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오케스트라

얼마 전 국내 바이오벤처인 바이오오케스트라가 다국적 제약사와 최대 8억6100만 달러(약1조1100억원 규모)의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 공동개발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히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반대로 회사 측에서 계약 상대방에 대한 정보와 초기 선급금과 같은 기초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다보니 의구심을 샀다.

신생 바이오벤처의 계약 체결 자료는 믿을 수 없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류진협 바이오오케스트라 대표는 이에 대해 “다국적 제약사 측이 정보를 공개하길 원하지 않기 때문에 밝히지 못했다”며 “선급금도 마찬가지로 공개할 수 없지만, 1조원 가치의 치료제를 만드는 연구비로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바이오오케스트라는 유전자 정보를 전달하는 RNA(리보핵산)을 활용해 알츠하이머 치매와 같은 퇴행성 뇌질환을 치료하는 의약품을 개발하는 곳이다. 퇴행성 뇌질환은 도파민(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하는 신경세포가 소실되면서, 뇌에 독성 단백질 찌꺼기가 쌓여 기능이 떨어지면 생기는 병이다.

뇌 속 독성 단백질만 제거하면 병을 치료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실은 간단치 않다. 사람의 뇌세포는 외부의 바이러스나 박테리아로부터 뇌를 보호하는 ‘뇌혈관장벽(BBB)’으로 단단히 막혀 있기 때문이다. 약이 있어도 이 장벽을 뚫고 들어갈 정도로 농도를 높이면 독성이 커져서 사람에게 쓸 수 없고, 독성을 낮추면 효과가 없다.

바이오오케스트라는 약물을 실어서 뇌혈관 장벽을 통과해 뇌세포에 도달할 수 있는 약물전달 플랫폼(BDDS, Biorchestra Drug Delivery System)을 자체개발했다. 약물전달 플랫폼은 정맥주사로 짧은간섭RNA(siRNA), 메신저RNA(mRNA)를 실어서 뇌 속으로 보내게 된다. 이번에 공동 개발 계약을 맺은 다국적 제약사는 RNA를 활용한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으며, 이 약물을 뇌 세포까지 전달하는데 이 플랫폼을 활용하고 싶어한다고 한다.

류 대표는 “다른 제약사와 BDDS 플랫폼을 활용한 치료제 추가 공동개발 및 기술 이전 가능성이 있다”라며 “RNA물질은 길이와 종류에 따라 여러 개가 있으며, 각각의 뇌 전달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플랫폼을 사용을 확장할 수 있다”고도 말했다. 바이오오케스트라는 지난해 SK바이오팜(326030)과 이 이 플랫폼을 활용해 miRNA를 타깃하는 뇌전증 신약 후보물질 발굴을 위한 공동연구개발 협약도 체결했다.

바이오오케스트라는 모더나, 악시아에서 임상개발 임원을 지낸 루이스 오데아 박사를 최고의학책임자(CMO)로 영입했다. 류 대표는 2년여 전 미국 뉴욕에서 진행하는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에 참가했는데, 이 프로그램에서 오데아 박사를 멘토로 만났다. 류 대표는 바이오오케스트라 상장(IPO)계획에 대해선 “상장 자체는 급하지 않다”며 “회사가 가장 좋은 가치를 받을 때 상장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지난 2016년 대전 지역 개방형 창업보육센터(BI) 네트워크에서 5억원을 첫 투자받은 바이오오케스트라는 작년 2월 시리즈C로 545억원을 확보했다. 작년 프리밸류로만 4500억원의 가치를 인정 받았고, GS홀딩스, 종근당홀딩스도 전략적투자자(SI)로 참여했다. 바이오오케스트라는 부부인 류진협 일본 도쿄대 의대 병리 면역 미생물학 박사와 조현정 건양대 의대 임상병리학과 교수가 공동 창업했다. 이후 류 대표가 혼자 회사를 맡아 경영을 하고 있다. 다음은 류 대표와의 일문일답.

-이번에 공동개발 계약을 맺은 다국적 제약사는 어디인가. 왜 공개를 하지 않나.

”상대 회사에서 공개하지 않을 것을 계약서에 명시했다. 회사에서 개발하는 신약 후보 물질 한국 생산 사실을 비밀로 두고 싶은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번 계약 당사자 외에 올해 계약을 할 가능성이 있는 다른 글로벌 제약사들도 있다.”

-추가 계약 가능성이 높다는 건 어떤 뜻인가.

“이번에 기술이전한 것과 마찬가지로 플랫폼 기술을 다른 곳과 공동개발하는 식으로 기술 이전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RNA물질이 여럿 있는데 짧은 거, 긴 거, 두 개로 겹쳐진 것 등 다 하나 하나가 각각의 다른 뇌 전달체계를 갖고 있고, 이를 활용해 치료제를 개발하는 회사들도 제각각이다.”

-이번 계약은 공동개발인가 기술이전인가.

“혼합된 형태라고 봐야 한다. BDDS플랫폼 기술을 이전해야만, 공동연구를 할 수 있는 구조의 계약이다. 우리 후보물질과, 그들의 후보물질을 융합해 새로운 치료제를 만들어 내는 계약이다.”

-선급금은 얼마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나.

“선급금을 공개할 수 없도록 계약서에 묶여 있다. 속시원하게 말하고 싶은데 못해서 답답하다. 금액 자체는 그렇게 만족스럽지 않지만, 1조짜리 가치를 만드는 연구비로서는 충분하다고 본다. 지금도 다국적 제약사 관계자들이 한국에 와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렇다면 바이오오케스트라의 기술은 어떤 점이 우수한가.

“정맥주사(IV)제형으로 RNA 약물을 전달하는 BDDS플랫폼에 관심을 보였다. 뇌질환을 치료하려면, 해당 약물이 뇌혈관 장벽 통과해야 한다. 다만 효과가 좋은 물질을 개발해도, 독성이 심하면 사람에게 쓸 수가 없다. BDDS플랫폼은 독성 우려 없이 뇌혈관 장벽을 뚫을 수 있는 물질이다. 사실 전세계적으로 독성 단백질을 치료하는 물질을 개발하는 회사들은 많지만, 전달하는 플랫폼을 보유한 곳은 많지 않다. 오데아 박사도 이런 잠재력을 보고 바이오오케스트라의 CMO로 합류했다.”

-오데아 박사는 어떻게 CMO로 합류하게 됐나.

“모더나에서는 RNA를 백신에 사용하는 데 성공했지만, 오데아 박사는 RNA가 뇌질환 치료에 가능성이 높은 기술이라고 봤다. 미국 동부의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팅(육성) 프로그램에서 오데아 박사를 멘토로 만났다. 이 프로그램의 생명과학 분과에서 한국 스타트업이 참가자로 선정된 것은 우리가 처음으로 안다. 그 프로그램의 특징이 화이자 노바티스 출신의 전문가들이 자문역으로 도움을 주는데, 이 과정에서 인연이 됐다. 오데아 박사는 미국 보스턴 법인에서 주로 활동한다.”

-후보물질을 최종 상업화하는 데까지는 얼마나 걸릴 것으로 보나.

“10년까지 걸리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신약을 개발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허가를 받아본 기업이기 때문에,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것으로 기대된다.”

-상장은 언제쯤으로 계획하고 있나.

“투자자들이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언제라고 일정을 정하기는 어렵다. NH투자증권 삼성증권을 주관사로 선정해 준비는 하고 있다. 회사가 가장 좋은 가치를 받을 때 상장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