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 치료 받으러 가면 병원에서 곡소리가 나요. 저는 항암 치료 받으러 갈 때 무한도전 전편을 내려받아서 갔어요.”
방송인 홍진경이 지난해 방송에서 자신의 난소암 투병 과정을 공개하면서 화제가 된 말이다. 웃음이 암 치료에 도움이 됐다는 말에 암 환자들은 공감했다. 홍 씨는 다행히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난소암은 ‘여성암 사망률 1위’의 고약한 암이다.
난소암은 난소와 나팔관에 암세포가 생긴 질환이다. 난소는 자궁 뒤 쪽에 있는 생식 기관으로 여성 한 명이 초경을 하는 13세에서 50대 폐경까지 평생 400~450번 배란을 한다. 난소와 나팔관은 배란을 할 때마다 세포 분열을 하는데, 이런 분열 과정에서 암세포가 생긴다.
난소는 3~5㎝ 정도로 크기가 작지만, 난소암은 사정이 다르다. 난소 암종양은 커지면, 포자(胞子)를 뿌리듯 뱃속에 좁쌀같이 자잘한 암세포를 퍼뜨린다. 이렇게 퍼진 암 종양은 수술로 완벽히 제거하기도 어렵고, 항암제를 써도 자주 재발해 치료가 어렵다. 갑상샘암과 유방암은 5년 생존율은 90%가 넘지만, 난소암은 64%에 그친다.
국내 난소암 수술 1인자로 통하는 국립암센터 임명철 산부인과 교수는 “난소암은 전조 증상이 없고, 검진도 어렵고, 전이가 됐을 때 복강으로 넓게 퍼지기 때문에 수술이 어렵지만, 난소암 수술 경험이 많은 수술팀은 종양을 충분히 제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임 교수 수술팀은 약 42℃로 데운 항암제를 세포가 퍼진 복강 안에 넣어 치료하는 온열항암화학요법(하이펙⋅HIPEC)을 난소암에 적용해 효과를 입증한 연구 결과를 내놓으며 주목을 받았다. 항암제를 데워서 주입하는 시도는 과거에도 있었지만, 난소암에 대입해 논문으로 낸 건 임 교수팀이 처음이다.
임 교수는 난소암 대가로 국민훈장(동백상)을 받은 박상윤 국립암센터 전 자궁암센터장의 직속 제자다. 하이펙은 박 전 센터장과 임 교수가 함께 개발했다. 임 교수팀은 지난 2017년 ASCO에서 첫 발표를 했고, 이후 작년 3월 미국 의사협회 공식 학회지(JAMA Surgery)에도 실렸다. 임 교수를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난소암은 어떻게, 왜 생기는 건가.
“난소암은 나팔관과 난소에 암세포가 생긴 병이다. 자궁암이나 위암, 대장암은 장기 안쪽에서 암이 생기고, 바깥으로 전이가 된다. 예를 들어 자궁경부암의 경우, 암세포가 자궁 근육을 뚫고 나가는 시간이 있으니 검진을 통해 잡아낼 수 있다. 반대로 난소는 뱃 속 깊숙히 있는데다, 장기의 껍데기, 즉 상피에서 암이 생기고, 어느 정도 자라면 툭 터지며 배 안으로 순식간에 퍼진다. 이 때문에 암을 추적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해서, 검진이라는 개념이 없다.”
-하지만 난소암과 자궁경부암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자궁내막암, 자궁경부암은 질출혈이라는 초기 증상이 있고, 자궁경부질 세포 도말검사라는 검사를 통해서 검진이 가능하다. 반대로 난소암은 증상도 없고, 검사하기가 어렵다. 난소암은 종양이 커지면 좁쌀을 흩뿌린 것처럼 암세포가 뱃속으로 퍼지기 때문에 수술도 어렵다.”
-사방에 뿌려진 암세포를 어떻게 제거하나.
“복막 사이에 페인트처럼 사방에 퍼진 암세포를 긁어내는 식이다. 난소암은 여러 장기로 암세포가 퍼지기 때문에 수술이 어렵지만, 반대로 위암, 대장암과 비교하면 제거하기가 어렵지도 않다. 정상 조식의 겉에 묻어있기 때문에 벽지를 벗겨내듯 떼 내면 된다. 예를 들어 횡경막 근육에 전이가 됐다면, 정상 조직은 보전하면서 복막만 벗겨내는 식이다. 이렇게 벗겨낸 복막은 나중에 재생이 된다.”
-하지만 수술 자체가 매우 까다롭게 들린다.
“어려운 수술이 맞다. 난소암이 전이된 조직을 잘 알고 있는 타 과 선생님들과 같이 수술을 해야 한다. 주로 대장외과, 간담췌 외과, 흉부외과 교수님이 많이 들어온다. 수술 뿐만 아니라 영상의학과, 병리학과, 환자를 파악하는 응급실 외래 병실의 간호사 선생님까지도 수술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원활하게 치료할 수 있다. 그런 수술 협진 결정을 하고, 실행해 내는 경험을 쌓는 것은 쉽지 않다.”
-항암제를 뜨끈하게 데워서 환자 뱃속에 넣는 ‘하이펙’을 난소암에 적용해 주목을 받았다. 하이펙의 원리는 어떻게 되나.
“따끈하게 데운 항암화학제를 복강 안에서 순환시켜서 수술 후 남아있는 미세 종양을 제거하는 방법이다. 사우나에서 열탕에 들어갔다 나오면 이물질(때)이 잘 벗겨지는 것을 생각하면 좀 쉽다. 데운 항암제를 복강에 직접 넣은 다음에 한 시간 쯤 후에 빼내게 된다. 항암제를 복강 안에 직접 노출시키기 때문에, 항암 치료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항암제가 1시간 30분 정도 종양이 있는 부위에만 노출되기 때문에 항암제가 몸 전체로 흡수되는 걸 막아 전신 부작용도 줄여 준다. 그리고 42℃ 정도의 온열은 항암제가 종양으로 침투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연구도 있다.”
-항암제를 데운다는 발상은 어디서 가져온건가.
“항암제를 데우는 건 아주 오래 전부터 해 왔던 기법이다. 위장에 콧물같은 끈끈한 점액종이 있으면, 42℃로 물을 따끈하게 데워서 넣었다 빼면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된다. 배가 아플 때 따뜻한 핫팩을 배에 대고 있으면, 통증이 줄어들지 않나. 그런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하이펙을 쓰면 치료의 생존 곡선이 뒤쪽에서 벌어진다.”
-그게 무슨 뜻인가. 뒤가 벌어지다니.
“하이펙을 쓴 난소암 환자가 장기생존율이 올라갔다. 암 환자가 장기 생존하려면 재발이 없는 게 도움이 된다. 하이펙을 쓰면 재발이 줄어든다. 그러니 생존의 이득이 더 큰 것이다. 하이펙은 현재 여러 임상연구가 진행 중이다.”
-이제 예방 쪽 얘기를 좀 해보자. 폐경이 되면 배란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난소암 걸릴 걱정은 안해도 되는 거 아닌가.
“전혀 사실과 다르다. 부인암은 폐경 이후에 많이 생긴다. ‘배란도 안하는데 무슨 난소암이야’라고 하겠지만 난소암은 주로 폐경 이후에 발병한다. 난소 세포는 배란을 할 때마다 분열하는데, 배란이 누적되면 될수록 암세포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초경이 빠르거나, 폐경이 늦으면 난소암에 걸릴 위험이 높다. 반대로 임신이나 모유 수유 기간이 길다면 확률이 떨어진다. 이 기간은 배란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난소암을 미리 예방할 방법은 없는 건가. 미국 여배우 안젤리나 졸리가 BRCA(브라카) 유전자 변이가 있어서 유방을 절제했다. 난소암 환자의 20% 정도 브라카 1/2 변이가 나타난다고 들었다.
“혈액검사로 브라카 유전자 변이를 포함해 RAD51D, RAD51C, BRIP1 등의 유전자 변이를 확인 가능하다. 하지만 브라카 변이가 없다고, 난소암에 안 걸리는 것도 아니다. 전체 난소암의 약 80%는 유전자 변이 없이 발병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브라카 변이만 보면, 난소암은 20%, 유방암에 걸릴 확률은 60~80%다. 브라카 변이는 부인암 외에도 췌장암, 대장암, 전립선암에도 영향을 미친다.”
-난소암에 걸리는 사람 10명 중 8명이 브라카 변이가 없다면, 변이 예방이라는 개념이 의미없게 느껴진다 .
“발병율만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암’ 이라면, 사망까지 고려해야 한다. 사망률은 난소암이 훨씬 높다. 그래서 난소암 유방암 가족력이 있거나 브라카 변이가 있으면 경구피임약을 권하기도 한다. 배란을 멈출 수 있으니까. 한국에서는 유전자 변이로 난관과 난소를 미리 절제할 수 있는 수술이 지난 2012년 건강보험 적용이 됐다. ”
-난소 난관 절제는 언제 권유하나.
“예를 들어 전립선암이나 대장암 진단을 받은 남성 환자가 브라카 변이가 있다면, 딸인 자녀에 유전자 검사를 권유한다. 브라카변이는 우성 유전이라서 50%로 유전되기 때문이다. 검사 결과 딸이 브라카 1번 변이를 갖고 있다면 난소 절제를 고려할 수도 있다. 브라카 변이 중에서도 1번은 암의 발병이 빠르기 때문이다.”
-브라카 1번 변이가 있다면, 30대 이하 젊은 여성에게도 절제를 권유하나.
“1번 변이가 있고, 자녀를 출산했고, 출산 의향이 없는 경우에는 적극 권유한다. 부인암은 폐경 이후에 많이 발병하지만, 젊은 나이에 난소암을 진단받은 경우도 있었다. 브라카 변이가 있는 30대 환자였다. 그 환자를 계기로 예방적 절제술을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고위험군은 적극적으로 난소 절제를 하는 게 좋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는 뜻인가.
“꼭 그 환자가 계기가 된 건 아니다. 아무 증상이 없는데도, 절제를 하려고 열어 보면 약 5%의 환자에서 미세하게 복강 안쪽에 암이 발견된다. 암이 터지기 직전의 상태였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통상적으로 이런 경우에 3%는 암 관련 병변이 나온다. 예를 들어 60대 난소암 환자가 있다면, 같은 50대 동생이나 80대 노모가 브라카 변이를 갖고 있을 수 있다. 40대가 넘고 고위험군이면 보통 난소 절제술을 해야한다.”
-절제를 권유하면 환자들 반응은 어떤가.
“10명에게 수술을 권유하면 4명은 안한다. 난소를 절제하는 수술은 복강경으로 15~20분이면 끝나는데도 그렇다.”
-왜 안하려고 하는 건가.
“수술이 무섭고 그 연세의 어르신들은 ‘내가 폐경인데, 부인암은 안걸릴거야’라는 생각이 커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조기 검진이 어렵다고 설명해도 ‘검진 자주받으면 되겠지’라고 막연한 생각을 하는 분도 있었다. 과거에 언니가 암에 걸려서, 여동생에게 난소 절제를 권유했는데 안 했다가, 암 진단을 받고 내원한 사례도 있다. 복수가 찬 상태에서 암이 발견된 것과, 난소 절제술에서 암을 발견하는 건 차원이 다르다. 그 당시 그 환자는 정말 많이 후회하셨다.”
-요즘에는 린파자(성분명 올라파립)와 제줄라(성분명 니라파립) 아바스틴(성분명 베바시주맙) 같은 표적 치료제가 난소암 환자들에게 화제라고 들었다.
“린파자와 제줄라는 PARP(파프⋅세포주기 조절, DNA 복구 등에 관여하는 효소)저해제다. 의학에서는 ‘합성치사’ 라는 이론이 있다. 모든 세포는 DNA가 손상되면 스스로 복구를 시도한다. 브라카 변이 암세포가 있는 환자에게 파프 억제제를 투여하면, 브라카 암세포만 DNA 복구를 못하고, 암세포가 죽는다. 파프저해제가 효과가 있으니, ‘이제 암 수술을 없어질 것이다’ 라는 얘기도 학계에 나왔다. 하지만 이런 생각과 달리 수술을 통해 종양을 최소화해야 약이 더 잘 듣는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다.”
-어째서 그런 결과가 나왔나.
“몸 속에 남아있는 종양이 적으면 적을수록 파프저해제를 썼을 때 더 효과가 좋게 나타났다. 난소암은 씨앗을 흩뿌린 듯이 쭉 번지는 암이라고 설명했다. 뿌리는 씨앗이 똑같은 종류의 암세포라면 표적 치료가 가능하지만, 난소암은 그렇지 않았다. 흩뿌리는 씨앗(종양)의 성질이 여러 종류다. 그러니 수술로 종양을 최대한 제거하면 할수록, 이질성이 해소되고, 항암 치료가 잘 되는이치다. 그리고 파프저해제를 쓴 환자가 재발이 된 경우 이후 항암치료제 반응이 더 좋지 않을 수 있고, 부작용, 2차암에 우려도 있다.”
-PARP저해제 외에 최근 시도되는 난소암 관련 새로운 표적 치료제와 치료법이 궁금하다.
”백금 기반 화학요법에 내성을 보이는 난소암에 대해 엘라헤레 {미르베툭시맙 소라브탄신}이 객관적 반응율 32%를 보여서 2022말 미국 FDA의 조건부 승인을 받았다. 난소암 표면에 있는 FOLR1(Fra) 단백질에 선택적으로 결합하는 항체와 절단링커, 미세소관 억제재가 결합한 형태다. 난소암 치료 평가 관점에서 반응율은 재발율, 무진행생존율, 총생존율 보다는 초기 결과로 향후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난소암 항암 치료에도 면역항암제가 쓰이는지, 궁금하다.
”난소암에서도 PD-1 억제제(면역 항암제)가 임상에서 활용되지만, 현재 약 10%의 반응율에 머무르고 있다. 면역항암제가 잘 들으려면, 우리 몸의 면역세포가 암을 잘 찾아낼 수 있게 종양의 항원이 잘 발현을 해 줘야 하는데, 난소암은 그게 쉽지 않다. 전이된 종양과 정상 세포간에 상호작용이 있어야, 면역세포가 쉽게 접근을 할 수 있는데, 난소암은 그게 안된다.“
-그렇다면 CAR-T(카티) 연구는 어디까지 왔는지 궁금하다.
”CAR-T는 환자에서 T세포를 추출해서 암종양의 특정부위를 찾아내 파괴하도록 설계한 맞춤형 T 세포를 뜻한다. 난소암에서는 아직 임상에서 활용 가능한 정도의 임상 시험 결과는 없다. 난소암의 특징이 암세포가 흩뿌려져서 정상 조직에 얹혀져 있는 형태인 데다, 전이 종양 간의 이질성이 치료법 개발의 난관으로 작용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수술도 어렵고, 환자 수도 적은 난소암을 연구한 계기가 있으신가.
“수술은 오래 걸리고, 힘든데,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와서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난소암은 암세포가 어느 부위로 퍼졌느냐, 어떻게 치료하느냐에 대한 결정이, 의료인의 주관적 경험에 좌우된다. 표준치료라는 게 없다. 뱃 속에 종양을 최대한 적게 남기려고 노력하면, 그만큼 생존율이 좋아진다. 내가 열심히 노력하면, 환자의 상태가 좋아질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람이 살면서, 들인 공만큼 결과가 좋게 나오면 기분 좋지 않나.(웃음)”
임 교수팀에게 의술을 배우려고 일본 싱가포르 등 선진국에서도 의사들이 찾아온다. 이렇게 찾아온 한 외국인 의사는 임 교수팀의 수술을 보고는 ‘수술을 이렇게 많이 하는데, 저 많은 종양을 정말 다 떼는군요’라고 했다고 한다.
임 교수에게 좌우명을 묻자 “연구팀에게 ‘리뷰를 잘하자’라고 늘 말한다”라고 답했다. 임 교수에게 ‘반성(反省)하라는 건가’라고 묻자 그는 “맞긴 맞는데, 우리는 반성의 뜻이 다르다”라며 “반드시의 반, 성공한다의 성, ‘반드시 성공한다’는 뜻이다”라고 답했다. 국립암센터 임명철 교수팀의 ‘반성(반드시성공)’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