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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5일부터 8일까지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바이오 인터내셔널 컨벤션(바이오USA)’에서 유한양행(000100)은 이영미 R&BD(연구사업개발) 본부장(부사장)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 부사장은 한미약품(128940) 출신으로 지난달 31일 유한양행에 새로 합류했는데, 합류와 동시에 미국 출장을 나왔다. 지난해만 해도 한미약품 전무 명찰을 달고 바이오 USA를 참석했던 이 부사장이 유한양행 명함으로 신약 알레르기 치료제 후보물질(YH35324) 글로벌 제약사 마케팅에 나선 것이다. 업계에선 ‘이 부사장이 물 만난 것 같았다’는 얘기가 나왔다.

13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미약품에선 주요 연구개발(R&D) 인력이 이탈하고 있다. 이관순 부회장, 권세창 사장이 물러난 이후 더 이탈이 가속화되는 모양새다. 회사 공시만 봐도 최근 1년 동안 퇴사한 전무⋅이사급 임원만 13명에 이른다. 이렇게 퇴사한 13명 중 5명의 근속 연수는 5년 이상이다. 당장 이번에 유한양행에 영입된 이 부사장은 2013년 한미약품에 입사해 ‘10년’을 채웠다. 새로운 혁신을 위한 물갈이라고 하기엔 그간 연구개발을 주도한 핵심 인물이 짧은 기간에 너무 한꺼번에 빠졌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는 평가다.

이 부사장은 서울대 제약학과 대학원, 하버드의대 다나파버 암 연구소 연구원을 지내며 글로벌 영업에 두각을 보여왔다. 해외 진출에 목마른 국내 바이오 업계에선 ‘영입 1순위’로 통했다. 그런 그가 유한양행으로 이직하자 업계에선 한미약품이 신약 개발은 아예 접은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한미약품은 지난 2015년 글로벌 대형제약사인 베링거인겔하임, 릴리와 잇달아 수천억 원에 기술이전 계약을 맺으면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이듬해인 2016년 올무티닙, 2019년 포셀티닙 권리까지 반환되면서 승승장구하던 상승세가 급격히 꺾였다.

올무티닙 개발을 이끌었던 한미약품 손지웅 부사장이 김창숙 사업개발 부문장 상무와 함께 LG화학(051910) 생명과학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신약개발에 공을 들인 임성기 회장이 지난 2020년 작고하면서 회사의 연구개발 동력이 빠졌다. 반면 손 부사장은 LG화학으로 자리를 옮긴 뒤 다시 사장으로 승진한 후 미국 항암제 개발 바이오기업인 아베오 테라퓨틱스를 인수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미약품 출신들이 의기투합한 바이오벤처 기업도 생겼다. 한미약품 연구소장, 북경한미 부총경리를 지낸 김맹섭 대표가 세운 머스트바이오는 연구소장인 정성엽 부사장 등 주요 연구진이 모두 한미약품 출신이다.

김 대표는 아모잘탄 등 개량신약과 미국 스펙트럼에 기술수출한 포지오티닙 연구개발에 참여했고, 정 부사장은 한미약품이 개발한 랩스커버리 기술 개발의 주역으로 꼽힌다. 랩스커버리는 약물 지속 시간을 늘려주는 신약 플랫폼인데, 한미약품은 현재 이 기술로 당뇨 비만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신약 연구개발과 사업개발 동력을 잃은 한미약품은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한미약품은 올해 바이오USA에서 평택 1공장의 바이오 의약품 생산 역량 홍보에 공을 들였다. 지난 3월 링크드인에 바이오 USA 참가 소식을 알렸고, CDMO팀이 총출동했다.

한미약품은 올해 미국임상종양학회(ASCO)에 부스를 설치하고 미국 시장에 임상 디자인을 홍보했다. 다만 업계 관계자는 “이번 한미 ASCO 부스는 ‘브랜드’를 알리는 차원이지, 제품에 집중한 것은 아닌 것으로 안다”며 “신약 개발은 후보물질도 중요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인재가 중요한데, 핵심 자산들이 빠져나간 만큼 한미약품에서 당분간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한미약품 관계자는 “최근 잇따른 신약 과제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회사를 임원들이 떠난 것은 맞는다”면서도 “이들의 퇴사가 한미의 R&D 역량 축소로 이어진다는 해석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해외에서 열리고 있는 국제학회에서 발표되는 연구결과들을 토대로 혁신신약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