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그룹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008930)가 그룹의 미래 성장 동력을 ‘비만 관리’로 정하고, 비만 치료 신약 개발 프로젝트 ‘에이치오피(H.O.P)’를 본격적으로 가동한다고 13일 밝혔다. 프로젝트의 총괄은 한미약품 창업주 고(故) 임성기 회장의 장녀인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전략기획실장(한미약품 사장)이 맡는다.
한미 비만 파이프라인(Hanmi Obesity Pipeline)의 앞 글자를 딴 이 프로젝트는 임주현 사장이 전략기획실장으로 부임한 후 처음으로 공개하는 신약 개발 대형 과제다. 임 사장은 그동안 기존의 불필요한 사업 정리에 몰두해 왔다. 이 프로젝트에는 한미약품 연구개발(R&D)센터, 신제품개발본부, 전략마케팅팀, 평택 바이오플랜트, 팔탄 제제연구소, 한미정밀화학 연구진이 모두 참여한다.
한미는 에이치오피 프로젝트를 통해 비만 예방, 치료, 관리 등 모든 과정을 해결하는 맞춤형 혁신 신약을 차례로 선보이는 게 목표다. 한미약품이 지난 7월 한국인 맞춤형 비만치료제로 개발하겠다고 밝힌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계열 물질인 에페글레나타이드가 첫 신약이 될 가능성이 높다.
에페글레나타이드는 과거 한미약품이 사노피에 기술이전을 했다가 반환받은 당뇨병 치료제 후보물질이다. 당뇨병을 동반한 비만 환자에 대한 임상에서 체중의 5%가량이 줄어든 것을 확인한 만큼 일반 비만 환자에게서는 10% 이상의 체중 감량 효과를 보일 것으로 기대한다. 내달 국내 임상 3상 시험에 들어가서 오는 2026년 출시하는 게 목표다.
두 번째 유망 물질은 GLP-1과 에너지 대사량을 높이는 글루카곤, 인슐린 분비와 식욕 억제를 돕는 GIP를 동시에 활성화하는 비만 치료용 삼중작용제(LA-GLP·GIP·GCG)다. 이 물질은 한미약품의 기존 신약 개발 플랫폼인 랩스커버리 플랫폼이 아니라 다른 차세대 플랫폼 기술을 적용했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한미는 전임상에서 이 후보물질이 비만대사수술에 버금가는 체중감량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한다. 비만대사수술을 받으면 체중의 최대 25%를 줄일 수 있다. 미국 제약사 일라이릴리가 개발해 출시를 앞둔 ‘마운자로’가 체중의 22.5%를 줄이는 것으로 임상에서 확인했는데, 이 후보물질이 성공하면 이 기록을 뛰어넘는 것이다.
GLP-1 계열 비만치료제의 대표적인 부작용인 요요 현상과 같은 섭식장애를 개선하는 후보물질도 포함됐다. GLP-1 계열 비만치료제를 투약하면 포만감이 들어 음식 섭취가 줄고, 이에 따라 근육량도 줄어든다. 하지만 투약을 중단하면 식욕이 돌아와 체중이 급격히 늘어난다.
주사제 GLP-1이 아닌 알약이나 물약으로 먹을 수 있는 GLP-1 비만 치료제도 개발한다. 한미는 먹는 펩타이드 플랫폼 기술도 상용화 가능성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 비만 치료 환자를 위한 디지털치료기기(DTx)도 프로젝트에 포함됐다. 디지털 치료기기를 활용해 비만 환자의 생활 습관을 교정하면 비만 치료제의 효과를 높이고 약물 부작용 등을 관리할 수 있을 것으로 한미는 기대하고 있다.
임주현 사장은 임 회장의 2남 1녀 중 둘째로 지난 2007년 한미약품에 합류했다. 이후 한미사이언스와 한미약품 사장을 동시에 맡으며 자사 신약들의 해외 전략을 총괄 기획했다. 이후 그룹사 인적자원 개발 부문을 맡았다. 임 사장은 한미약품의 미국 파트너사인 스펙트럼 이사를 맡고 있으며, 한미약품의 글로벌 전략 수립 총괄 기획을 담당하고 있다.
한미 관계자는 “H.O.P를 영어로 읽으면 ‘폴짝 뛴다(hop)’는 뜻이고, 프랑스어로는 격려하는 감탄사로 쓰인다”며 “에이치오피 프로젝트는 또 다른 비상을 준비하는 한미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