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현지 시각) 미국 시카고에서 열리고 있는 'ASCO 2023'에서 옥찬영 루닛 최고의학담당자(CMO)가 기자에게 설명하고 있다. / 루닛 제공

항체에 약물을 붙이고 암세포에 보내 필요한 부위에만 약물을 전달하는 항체 약물 접합체(ADC)는 최근 제약·바이오 업계를 사로잡은 키워드로 떠올랐다. 국내 대표 의료 인공지능(AI) 기업 루닛(328130)도 예외는 아니다. 루닛은 2~6일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미 임상종양학회(ASCO 2023)에서 16개 논문을 공개했다. 이는 이번 행사에 참여한 국내 기업은 물론 전 세계 의료 AI 기업을 통틀어 가장 많은 숫자다. 이런 이유로 루닛은 학회 시작 전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루닛이 이렇게 한꺼번에 많은 연구 성과를 공개한 배경은 무엇일까.

암 환자의 치료 반응 예측 솔루션의 연구개발(R&D)을 총괄하는 옥찬영 루닛 최고의학책임자(CMO)는 이달 3일(현지 시각) ASCO가 열린 매코믹 플레이스에서 조선비즈와 만나 "지난해 행사에서 유방암 신약인 '엔허투'로 ADC 돌풍이 불었는데, 이를 목표로 개발한 분석 모델인 유니버셜 IHC(면역 조직 화학), '스코프 uIHC'를 활용해 ADC 개발에 용이한 모델을 제공할 것"이라며 "현재 ADC 신약을 개발 중인 기업들과 협업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13년 설립된 루닛은 AI를 통해 암 진단·치료를 보조하는 의료 AI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암 조기진단을 돕는 '루닛 인사이트' 시리즈와 면역항암제 치료를 예측하는 '루닛 스코프' 시리즈가 주력 사업분야다.

올해 행사에 공개한 논문은 대부분 루닛 스코프를 통한 연구 성과로 직장암과 두경부 편평세포암, 비소세포폐암, 대장암, 유방암·갑상선암 같은 다양한 암에 대한 치료 예측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김혜련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종양내과 교수를 비롯한 국내 연구자들과 일본 국립암센터 동부병원, 미국 메이요클리닉이 이들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현재 루닛의 AI 솔루션은 전 세계 병원과 연구기관 2000곳에서 이미 사용되고 있다. 의료AI에 대한 허가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국내보다는 일찍부터 일본 후지필름, 미국 가던트헬스·인디카랩스 같은 글로벌 헬스케어 기업과 손을 잡고 해외 시장을 먼저 공략한 덕분이다. 지난해 루닛의 전체 매출의 80%가 해외에서 나왔다.

루닛에 협력 요청을 보내는 국내외 기업들은 갈수록 늘고 있다. 옥 CMO는 "현재 루닛이 진행하는 연구 프로젝트만 수십개에 이르고 글로벌 대형 제약사 2곳과도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며 "최근 전 세계에 열풍을 몰고 온 ADC 신약의 치료 예측 분야로 연구를 확대해 더 많은 기업들을 공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옥 CMO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전공의, 임상강사를 거쳐 테라젠이텍스(066700) 바이오연구소 이사, 메드팩토(235980) 임상시험본부장(CMO) 지냈다. 루닛에 합류하기 전까지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로 일했다. 메드팩토를 비롯한 국내 기업들에 신약개발 전략을 자문해주는 스타트업도 운영하고 있다.

3일(현지 시각) 미국 시카고에서 열리고 있는 'ASCO 2023'에서 업계 관계자들이 루닛 부스를 방문하고 있다. / 루닛 제공

루닛은 이번 행사에 화이자, 아스트라제네카, 머크(MSD) 같은 글로벌 제약사들의 대규모 부스 뒤편에 조촐한 부스를 마련했지만 이날 찾은 부스에는 업계 관계자들의 방문이 줄을 이었다. 루닛 미국 법인 관계자들과 함께 부스를 지키고 있던 옥 CMO를 직접 만났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현재 루닛의 AI 솔루션으로 치료 예측 효과를 입증한 암은 몇 종이나 되나.

"현재까지 루닛 스코프로 면역항암제 치료를 예측할 수 있는지 테스트를 한 암은 총 16종에 이른다. 그 중에서 가장 예측력이 높게 나온 암에 관한 세부적 연구 결과를 이번에 발표했다. 루닛 스코프로 모든 암의 치료 효과를 예측할 수는 없다. 다만 모든 암을 통틀어 면역항암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자 대상을 골라낼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 우선 어느 암이 가능하고, 어떤 암은 안 되는지 분류하는 일이 앞으로의 과제다."

-일본 국립암센터 동부병원과 직장암 환자를 대상으로 치료 예측 연구를 진행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지난해 ASCO 행사에서 루닛의 발표를 본 요시노 타카유키 일본 동부병원 소화기종양학과 교수가 현재 진행 중인 임상 연구를 루닛 스코프로 검증하고 싶다는 제안을 했다. 지난 1년간 여러 연구를 분석했고,이번 행사에선 화학방사선요법(CRT)으로 치료 중인 국소 진행성 직장암 환자의 종양침투림프구(TIL) 수치 변화를 측정한 결과를 발표했다. 앞으로 열릴 학회에서도 계속 연구 결과가 발표될 것으로 보고 있다."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은 건가.

"직장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표준 치료법은 항암요법과 방사선 요법을 병합한 치료를 먼저 한 후에 수술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요시노 교수 연구진은 직접 개발한 면역항암제 '옵디보'를 그 사이에 추가했다. 항암·방사선 치료를 병행하고, 다섯 번에 걸쳐 옵디보 치료법을 한 후에 수술하는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이 치료법이 기존보다 더 좋은 치료가 된 것까지는 확인했는데, 연구진은 좋은 결과가 나왔던 환자들이 어떤 환자들인지를 알고 싶어 했다.

그래서 루닛 스코프로 면역세포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환자 모델을 분석했다. 일단 그 환자들의 면역세포가 기존 치료법을 썼을 때보다 정확히 1.8배 증가했다는 결과를 전달했다. 현재 동부병원은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옵디보를 추가한 치료법에 대해 허가 절차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미 국립보건원(NIH)의 빅데이터를 활용한 비소세포폐암 연구도 눈에 띈다.

"NIH에서 오픈 데이터베이스인 TCGA(암 유전체 데이터베이스)를 완성시켰는데, 1만명에 이르는 암 환자의 나이, 성별, DNA 정보 등 이름만 빼고 연구에 필요한 데이터를 최대한 확보한 것이다. 여기에 헤마톡실린과 에오신이라는 용액으로 세포를 염색해 병리조직 표본을 확인할 수 있는 HNE(헤마톡실린-에오신) 이미지가 같이 공개되는데, 이건 우리 연구에 너무나 필수적인 자원이다.

우리는 일정 비용을 지급하고 이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권리를 받아 연구에 쓰고 있다. 이 데이터로 분석 모델을 만들고, 이걸 한국 대학병원의 샘플 데이터로 다시 확인해보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 빅데이터를 활용해 어떤 연구에 집중하고 있나.

"유전자 돌연변이 프로파일을 미리 예측해 환자들이 차세대염기서열분석법(NGS) 검사가 필요한지 여부를 판단해주는 연구를 하고 있다. 이번에 발표하는 논문은 비소세포폐암에서 나타나는 돌연변이를 예측한 연구 결과다. 앞서 4월에 열린 미국암학회(AACR)에서 인체 세포에서 암 돌연변이를 촉진시키는 'K라스'에 대한 연구를 발표했고, 이번에는 비소세포폐암 환자 중에서도 MET(단백질이 분해되지 않아 암을 유발하는 유전자 돌연변이)를 예측한 것이다."

-NGS 검사를 받는 게 어렵나.

"환자의 세포로 유전자 변이를 한꺼번에 400개 정도를 분석하는 검사 방식이다. 검사에 필요한 조직이 꽤 많아서 비용도 200만원이 넘고 환자가 절반 이상 부담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부담이 크다 보니 이걸 미리 스크리닝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앞으로 어떤 연구에 집중할 계획인가.

"루닛 스코프로 다양한 암에 대한 효과를 입증하는 연구를 계속 할 계획이다. 최근 중요한 아젠다로 떠오른 ADC 쪽에 집중해 새로운 연구를 해보려고 한다. 최근에 기업들의 관심이 루닛 스코프의 면역항암제 분야 솔루션에서 ADC로 바뀌는 게 확연히 보인다. 그만큼 수요가 많은 시장이다. 루닛 스코프의 유니버셜 IHC 분석 모델을 고도화할 계획이다."

-AI가 ADC 신약개발에 정확히 어떤 도움을 주는 건가.

"임상 환자군을 어떻게 분석하냐에 따라 약물의 효과 수치가 달라진다. 약물이 좋아도 환자군을 잘못 분석하면 효과도 잘못 나올 수 있다는 의미다. ADC 기술이 '유도미사일'이라고 불리는 것처럼 워낙 강력해서 잘못하면 암세포뿐 아니라 다른 세포도 죽일 수 있다. 대표적인 부작용이 혈구감소증인데, 이런 부작용이 나타나는 환자군을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다. 즉 잘못된 환자는 빼고, 최적화된 환자군을 분류해주는 솔루션을 제공할 계획이다."

-새로운 협업 문의는 늘어나고 있나.

"최근 2년 사이에 엄청 많아졌다. 아직 어떤 기업인지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지만, 글로벌 빅파마 2곳과도 협업을 진행 중이다. 앞으로도 제약바이오 기업들에게 최적의 모델을 제공해 여러 혁신 신약이 빠르게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