분석해 학습시킨 AI가 있다. AI에 암 환자에 대한 정보가 쌓이고, 분석을 하면 할 수록 진단은 더 정확해진다. 한국인 후성유전체 데이터베이스(DB)를 국내에서 가장 많이 갖고 있다고 자부한다."

-후성유전체는 무엇인가.

"유전자 결정론, 선천성과는 반대의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사람의 DNA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왔는데, 연구해 보니 살아가는 습관과 환경에 따라 엄청나게 많은 DNA 구조 변화가 일어났다. 똑같은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일란성쌍둥이가 자라면서 달라지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 차이를 판별해 내는 것이 우리 기술이다."

조선DB

-암 극복에 후성유전체가 왜 중요한가.

"폐에 암세포가 생기면 폐암, 대장에 생기면 대장암이라고 구분한다. 하지만 유전자 단위로 들어가면 같은 폐암, 대장암이라도 환자마다 다르다. 똑같은 항암제를 써도 어떤 사람은 약이 아주 잘 듣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고 부작용이 나타나는 이유다. 암 유전자 변이를 빠르고 쉽게 측정한다면 환자에게 딱 맞는 치료제를 좀 더 일찍 골라 쓸 수 있다. 이 기술은 항암 신약 개발에도 쓰일 수 있다."

-어떻게 쓰이나.

"신약 개발이 어려운 건 대규모 임상이 힘들어서다.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이 개발하는 수 많은 신약이 글로벌 임상에서 실패한다. 이렇게 신약 임상이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람은 다 다르다'는 단순한 진리를 적용하지 못해서다. 바이오마커로 약이 잘 듣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해서, 약이 잘 듣는 사람에게만 그 약을 쓰도록 하면 신약 임상 허가는 훨씬 쉽게 될 수 있지 않겠나."

이 대표는 항암제 내성 문제도 후성유전체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암 환자를 치료할 때 가장 걱정하는 것은 '내성'이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건보 급여가 되는 저렴한 항암제를 쓰다가, 그 항암제에 암 세포가 내성이 생기면 그 때서야 표적 항암제를 찾는다. 내성이 생길 것을 미리 예측해 표적 항암제를 쓰는 전략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후생유전체를 통한 암 진단은 혈액으로만 가능한가.

"아니다. 지난해 미국유전학회에서는 폐암 환자의 '폐포세척액'을 활용한 암 진단에 대한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폐포세척액은 기관지에 생리식염수를 넣은 다음 모은 액체로 내시경만으로 쉽게 채취가 가능하다. 그런데 폐암과 폐의 다른 질환도 조직검사 수준으로 정확하게 판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폐 조직에서 떨어져 나온 암세포가 이 액체에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이민섭 EDGC 대표가 인천 송도 본사 연구실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김명지 기자

-후성유전체를 암 이외에 다른 질환으로 확대해서 활용할 수도 있나.

"암뿐 아니라 파킨슨병 같은 퇴행성 질환 진단에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요즘에는 '노화는 질병'이라는 개념이 자리잡고 있다. 암을 비롯한 당뇨병, 심혈관질환, 치매를 노인성 질환이라고 한다. 나이가 들면, 후성유전체가 망가지면서 이런 병이 생긴다. 이걸 반대로 생각하면 후성유전체만 고칠 수 있다면 항노화는 물론 역노화까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

-어떻게 가능한가.

"미국 바이오벤처 알토스랩이라는 회사는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이용해 생체 시계를 되돌리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이조스가 이 회사에 투자해서 유명해졌다. 알토스랩의 초기 투자금은 30억 달러(약 4조원)에 이른다.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노화에 대한 연구가 아주 빠르게 진전되고 있는 것은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