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혼자 창업해서 이것저것 간단한 테스트라도 하려면 실험실이 필요했는데, 이 공유 오피스에 딱 있었습니다. 단 몇 백 달러만으로 회사 업무도, 세포 실험도 모두 여기서 할 수 있습니다. 바이오 스타트업 전용 '위워크'인 셈이죠."
8일(현지 시각) 미국 보스턴 인근 워터타운의 바이오기업 전용 공유 오피스 '바이오랩스(biolabs)'에서 만난 인제니아 테라퓨틱스 한상열 대표는 이곳을 첫 사무실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2018년 설립된 항체 치료제 개발기업인 인제니아는 임직원이 12명에 불과한 작은 기업이지만, 미국을 주무대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한 대표는 "바이오랩스는 미국에서 가장 큰 바이오 인큐베이터 공유 오피스로 이곳에선 세포실험이나 생화학 실험을 할 수 있다"며 "현재 미국에만 이런 시설이 11곳이 있다"고 말했다.
바이오랩스는 케임브리지 이노베이션 센터(CIC), 비영리 바이오 창업 지원 기관인 랩센트럴과 함께 보스턴 바이오 클러스터의 상징적 시설로 꼽힌다. 보스턴과 그 주변 지역인 케임브리지, 워터타운에 차례로 들어섰고 현재는 뉴해븐, 뉴욕, 프린스턴, 필라델피아, 더럼, 댈러스, 로스앤젤레스, 샌디에이고 등 모두 11곳으로 확대됐다.
이곳 워터타운 지점에는 인제니아를 비롯해 스마트팜 테라퓨틱스, 다이나믹 셀테라피스, 뉴트롤리스 등 15개사가 입주해 있다. 이곳의 회원권은 1명당 월 500달러(약 65만원), 공유 실험실은 한 벤치(작업대)당 월 3200달러(약 414만원)에 이용할 수 있다. 입주 기업에는 교육 프로그램, 기술 세미나, 네트워킹은 물론 매스바이오협회 회원권이 제공된다.
매스바이오협회는 미국 매사추세츠주 내의 바이오테크 클러스터 발전을 위해 설립한 조직으로, 1300개 이상의 바이오 회원사가 참여하고 있다. 협회는 회원사들에게 필요한 연구개발(R&D), 경영, 법률, 지적재산권에 관한 다양한 세미나를 정기적으로 열고 있다.
공유 오피스에는 누구든지 자유롭게 업무를 볼 수 있는 공간, 식사나 간단한 다과를 준비할 수 있는 부엌과 식당이 있는데 국내에도 들어와 있는 글로벌 공유 오피스 체인인 '위워크'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한 입주사 관계자는 "오피스 주변에 식당이 없어서 점심은 우버이츠로 배달을 시켜 다이닝 공간에서 동료들과 함께 먹는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세미나를 위한 콘퍼런스룸과 전화 전용 부스들도 눈에 띄었다.
바이오랩스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공유 실험실이 있다는 점이다. 바이러스 조직 배양, 미생물학, 단백질·핵산 연구에 필요한 냉장보관실, 배양기가 설치돼 있다. 초기 창업 기업들이 구비하기 부담스러운 실험 장비들도 모두 갖추고 있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공유 실험실은 예약제로 운영된다.
미국에서 처음 문을 연 바이오랩스의 공유 실험실은 국내에도 도입되고 있다. 최근 우정바이오가 경기도 화성에 바이오 스타트업을 위한 개방형 실험실인 랩클라우드를 설립했다. 랩클라우드는 세포실험실 외에도 세계 최고 수준의 동물실험실까지 확보해 신약개발 스타트업들을 지원하고 있다.
바이오랩스 워터타운 지점에서 차로 10분을 달리면 세계 최대 바이오 클러스터의 중심인 케임브리지 켄달스퀘어에 닿는다. 이곳에는 사노피, 노바티스, 다케다, 아스트라제네카, 모더나 등 세계적인 제약사들과 미 매사추세츠공대(MIT) 캠퍼스가 포진해 있다.
이곳에 자리한 CIC 역시 공유 오피스 겸 기업 간 네트워킹 플랫폼으로 활용되고 있다. 1인 창업자부터 스타트업, 다국적 기업, 대학, 정부 기관 등 전세계 8개 도시의 5000여개사가 입주해 있다.
이곳에는 2년 전 보건산업진흥원이 시작한 보스턴 연계개발C&D 인큐베이션센터 설립을 계기로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 20개가 둥지를 틀고 있다. 유한USA, 대웅이노베이션홀딩스, 동아에스티 USA 등 비교적 익숙한 로고가 눈에 띄었다. 이들 기업들은 CIC를 글로벌 오픈 이노베이션의 거점으로 삼고 있다. 연구개발(R&D), 사업개발, 투자자 등 글로벌 전문가들이 모여 있는 만큼 기술수출, 공동연구와 같이 다양한 기회를 엿볼 수 있어서다.
박순만 보건산업진흥원 미국 지사장은 "켄달스퀘어 주변을 걸어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연구원들인 만큼 R&D 문화가 강한 지역"이라며 "미국 진출을 원하는 국내 기업을 해외 기업, R&D 전문가 등 파트너들과 만나게 하는 '다리'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