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28일 인천 송도 컨벤시아 2층 대회의실은 이른 아침부터 셀트리온(068270)의 정기 주주총회를 찾은 주주들로 북적였다. 양복 차림에 목발을 짚은 노신사를 비롯해 간편한 차림의 등산복을 입은 50대 여성, 벙거지 모자를 쓴 청년까지 다양한 연령대로 구성됐다.
이날 새벽 부산에서 첫차를 타고 왔다는 이들도 보였다. 속절없이 떨어진 주가에 화가 난 일부 주주는 총회가 시작되기 전 '기우성 부회장 퇴진' '자사주 소각'이란 글자가 쓰인 붉은색 띠를 머리와 가슴에 두르고 '사퇴'라는 붉은색 글씨가 적힌 마스크를 참석자들에게 나눠줬다.
한 주주는 총회장 한쪽에 마련된 임원진 좌석을 손으로 가리키며 "서정진 명예회장의 장남인 서진석 셀트리온 공동의장이 저 자리에 앉는다"며 "셀트리온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형편없이 떨어졌는데 정작 연봉이 20억이 넘는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이 과정에서 이를 만류하는 셀트리온 직원과 주주 사이에 마찰이 빚어지면서 고성이 쏟아졌다.
서 명예회장은 이날 영업보고 시작 전에 주총장 연단에 올랐다. 그는 "올해는 위기와 기회가 함께 있는 해"며 "제가 생각없이 컴백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 명예회장은 이어 "주가가 떨어져 화가 난 주주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고 너무 죄송스럽다"며 연거푸 고개를 숙였다.
주총이 시작했지만, 주주들의 항의로 경영진의 보고가 중단되기도 했다. 서 명예회장은 주총장 외부에 따로 마련된 기자실을 찾아 경영에 복귀한 배경을 설명했다. 서 명예회장은 전날 보도된 차남인 서준석 셀트리온 헬스케어 이사의 실종 사건과 관련해 "서 이사가 신경안정제를 먹고 술을 마셔서 그런 일이 벌어진 것 같다"고 해명했다.
주주들은 이날 서 명예회장이 퇴장한 이후 자사주 소각을 통한 주가 부양, 기우성 대표 부회장을 포함한 경영진 총사퇴, 셀트리온 헬스케어 3사의 조속한 합병을 요구했다. 셀트리온의 주가는 코로나19 항체 치료제인 렉키로나 개발에 성공한 2021년 12월 36만원에서 이달 15만 1100원으로 60%가량 급락했다.
지난해 정기 주주총회에서는 기우성 부회장은 주가가 주당 35만원으로 회복될 때까지 최저임금을 받겠다고 밝혔고, 서 명예회장은 '구원투수'를 자임하면서 등판해 '3사 합병' 의지를 강조하며 주주를 달랬다. 지난해 3월 셀트리온의 주가는 16만7000원이었다.
이날도 기 부회장과 서 명예회장은 임금 반환과 3사 합병을 약속했지만, 성난 주주를 달래기엔 한참 역부족으로 보였다. 한 주주는 "셀트리온이 신뢰를 강조하지만, 정작 경영진이 주주와 한 약속은 단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며 거세게 항의했다.
또 다른 주주는 "기 부회장이 최저임금을 받은 게 맞는지, 급여 원천징수 영수증을 공개하라"며 "기 부회장은 성과급도 받아선 안된다"고 항의했다. 한 주주는 "기 부회장은 급여를 안 받는 대신, 셀트리온 주가가 오를 때까지 그 돈으로 셀트리온 주식을 사라"고도 했다.
이날 주총에서는 서 명예회장이 다시 사내이사로 선임됐고 기 부회장은 사내이사로 재선임됐다. 서 회장은 신규 선임이라 임기가 2년이고, 기 부회장은 중임이라 임기는 3년이다. 하지만 이사의 보수 총액 한도를 90억원으로 동결하는 안건에서는 주주 불만이 폭발하면서, 목발을 짚은 한 주주가 "숨이 막힌다"며 퇴장하는 일도 있었다.
한 주주가 "서 명예회장은 갑부가 됐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부도 잃고 명예도 잃었다"고 소리치자 서 명예회장은 "뼈 아프게 명심하겠다"고 했다. 서 명예회장은 자사주 소각 요구에 대해 "올해 연말에 기업 인수합병(M&A) 기회가 있을텐데, 주식을 팔아버리거나 소각하면 오히려 손해가 될 수 있다"며 "주식을 맞교환 하는 방식으로 M&A를 할 때 쓰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서 명예회장은 기 부회장과 아들 서진석 의장에 대한 퇴진 요구에 대해 "지금 당장은 위기 상황이라서 (제가) 잠시 참여하고 있지만, 회사의 미래에는 내가 오히려 리스크가 될 수 있다"며 두 사람의 사퇴 가능성을 일축했다. 다만 기 부회장은 주주들의 거센 요구에 "자리에 연연하는 사람이 아니다"며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다"고 답했다.
주주와 서 명예회장과의 질의응답에서는 코로나19 치료제인 렉키로나를 둘러싼 정치색 논란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서 회장은 "2년 전에 코로나는 이미 정치적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심지어 병원의 의사들도 둘로 나뉘어져 있더라"며 "이래서 한국이 아니라 해외에서 주로 사업을 하려고 한다"고도 말했다.
서 명예회장은 이날 올해 영업 전략, M&A 계획, 신약 개발 포트폴리오를 주주에게 설명했다. 서 명예회장은 "현재 영위하는 사업과 전혀 다른 분야의 기업이라고 하더라도 기회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검토해서 그 시장도 과감하게 들어가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또 글로벌 제약사인 박스터인터내셔널의 바이오파마 솔루션 사업부문 인수 검토 보도에 대해선 "쳐다보는 대상"이라고 말했다.
서 명예회장은 셀트리온 3사 합병 시기에 대해선 "계획대로 한다"면서도 "지금 같은 시장 상황에서는 펀드가 운영이 안되기 때문에, 시장이 안정되는 올 연말 (시도하려고 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올해 헬스케어가 2조 5000억 이상의 매출을 올리도록 최선을 다하고, 셀트리온도 2조원 매출을 내는 것이 목표"라며 "(실적으로 주가를 견인하기 위해) 직접 영업사원처럼 뛰면서, 문 앞에서 기다려서 만나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