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모 일러스트.

#지난 5월 14일 서울 광진구 워커힐 호텔 그랜드홀에서 열린 ‘제12차 대한모발 이식학회’ 학술대회 행사장 앞에 동국제약의 탈모(脫毛) 치료제 ‘판시딜’을 홍보하는 부스가 열렸습니다. 판시딜은 먹는 약과 두피에 뿌리는 약이 있는데, 먹는 약은 모발과 손톱의 구성 성분인 케라틴과 모발 영양 성분인 약용 효모를 배합한 일반의약품입니다. 머리카락에 영양을 공급해 튼튼하게 해주는 약으로 통합니다.

머리카락을 심는 모발 이식과 머리카락을 지키는 탈모치료제는 탈모 치료 시장에서는 경쟁 관계로 인식돼 왔습니다. 의사 처방전이 필요한 프로페시아(성분명 피나스테라이드)와 아보다트(성분명 두타스테라이드)와 달리 판시딜은 ‘영양제’ 정도로 취급됐습니다. 실제로 판시딜의 성분을 보면 모발 성장이 필요한 영양성분을 고용량으로 응축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모발 이식은 머리카락을 두피에 심는 근본적인 치료법입니다. 탈모는 주로 머리카락이 얇은 이마 부위에서부터 시작하는데, 모발 이식은 굵은 머리카락이 나는 뒤통수(후두부) 모발 세포(모낭)를 탈모 부위에 옮겨 심는 시술법입니다. 이날 열린 학회 강연 주제는 헤어라인 축소, 동양인과 서양인 남성의 모발 이식 디자인, 음악이 환자 불안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강연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동국제약 판시딜/ 동국제약 제공

이런 자리에 동국제약이 탈모 치료제 부스를 연 것은 모발 이식 수술을 받은 환자를 겨냥한 것으로 보입니다. 모발 이식은 건강보험 급여가 되지 않아서 수술비가 100만~800만 원 정도로 비쌉니다. 환자들 사이에선 이식 이후에 모발 관리에 대한 관심도 높습니다. 수술 후 관리 소홀로 애써 심은 머리카락이 빠지면 안 되니까요.

동국제약은 판시딜과 같은 고농축 모발 영양제가 수술 후 관리에 유용하다는 점에 착안했습니다. 모발 이식을 모내기로 비유하면, 척박한 땅보다는 기름진 땅에 심은 벼가 더 잘 자랍니다. 전문의들도 모발 이식 수술을 받은 뒤 수술 부위는 만지지 말고, 한동안 땀이 많이 나는 운동이나 직사광선도 피할 것을 권합니다. 머리를 앞으로 깊게 숙이는 행동도 피할 것을 권합니다. 두피가 늘어나면 모낭을 자극할 수 있어서 입니다.

탈모 치료를 시작한다면 머리카락의 생리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두피에 있는 머리카락은 시간이 지나면 빠지고, 그 자리에 또 나는 것을 반복합니다. 두피에 모낭이 100개 있으면, 100개에 다 머리카락이 있는 게 아닙니다. 80곳에 머리카락이 있고, 20개 모낭은 쉬면서 교대 근무를 기다립니다. 쉬거나 아예 폐업한 모낭이 늘면 탈모인 것이죠.

탈모 치료제들의 기전은 모낭이 머리카락을 좀 더 오래 붙잡고 있게 하는 것입니다. 판시딜이 영양제라면, 프로페시아와 아보다트와 같은 탈모치료제는 남성 호르몬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탈모를 치료합니다. 남성형 탈모는 남성호르몬 작용(5알파 환원효소DHT)이 모낭을 수축시켜서 탈모를 일으키는데, 이 호르몬 작용을 억제하는 겁니다. 다만 두 의약품은 발기부전과 성욕감퇴, 여성형 유방증 등 부작용이 보고됩니다.

이날 학회에서는 탈모치료제 ‘미녹시딜’에 대한 발표도 있었는데, 이것도 흥미롭습니다. 미녹시딜은 1970년대 ‘로니텐’이라는 고혈압 치료제로 개발됐다가 머리, 팔, 다리에 털이 많이 나는 부작용이 발견돼 탈모 치료제로 변신한 약입니다. 고혈압 치료를 위해 용량을 높였더니 폐부종 등 부작용을 일으켜 고혈압 치료제로도 아예 쓰이지 않고, 이런 부작용 우려 때문에 현재는 두피에 바르는 약으로 쓰입니다.

미녹시딜은 두피의 혈관을 확장해서 모낭이 머리카락이 좀 더 오래 잡을 수 있게 해 준다는 원리입니다. 혈관이 확장되면 아무래도 산소와 영양분이 더 잘 공급되니 모낭에 힘이 있겠죠. 머리카락을 자주 빗고, 두피를 마사지하면 탈모 완화에 도움이 되는데, 이것과 비슷한 원리입니다. 동국제약에는 뿌리는 ‘판시딜’이 있는데, 이 판시딜에는 미녹시딜 성분이 들어 있습니다. 먹는 판시딜에는 미녹시딜 성분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날 학회에서 박재준 모제림 성형외과 원장은 미녹시딜을 반 알 정도인 5㎎ 이하로 섭취할 때 탈모치료제로 효과가 있다는 해외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미녹시딜을 조금씩만 먹으면 부작용 없이 효과를 볼 수 있단 겁니다. 경기도 하남에서 약국을 하는 최용한 약사도 “요즘 먹는 미녹시딜 처방을 받아 치료하는 탈모 환자들이 꽤 늘었다”며 “바르는 약이 잘 듣지 않는 환자가 먹는 약을 통해 효과를 보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마이옥실과 판시딜/동국제약 등 제공

다만 최 약사는 “미녹시딜을 발라서 모낭 주변 혈관을 확장하고, 그곳에 필요한 영양분을 충분히 보충하는 치료는 가장 안전한 치료법”이라며 “먹는 미녹시딜을 처방받는 환자들이 늘어난 것은 맞지만, 탈모 치료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은 오랜 기간 쓰여서 검증된 방법부터 시도하는 것을 권한다”고 말했습니다.

뿌리는 미녹시딜을 바르고, 하루 3번 판시딜 같은 약을 복용하는 처방은 탈모 치료에서는 이른바 ‘국민 규칙’로 자리 잡았습니다. 미녹시딜 성분의 바르는 약은 의사 처방전이 없어도 되지만, 먹는 약은 의사의 처방이 필요합니다.

판시딜과 마이녹실이 프로페시아(성분명 피나스테라이드)와 아보다트(성분명 두타스테라이드)처럼 즉각적인 효능을 보기는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약용효모 복합제제에 대한 국내 임상 연구에 따르면 복용자의 79%가 모발이 다시 굵어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탈모 치료제는 약값이 결코 싸지 않습니다. 국내에서는 국민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않은 비급여 항목이기 때문입니다. 의사 처방을 포함해서 프로페시아는 석 달에 15만원, 아보다트는 12만원이고 판시딜의 약값은 같은 기간 10만원 정도 들어갑니다.

탈모는 다양한 원인이 있고, 그 원인에 따라 치료법도 달라집니다. 남성 호르몬이 탈모의 원인이라면 호르몬 치료를 해야 하고, 지루성 피부염으로 머리카락이 빠지는 환자는 피부염을 치료하면 탈모 문제는 개선됩니다. 원인 파악이 먼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