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뜻이라도 경상도와 전라도, 충청도에서 각각 다른 사투리로 말하는 경우가 있다. 동물도 마찬가지다. 몸길이가 1㎜에 불과한 선충도 수십 가지 사투리를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성균관대 생명과학과의 이대한 교수는 26일 "예쁜꼬마선충의 의사소통 수단인 페로몬이 사람의 사투리처럼 종에 따라 다르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인간처럼 선충도 여러 지역으로 퍼지면서 의사소통 수단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미국 노스웨스턴대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에릭 앤더슨(Erik C. Andersen) 교수와 연구를 진행했다. 코넬대 프랭크 슈뢰더( Frank Schroeder) 교수도 참여한 연구 결과는 지난 20일 국제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렸다.
예쁜꼬마선충은 회충이나 요충 같은 기생충과 같은 종류의 선형동물이다. 신경세포가 300여개에 불과해 사람을 대신해 뇌과학 연구에 많이 쓰인다. 선충은 곤충처럼 몸 밖으로 페로몬이라는 화학물질을 분비해 상대를 인지하고 상황을 파악한다.
예쁜꼬마선충이 대화에 사용하는 페로몬은 당과 지방산을 기반으로 한 아스카로사이드(ascaroside)라는 화학물질이다. 연구진은 전 세계에서 채집한 예쁜꼬마선충 95종에서 44종류의 페로몬을 분석해, 이 '향기 언어'에 사투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즉 종마다 아스카로사이드 페로몬이 달랐다는 말이다. 극단적으로 아예 말을 잃어버린 선충까지 있었다. 스페인 세비야 도심 정원에서 채집한 선충은 아예 아스카로사이드 페로몬을 방출하지 않았다. 이 교수는 "태평양 섬에서 처음 출현한 선충이 인간의 무역로를 따라 전 세계로 퍼지면서 각기 다르게 진화한 결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선충 유전자를 비교해 페로몬 사투리는 물질대사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달라지면서 생긴 부산물임을 확인했다. 한 선충은 특정 유기화합물을 분해하는 효소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서 응집 행동을 조절하는 페로몬이 감소했다. 이 교수는 "말하자면 물질대사 경로가 바뀌면서 체취가 달라진 것과 같다"며 "이번 논문은 예쁜꼬마선충 향기 사투리의 유전적 기반과 진화 과정을 밝힌 결과"라고 말했다.
참고자료
PNAS, DOI: https://doi.org/10.1073/pnas.222115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