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밀의료 혁신기업 엠비디는 암환자의 세포 조직을 체외에서 3차원 배양한 뒤 세기와 분량이 각각 다르게 방사선을 쬐어 치료 효과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방사선 치료효과 예측 플랫폼’을 개발했다. 사진은 3차원으로 배양한 세포를 일정하게 플레이트에 뿌려주는 자체개발 장비 'ASFA 스캐너'./채승우 기자

국산 의료기기가 개발에 성공해 시장에 출시되는 비율은 15%, 성공하는 비율은 1%가 채 안된다. 하지만 세계 시장의 높은 벽에 도전하는 의료기기 벤처와 스타트업들이 있다. 정부도 세계 시장에서 성공 가능성이 높은 국산 의료기기가 사장되는 현실을 바꾸고자 의기투합해 범부처 전주기 의료기기 연구개발 사업단을 만들었다.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는 10대 과제로 선정된, 미래 국가대표가 될 의료기기 강소 기업들의 이야기를 차례로 소개한다.

암 환자가 방사선 치료를 받을 때 효과가 얼마나 될지 치료 전에 미리 예측하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국내에서 개발됐다. 국내 정밀의료 혁신기업 엠비디는 암환자의 세포 조직을 체외에서 3차원 배양한 뒤 세기와 분량이 각각 다르게 방사선을 쬐어 치료 효과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방사선 치료효과 예측 플랫폼’을 개발했다. 이 가운데 두경부암 환자를 대상으로 예측하는 방사선 감수성 진단키트 개발 과제는 지난 5월 범부처 전주기 의료기기 연구개발사업 10대 대표과제로 선정됐다.

지난달 31일 경기 수원시 광교 엠비디에서 만난 구보성 대표는 “암 중에서도 특히 두경부암은 얼굴에 발생하므로 수술 후 환자의 삶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며 “암이 진행돼 수술이 필요한 2기 이상 환자를 대상으로 방사선 치료 효과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장비를 개발해 품목허가용 확증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두경부암은 머리에서 뇌와 눈을 제외한 모든 곳에 생기는 악성 종양이다. 코와 목, 입 안, 후두, 침샘, 갑상선 등에 발생한다. 병원에서는 환자의 나이나 암 진행 정도, 건강상태에 따라 수술적 치료나 방사선 치료, 항암제 치료 같은 비수술적 치료를 한다.

미국 국립암연구소에 따르면 두경부암 환자의 생존율은 후두암 61%, 구강 인두암 68%, 입술암 91.4% 등으로 높은 편이다. 하지만 암이 발생하는 부위가 얼굴인 만큼 수술 후 심미적인 문제로 환자의 자존감이 떨어질 수 있고, 먹고 말하고 숨을 쉬는 데 필요한 기능을 잃을 수 있다. 수술 부위에 따라 입을 다물지 못하거나 혀를 사용하지 못하거나 호스에 의존해 호흡해야 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수술을 포기하고 방사선 치료만 선택할 수도 없다. 환자마다 방사선 치료 효과와 부작용이 달라서다.

엠비디가 개발한 두경부암 방사선 감수성 진단키트는 조직검사 때 채취한 암세포를 인체 환경을 모방한 암 오가노이드로 만들고 각기 다른 양만큼 방사선을 조사한다. 이후 암 오가노이드의 반응을 관찰해 암환자 개개인의 방사선 치료 효과를 예측한다.

이를 위해 암세포를 뿌리는 ‘미세 고속분주장치(ASFA spotter)’, 암세포를 암 오가노이드로 배양하는 플랫폼인 ‘셀비트로(Cellvitro)’, 방사선을 쬔 오가노이드의 반응을 이미지로 분석하는 ‘이미지 형광장치(ASFA scanner)’를 개발했다. 또 최종적으로 ‘암 오가노이드 방사선 반응-임상결과 매칭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별 환자의 방사선 치료 결과를 예측하는 ‘방사선 치료반응 예측 알고리즘(CODRP)’도 자체 개발했다.

그래픽=손민균

엠비디가 맞춤형 방사선 치료 효과를 예측하는 방식은 이렇다. 먼저 환자의 암 조직에서 암세포를 추출하고, 암세포를 알지네이트나 매트레젤, 콜라겐 등 성분과 함께 섞어서 생체 액체를 만든다. 이를 미세 고속분주장치를 이용해 프린터가 종이에 잉크를 뿌려 인쇄하듯이 암세포를 일정한 간격으로 정량씩 필러 플레이트에 뿌린 뒤 배양한다. 암세포를 최대한 체내 환경과 비슷한 환경에서 배양해 암 오가노이드(인공 미니장기)를 만든다. 암 오가노이드가 암 환자를 대신하는 아바타인 셈이다. 이후 암 오가노이드에 각각의 다른 선량으로 방사선을 조사한다.

그 다음으로 암 오가노이드를 특수형광물질(Calcein AM)로 염색하면 살아 있는 암세포만 염색된다. 이것을 이미지 형광장치로 분석해 이미지로 얻는다. 살아있는 암 오가노이드의 크기가 클수록 방사선에 효과가 없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사전 임상실험을 통해 이미 축적된 ‘암 오가노이드 방사선 반응-임상결과 매칭 데이터’을 기준으로 분석알고리즘을 활용해 해당 암 환자의 방사선 치료 반응을 예측한다. 해당 환자가 방사선 치료 효과가 얼마나 되는지 치료 전에 예측할 수 있다. 두경부암의 경우, 방사선 감수성 검사의 예측 정확도가 85.7%에 이른다.

구보성 엠비디 대표가 두경부암 방사선 감수성 진단키트로 얻은 결과 영상을 모니터에 띄우고 설명하고 있다. 암세포를 형광물질로 염색한 다음 스캐너로 스캔하면 살아있는 세포만 녹색 형광이 강하게 발한다./채승우 기자

이 모든 과정에 10~14일 정도가 걸린다. 구 대표는 “암세포가 성장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있기 때문”이라며 “외래 환자가 다음 외래 방문까지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환자 개인별 방사선 치료 효과를 미리 알면 의사가 그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치료 방법을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며 “이전에 임상을 함께 했던 삼성서울병원과 서울아산병원, 국립암센터와 함께 올해 9월부터확증 임상시험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들 병원에서 환자 검체를 채취하면 제3기관인 녹십자의료재단이 두경부암 방사선 감수성 진단키트를 이용해 실제로 치료 효과를 정확하게 예측하는지 결과를 내는 방식이다. 2년 반 가량 임상 시험을 하고 6개월 동안 결과 분석을 할 계획이다. 이르면 3년 뒤에는 국내 병원에서 엠비디가 개발한 두경부암 방사선 감수성 진단키트가 상용화된다는 뜻이다.

구 대표는 “분당서울대병원에서도 조직 샘플을 받아 결과를 모으고 있다”며 “지금까지 국내에서 확보한 두경부암 환자 데이터는 340건이 넘는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뿐 아니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병원에서도 같은 탐색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라며 “최근에는 뉴저지 쿠퍼대 병원, 독일 베를린 샤리테 병원에서도 협력 제안이 들어오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국내외 병원에서 방사선 치료 효과를 알 수 있는 바이오마커에 대한 필요성이 큰 만큼 시장 전망도 밝다”고 말했다.,

현재 엠비디는 로봇팔을 이용해 단 하나의 장비로 방사선 감수성 진단 전 과정을 수행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구 대표는 “조직검사 직후 장비 안에 샘플을 넣으면 알아서 방사선을 조사해 최종 결과까지 한 번에 도출할 것”이라며 “현재 삼성서울병원과 실제 의료 환경에서 효율적으로 쓰일지 탐색 임상시험 중”이라고 밝혔다.

◇ 구보성 엠비디 대표 “항암 치료효과 환자가 먼저 예측할 수 있는 시대 열 것”

구보성 엠비디 대표./채승우 기자

-암을 치료하기 전에 그 효과가 얼마나 되는지 미리 정확하게 예측해 치료 방향을 결정한다는 것이 놀랍다. 이런 기술을 개발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집안마다 암환자가 없을 정도로 늘어났지만 환자마다 암을 치료하는 방법이 다 똑같다. 각 환자에게 맞는 개인 맞춤형 치료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방사선 감수성 진단키트 기술을 떠올렸다. 임상에 실제 적용되면 사회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경부암 외에 다른 종류의 암에 대해서도 ‘방사선 치료 효과 예측 플랫폼’으로 치료 효과를 미리 예측할 수 있는가.

“그렇다. 식도암과 직장암에 대해서도 방사선 감수성 진단키트를 개발하고 있다. 두경부암과 마찬가지로 환자가 수술을 받았을 때 신체의 기능을 잃어 삶의 질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은 병이기 때문이다. 원리는 조직검사 때 채취한 세포를 키워 방사선을 각기 다르게 쬐고 결과를 분석하는 것으로 동일하다. 암 종류에 따라 진단키트의 효율성이 다를 수 있다.

최대한 환자 데이터를 많이 쌓아 정확도를 높이려 한다. 식도암은 지금까지 약 150건 정도 수집했다. 두경부암보다 환자 수가 적어서 데이터를 확보하는 데 시간이 좀 더 걸린다. 올해 안에 식도암에 대한 방사선 감수성 진단키트도 확증 임상시험에 돌입할 계획이다. 내년부터는 직장암에 대한 키트도 준비 중이다.”

-방사선 치료 효과말고 항암제 치료 효과도 예측할 수 있다고 들었다. 과정은 방사선 감수성 검사와 동일한가.

“환자의 조직에서 추출한 암세포를 미세 고속분주장치로 오가노이드 배양 플랫폼에 뿌린 다음 암 오가노이드를 만든다. 이 암 오가노이드에 항암제를 각기 다른 농도로 처리하고, 각 암 오가노이드의 항암제 반응을 살아있는 암 오가노이드의 모양을 스캔해 결과를 얻는 방식이다. 환자 개인별로 항암제 치료했을 때, 그 효과를 예측할 수 있다. 이 플랫폼은 올가을 흉수가 차는 폐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실제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항암 치료 효과 예측 외에 이 기술이 어디에 쓰일 전망인가.

“신약을 개발할 때도 쓸 수 있다. 제약사 입장에서는 새로 개발한 약이 어떤 환자군에서 잘 들을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기술은 실제 조직에 약물을 뿌려 치료 효과를 볼 수 있으니 효율적이다. 또한 다른 약과 섞어서 처방했을 때 효능이 어떻게 달라질지도 알아볼 수 있다.

신약 개발 기간을 단축함과 동시에 임상에서 성공률도 높일 수 있을 전망이다. 현재 중외제약에서 약물 효능을 확인하기 위해 우리 플랫폼을 쓰고 있다. 국내 제약사 5~6군데를 대상으로 위탁 서비스도 하고 있다. 미국 일라이릴리와 싱가포르, 룩셈부르크 연구소 등에서도 우리 플랫폼을 활용하고 있다.

-앞으로 엠비디의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고 싶은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방사선 치료 효과 또는 항암제 치료 효과를 예측하는 기술을 병원에서 환자를 대상으로 빨리 서비스를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 시스템을 직접 국내외 병원에 제공을 하거나, 거점 분석랩에 제공해 환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마케팅할 계획이다. 또한 보험사와 연계해 환자에게 비용 부담을 줄일 계획이다. 환자에게 실질적인 이익이 제공되면 언젠가는 보험급여의 의료수가도 결정될 것이다. 환자들이 저렴하게 암 치료 효과를 예측해 줄 수 있는 환자 맞춤형의 암치료를 치료받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