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살짝 내 혈당측정기로 혈당값을 확인하고 인슐린 주입량을 계산한다. 냉장고에 보관 중이던 인슐린을 상온에 15분 정도 꺼내놓는다. 이후 알코올로 주사 부위를 소독하고 빠르게 주사를 삽입한 뒤 천천히 약물을 넣는다.
인슐린 의존도가 높은 1형 당뇨 환자가 주기적으로 해야 하는 인슐린을 주입하는 방법이다. 간단해 보일 수 있지만, 환자가 직접 혈당을 측정하고 인슐린양을 맞춰야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인슐린을 과다하게 주입하면 혈중 포도당이 세포에 많이 흡수돼 저혈당증이 발생하고, 인슐린이 부족하면 혈당 수치가 개선되지 않는다.
당뇨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결책을 내놓은 국내 기업이 이오플로우다. 이오플로우는 저전력 고성능 전기삼투 펌프(Electroend Osmosis Pump·EOP)를 내장해 필요한 인슐린양을 자동으로 환자에게 주입하는 접착형 웨어러블 인슐린 주입기를 개발했다. 크기는 가로 5㎝, 세로 4㎝ 정도로 손바닥보다 작다. 조선비즈는 11일 경기 성남시 분당 이오플로우 사무실을 찾아 만성질환 당뇨로부터 해방될 첨단 의료기기의 미래를 보고 왔다.
김재진 이오플로우 대표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전자공학을 공부하고, 인텔과 모토로라 등에서 근무한 반도체 전문가다. 김 대표는 스마트폰 발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랭에 필요한 ‘마이크로 펌프’ 기술을 찾던 중 인슐린 펌프 기술을 접했다. 김 대표는 2011년 인슐린 펌프 기술의 라이선스를 넘겨받아 이오플로우를 창업했다.
이오플로우가 개발한 자동 인슐린 주입기 ‘이오패치 X(EOPatch X)’의 핵심은 전기삼투 펌프다. 전기삼투는 아주 얇은 모세관에 전압을 걸면 액체가 이동하는 현상을 말하는데, 이를 이용해 인슐린을 내뿜는 펌프를 만든 것이다. 기기를 몸에 붙이는 강력한 접착 소재와 방수 기능이 있어 한 개에 3.5일 사용할 수 있다.
당뇨 환자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미국 워싱턴대 보건계량분석연구소(IHME)에 따르면 올해 5억2900만명 수준인 전 세계 당뇨 환자는 27년 후인 2050년엔 13억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전 세계 당뇨 유병률도 올해 6.1%에서 2050년 9.8%로 3.7%P 오를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당뇨 환자도 2020년 기준 600만명이고, 이외에 1583만명이 당뇨 전 단계인 고위험군이다.
당뇨 환자가 점점 늘어나면서 손쉬운 관리법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해졌다. 혈당을 확인하고 인슐린을 주입하는 방식이 번거로우면 환자들이 잘 찾지 않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마켓앤마켓(MarketandMarket)에 따르면 디지털 당뇨병 관리 시장에서 웨어러블 기기는 2019년 26억6990만 달러(3조5500억원)에서 2024년 76억7010만 달러(10조1900억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이오패치는 환자의 편리함에 초점을 맞춘 인슐린 주입기다. 간편하게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나르샤’로 혈당을 관리하고, 기기에 따로 인슐린을 채워 넣지 않아도 된다. 연속으로 혈당을 측정하는 인공췌장 시스템과 혈당을 예측하는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개발해 정확한 수치를 제공하는 소프트웨어를 구현했다. 나르샤는 안드로이드와 iOS 버전 모두 출시돼 휴대전화 기종에 상관없이 사용할 수 있다.
이오플로우는 올해 연말까지 ‘이오패치 X’의 식품의약품안전처 품목 허가를 마치고 본격적인 판매에 돌입한다. 앞서 삼성서울병원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13개 병원과 임상시험을 마쳤다. 앞으로는 당뇨뿐 아니라 비만, 성장호르몬 결핍증 등 주기적인 약물 투여가 필요한 질병으로 이오패치 활용 분야를 넓혀갈 계획이다.
김 대표는 “범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웨어러블 의료기기를 만들어 전 세계 의료기기 시장의 트렌드를 만드는 기업이 될 것”이라며 “새로 개발한 이오패치 X로 환자들이 편안해지는 세상을 보는 게 궁극적인 꿈”이라고 말했다.
◇ “세계 최초 모바일 인슐린 웨어러블로 환자 만족도 높이죠”
김재진 이오플로우 대표는 지난 11일 조선비즈를 만나 “이오패치는 인슐린 주입 편의성과 정확성을 높여 환자 삶의 만족도를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오플로우는 인슐린을 주입하는 인공췌장 ‘이오패치(EOPatch)’를 개발한 국내 기업이다. 전 세계적으로 인공췌장을 개발하는 경쟁사는 미국의 3개사다. 그마저도 본체가 무겁고 인슐린을 공급하는 줄이 달려 편의성이 떨어진다. 무선 인슐린 주입 웨어러블을 개발한 회사는 이오플로우와 미국 인슐렛(Insulet) 정도다.
특히 이번 사업으로 탄생한 ‘이오패치 X’는 세계 최초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과 연동한 인공췌장 시스템이다. 김 대표는 “기존엔 환자가 별도의 혈당측정기로 혈당값을 확인하고 인슐린 주입량을 계산했다”며 “이 제품은 스마트폰 하나로 혈당 변화와 인슐린 주입 제어, 데이터 통계를 확인할 수 있도록 편의성을 높였다”고 말했다.
이오패치를 개발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인슐린 주입 웨어러블을 개발한 사례가 흔치 않아 품목 허가과 관련된 명확한 규격과 기준이 없었다. 범부처전주기의료기기연구개발사업단의 도움으로 신의료기술평가 자문과 임상시험계획서 점검을 받았다. 사업단의 기술사업화 컨설팅 지원으로 개발 기간은 2년 정도 단축됐다.
김 대표는 “인슐린 자동 주입시스템은 선도제품이기 때문에 선례가 없어 주요 기관과 협업이 필요했다”며 “인허가 규제대응 세미나를 개최해 식품의약품안전처 담당자를 만나 사전상담을 진행하는 등 사업단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강조했다.
이오패치의 수출 판로는 이미 확보된 상태다. 이오플로우는 2021년 이탈리아 제약사 메나리니(Menarini)와 1500억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하고 향후 5년간 유럽 17개국에 판매하기로 했다. 이외에도 인도네시아와 아랍에미리트(UAE) 제약사들과도 공급계약을 체결해 아시아 지역에도 교두보를 마련했다.
김 대표는 “접착형 인슐린 웨어러블을 중심으로 다양한 약물전달 솔루션을 개발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