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26일 오전, 서울 중구 조선일보미술관에서 빅터 호스킨스 미국 페어펙스카운티 경제개발국 CEO가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3.4.26. / 고운호 기자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 서쪽과 인접한 북부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에는 한국 기업 80여개가 사무소를 두고 있다. 동원그룹이 미국 참치 통조림 업체 스타키스트(Starkist) 인수한 뒤 본사를 이곳으로 옮겼고, SK그룹이 미국 전기차 충전업체를 인수해 설립한 SK시그넷 본사도 여기에 있다. 한국인이 창업한 해외 송금 핀테크 기업 와이어바알리(WireBarley)를 비롯해 해외에서 빠르게 확장하고 있는 골프존이 미국 진출의 교두보로 삼은 곳도 이 지역이다. 한국 기업들이 여럿 입주해 있다보니 미국에서 세 번째로 한인 밀집도가 높은 지역으로 통한다.

지난 2018년 페어팩스 시의원 선거에서는 한인 출신의 임소정 민주당 후보와 이상현 공화당 후보가 당선됐다. 인천국제공항으로 직항 항공 노선이 있는 워싱턴DC 댈러스 국제공항이 인접한 것도 장점이다.

버지니아 북부 지역의 국내총생산(GDP)은 2280억 달러(약 300조원)로 부산(2625억 달러)과 맞먹는 수준이다. 이 중에서도 페어팩스의 GDP는 1200억 달러(약158조원)에 이른다. 이는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보스턴과 같은 다른 미국 대도시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지만, 워싱턴DC에 들어선 미 연방 정부 인프라 덕분에 IT 보안 기업들이 대거 입주해 있어 ‘동부의 실리콘밸리’라고 불린다.

이 지역 경제 개발을 총괄하는 빅터 호스킨스 페어팩스 경제개발청 사장이 지난달 한국을 방문했다. 페어팩스 경제개발청 대표가 한국을 온 것은 청 설립 이후 이번이 세 번째다. 호스킨스 사장이 한국을 방문한 것은 1990년대 이후 두 번째다. 호킨스 사장은 서울과 인천에 머무르는 일주일 동안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KOSA) 회원사인 IT보안 업체들을 만나는 한편 한국 바이오 스타트업들과도 만남을 가졌다.

호스킨스 사장은 “페어팩스에서도 제약바이오 산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보고 있다”며 “방대한 유전체 정보를 분석해야 하는 바이오 기업에게 페어팩스에 있는 대규모 데이터센터는 훌륭한 장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제개발청은 지난 2004년부터 미국 진출에 관심있는 한국 기업을 적극 유치하고 있다. 입지 선정은 물론 사업 개발 지원, 정부 기관과 소통을 돕는다.

지난해 페어팩스의 지역 기업들은 340억 달러(약 45조원) 규모의 미 연방 정부 계약을 수주했다. 호스킨스 사장은 “미국 국방부 예산이 연간 800억 달러(약 105조원)가 넘는다”며 “이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미 국방부 청사인 펜타곤은 버지니아 알링턴에, 미 중앙정보국(CIA)은 버지니아 랭글리에 있다.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과 매사추세츠공대(MIT)를 졸업한 호스킨스 사장은 미국 주택담보금융사인 페니메이(Fennie mae)의 개발 수석 이사, 워싱턴DC 경제부시장 등을 지낸 공공정책 전문가다. 버지니아 알링턴 경제개발청장으로 재직 시절 아마존 제2본사를 유치하는 공을 세운 사람으로 유명하다. 얼마 전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평생 공로상을 받았다. 지난 4월 27일 서울 광화문에서 호스킨스 사장을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을 두 번째로 방문한 것으로 안다. 한국에 대한 두 번째 인상이 궁금하다.

“1995년에 농업과 관련한 일로 서울로 출장을 왔던 적이 있다. 현재의 서울은 과거에 내가 봤던 서울과는 아예 다른 도시인 것 같다. 변화의 정도가 놀라울 정도다. 바뀐 것도 많고, 그래서 배울 것도 많았다. 무엇보다 높은 건물이 정말 많이 생겼다.”

(서울=뉴스1) = 서강석 송파구청장이 지난 24일 오후 서울 송파구 문정비즈밸리 일자리 허브센터에서 열린 ‘미국 진출 전략 및 지원 정책 설명회’에서 빅터 호스킨스 페어팩스 카운티 경제개발청장과 악수하고 있다. 송파구와 페어팩스 카운티 경제개발청은 미국 시장 진출 및 사업 확장을 계획하는 한국 기업들에게 다양한 지원 정책을 추진 할 예정이다. (송파구청 제공) 2023.4.25/뉴스1

-2019년 페어팩스 경제개발청 사장으로 취임했다. 이번에 한국을 방문한 목적이 궁금하다.

“한국의 유망한 기업들을 페어팩스로 유치하려고 왔다. 페어팩스에는 전세계 43개국에서 440개 기업이 본사를 두고 있는데, 한국 기업이 81개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이 영국 59개, 이스라엘 50개가 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미국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골프존의 미국 법인도 이 곳에 있다. 동원이 인수한 참치 통조림 업체인 스타키스트와 SK의 전기 자동차 충전 업체인 SK시그넷도 이 곳에 있다. ”

-북부 버지니아는 사이버 보안 산업의 관문으로 통한다. 그런데 이번 방문에서 한국 바이오벤처들을 많이 만났다고 들었다. 페어팩스에 어떤 경쟁력이 있나.

“북부버지니아가 사이버 보안에 있어서는 뛰어난 도시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페어팩스에서 북쪽으로 차로 30분 거리인 메릴랜드에 미국 국립보건원(NIH), 국립의학도서관, 미 식품의약국(FDA), 월터 리드 국립군사병원 등이 위치해 있다. 이 곳에는 제약 바이오와 의료기기 산업 클러스터가 형성돼 있다. 페어팩스의 안정적인 기반 시설과 인접 지역의 인프라를 충분히 누릴 수 있다.

북부 버지니아는 3000~4000메가와트(MW)에 이르는 클라우드 컴퓨팅 수전 용량을 보유하고 있다. 그 다음이 싱가포르로 알고 있다. 유전체 염기서열 분석 작업을 하는 컴퓨터를 따로 구입하는 대신, 우리 데이터센터를 활용하면 훨씬 수월하게 작업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 ”

-하지만 그렇게 보면, 메릴랜드로 가는 게 낫지 않나. 아예 보스턴 클러스터로 간다거나.

“메릴랜드에는 ‘한인 커뮤니티’가 없지 않나. 미국에서 세 번째로 한인이 많은 곳이 페어팩스다. 이곳에는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한국특허정보원(KIPI),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한국이노베이션센터(KIC) 같은 한국 공공기관 미국 사무소가 있다. 페어팩스 거주민의 25%는 아시안이기 때문에 직장 내 다양성과 포용성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미국 진출을 위한 한국인 직원 정착을 고려했을 때 훨씬 유리하다.”

-그렇다면 워싱턴DC와 비교하면 어떤가.

“페어팩스와 메릴랜드, 워싱턴DC를 구분해 경쟁을 하는 구도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페어팩스와 메릴랜드는 서울의 강남과 강북처럼 가까이 있다. 앞서 언급한 도시들은 범 워싱턴 광역권으로 봐야 한다. 워싱턴 광역경제권의 인구는 600만이고, 이 가운데 300만 명이 근로자다. GDP는 5000억 달러(약 660조원)로 미국에서 4번째로 큰 시장이다. 하나의 시장 경제 권역으로 봐야 한다. 차로 20~30분 거리에 있는 도시를 구분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최근에 페어팩스에 사무실을 연 한국 바이오 기업이 있나.

“진단기기를 제조하는 한국 업체 한 곳이 미국 법인을 준비하는 것으로 안다. 이전 작업이 마무리되면 발표할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기업 지원 프로그램이 있는지 궁금하다.

“개발청 자체적으로 저금리 대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미 식품의약국(FDA) 인허가 과정에서 이해를 도와주는 컨설팅 회사들도 여럿 있다. 개발청과 컨설팅사의 도움을 받아 FDA 승인 프로세스를 시작하려는 한국 바이오벤처도 있다. 한인 과학자 모임도 활성화돼 있어서, 초기 정착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교통은 어떤지 궁금하다.

“워싱턴DC 댈러스 국제공항이 가까이 있다. 댈러스 국제공항에서는 인천국제공항을 포함해 전세계 주요 도시로 향하는 수백 대의 직항편이 있다. 볼티모어, 필라델피아, 뉴욕 등 동부 해안도시로 차로 이동할 수 있으며, 댈러스 공항에서 비행기로 2시간이면 미국 전역의 60%에 도달할 수 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가는 직항편이 없으면 최대 23시간까지도 걸린다. 동원그룹에서 스타키스트 본사를 이전할 때도 한국으로의 직항편 접근성을 고려한 것으로 안다.”

-사무실 임대 비용 등은 어떤가.

“북부 버지니아 전역에 중소기업 워킹센터를 두고 있다. 월 350~450달러(약 40만~50만원) 정도면 임대해서 쓸 수 있다. 필요하다면 더 큰 공간을 빌릴 수도 있다. 보스턴을 비롯한 미국의 다른 대도시의 임대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하다. 여기에 한국어와 영어 소통이 가능한 직원들이 무료 상담 지원 서비스를 제공한다. 한국 기업들이 미국 시장 진출에 있어 발판이 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고 생각한다.”

-한국어 상담 서비스를 따로 운영한다는 뜻인가.

“페어팩스 경제개발청에는 한국어와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직원들이 한국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이것은 미국의 그 어떤 카운티에도 없는 서비스다. 새로운 터전을 일구러면 강을 건너 새 땅으로 가야 한다. 다리가 있으면 강을 건너기 훨씬 수월하다. 수영을 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풍랑을 만날 수도 있다. 경제개발청은 미국으로 향하는 강을 건너는 다리라고 생각해 달라.”

-이번 한국 방문에서 성과는 있었나.

“이번에 100여곳의 기업들을 만난 것으로 생각된다. 이번 방문은 씨앗을 심는 작업이라고 봐야 한다. 기업 유치는 종자를 뿌리고, 수정한 다음, 물을 주고 시간을 두고 자라게 한 다음 수확을 하는 작업이다. 이번 방문이 당장 성과를 내지 못한다고 해도 시간을 두고 관계를 유지하면, 동원의 사례와 같은 경우가 나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바이오 벤처를 포함해 한국의 스타트업은 잠재성이 뚜렷하다.”

사진 / 26일 오전, 서울 중구 조선일보미술관에서 빅터 호스킨스 미국 페어펙스카운티 경제개발국 CEO가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3.4.26. / 고운호 기자

-미국에서 성공한 도시정책전문가로 통한다. 비결이 있나.

“모든 일은 문제 해결의 과정이다. 문제를 잘 해결하려면 올바른 결정을 해야 한다. 그리고 올바른 결정을 하려면, 어려운 일부터 해야 한다. 사람의 에너지는 한정돼 있고, 그 에너지를 가장 어려운 일에 먼저 지출해야 한다.

-하기 싫은 일부터 먼저 하라는 뜻인가.

“어려운 일을 극복하고 나면, 나머지 일들은 쉬워 보이지 않나. 하기 싫은 것부터 먼저 해결해 버리는 것. 그게 나는 성공의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말이 있나.

“내가 대학원을 졸업한 후 잡은 첫 직장이 한인 커뮤니티와 차로 5분 거리에 있었다. 그 회사에서 서울 출장을 다녀왔고, 거의 30년 만에 서울을 다시 찾았다. (잠실에 있는) 123층의 고층 빌딩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한국의 경제 성장은 ‘기적’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나는 한국이 이룬 경제적 기적의 일부를 페어팩스로 유치하고자 한다. 우리는 한국의 기업들을 맞이할 준비가 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