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6일(현지 시각)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2023 바이오 인터내셔널 컨벤션'(바이오USA)에 마련된 론자 부스 위로 삼성바이오로직스 현수막이 보인다. /보스턴(미국)=염현아 기자

"론자는 이미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생산이 가능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습니다. 뇌 질환 치료제 연구도 이미 진행 중입니다. 생산 시설을 더 고도화해 생산 역량을 강화할 겁니다."

6일(현지 시각)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2023 바이오 인터내셔널 컨벤션(바이오USA)'에서 만난 론자 관계자는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는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블록버스터를 대비해 수주 선점을 노리고 있는데, 론자는 전략이 어떻게 되느냐"는 기자의 말에 이같이 답했다.

◇ 론자 부스에 삼바 현수막…1,2위 치열한 신경전

전 세계적으로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알츠하이머 질환 치료제를 개발하려는 경쟁이 뜨겁다. 일본 제약사인 에자이와 미국 바이오젠이 공동 개발한 레켐비(성분명 레카네맙)가 미국 식품의약청(FDA)의 허가를 받았고, 미국 일라이릴리가 개발하는 도나네맙(성분명)이 연내 허가를 앞두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론자 같은 대형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들은 알츠하이머병 치료제가 블록버스터가 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삼성바이오직스는 일찌감치 알츠하이머 치료제를 새로운 생산 영역으로 점찍었다. 존림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는 지난해 기자간담회에서 "알츠하이머 치료제 블록버스터를 최초로 위탁 생산하는 기업이 되겠다"고 말했다.

존림 대표는 이달 5일 현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2025년 준공을 앞둔 인천 송도 제5공장은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를 주력으로 수주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세계 최대 생산 능력을 경쟁력 삼아 집중 수주 전쟁에 뛰어들겠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날 바이오USA 현장에 설치된 부스에서 만난 론자 관계자가 자신들은 사실상 이미 모든 준비를 마쳤다고 강하게 맞받아친 것이다.

제임스최 삼성바이오로직스 부사장이 5일(현지시간)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2023 바이오 인터내셔널 컨벤션'(바이오USA)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생산 역량을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행사에서 론자는 흰색 바탕에 짙은 파란색으로 부스를 꾸몄다. 통행로를 접한 벽면에는 '당신의 미래를 중심으로(Shaped Around Your Future)'라는 메시지의 홍보 영상을 쉴 새 없이 재생했다.

론자의 부스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부스의 3분의 1 수준이었지만, 방문객이 몰리면서 앉을 자리를 찾기가 어려웠다. 천장에는 특유의 론자 로고를 두른 흰색 원판을 달았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론자 천장 장식을 보려고 고개를 들면 삼성바이오로직스 로고가 보였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행사장 2층 창문에 현수막을 걸었기 때문이다.

글로벌 CDMO 시장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론자는 1, 2위를 다툰다. 생산역량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압도적 1위지만, 매출이나 기술력으로는 론자가 앞선다. 1982년 설립한 론자는 약물-항체 접합체(ADC)는 물론 메신저리보핵산(mRNA) 원료, 세포·유전자 치료제(CGT) 생산 시설까지 두고 있다.

◇ 암세포만 표적해 죽이는 'ADC'…'엔허투'로 기술 관심↑

바이오USA에서 알츠하이머병 치료제가 주목받았다면, 의약품 신기술로는 ADC가 단연 화두였다. ADC는 특정 단백질에 선택적으로 표적 하는 항체 의약품에 암세포를 죽이는 화학 합성 약물을 결합해 암을 치료하는 차세대 기술이다. 암세포만 타격하는 '유도미사일'이라고도 불린다. 다이이찌산쿄와 영국 아스트라제네카가 공동 개발한 유방암 치료제엔 허투가 가장 대표적인 ADC 의약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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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바이오로직스는 론자, 캐털란트 등 경쟁기업들과 비교해서 ADC 기술 개발이 늦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캐털란트의 돈테 솔로몬 캐털란트 총괄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ADC 등 신기술 개발에) 조금 늦기는 했지만, 워낙 생산력이 좋아 금방 따라잡을 거 같다"고 말했다. 미국 캐털란트는 생산 역량은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뒤지지만, 시장 점유율로 혼자 다음으로 2·3위를 다툰다.

중국 우시바이오로직스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ADC로 영역 확대에 나서면서 기존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루시 루 우시바이오로직스 사업개발 본부장은 "CDMO 경쟁력은 얼마나 빠르게 새로운 기술(뉴모달리티)로 확장하느냐에 달렸다"며 "삼성과 우시 같은 후발기업들이 ADC 시장에 진출하면 시장 점유율은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ADC 시장은 지난해 58억 달러(약 8조 원)에서 오는 2026년 131억 달러(16조 원)로 성장할 것이란 전망이다. 론자 바로 옆에 부스를 차린 후지필름 관계자도 "ADC기술을 갖추고 있지만 풀서비스는 아직 하고 있지 않은 상태"라며 "새로운 기술로 점차 생산 영역을 확대하려는 준비를 중이다"고 말했다. 후지필름은 이날 세포유전자치료제 쪽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다만 론자는 의견이 달랐다. 론자 관계자는 "ADC가 세계적으로 떠오르는 기술인 것은 맞다"라면서도 "기술 하나 잘한다고 선두 기업이 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론자는 올해 초 네덜란드 ADC 전문 신약 개발 기업을 인수했다.

6일(현지시간)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2023 바이오 인터내셔널 컨벤션'(바이오USA)에 마련된 후지필름 부스. 후지 필름은 시장점유율 1위 기업인 론자 바로 옆에 부스를 마련했다./보스턴(미국)=염현아 기자

올해 바이오USA 전시장에는 총 1629개의 부스가 들어찼다. 전시장을 가득 채운 기업 부스 위치를 확인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론자, 캐털란트, 후지필름, 우시바이오로직스 등 세계 1~5위 대기업들은 전시장 주출입구 통로에 자리를 잡았다.

입구 첫 자리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차지했고, 그 뒤로 일본 후지필름, 스위스 론자, 중국 우시바이오로직스의 부스가 차례로 자리했다. 우시바이오로직스는 우시앱텍과 함께 공동 부스를 차려 덩치를 키웠다. 각 기업의 브랜드를 드러내는 색깔로 꾸며진 형형색색의 부스는 '미인대회'를 연상시켰다. 행사 첫날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곳은 삼성바이오로직스 부스였다. 다양한 행사로 1000여명이 넘는 방문객이 부스를 찾았다.

'스탠드 업 포 사이언스(Stand up for Science·과학을 위해 일어서다)'라는 주제로 열린 올해 바이오USA에는 세계 65개국, 9144개 기업·기관이 참가했다. 세계보건기구(WHO) 코로나19 국제 공중보건 비상사태 선언 이후 미국 보스턴에서 열리는 첫 행사인 만큼 '역대급'이란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