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치플러스 양지병원 김철수 이사장이 지난 3일 서울 신림동 에이치플러스 양지병원 2층 진료실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김명지 기자

1976년 어느 날 서울 관악구 신림사거리의 2층 건물에 있던 ‘김란희 산부인과⋅김철수 내과’로 조기 산통을 겪는 산모가 찾아왔다. 산부인과 전문의인 김란희 원장과 내과 전문의인 김철수 원장 부부가 막 서울에 병원 문을 열었던 첫 해의 일이다. 부인 김 원장이 제왕절개 수술에 들어갔는데, 수술실 의료용 산소통에 산소가 부족했다.

수술 도중 산소가 떨어지면 아기도 산모도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남편인 김철수 원장은 산소통을 빌리려고 대로변 인근 병원으로 뛰어갔다. 10㎏가 넘는 산소통을 등에 지고 500m를 내달렸고, 산모는 무사히 아이를 출산했다. 김 원장은 아이 울음소리를 듣고 나서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올해 개원 47주년을 맞이한 에이치플러스 양지병원의 설립자인 김철수(78) 이사장의 얘기다. 병원 원장이 산소통 메고 길거리를 뛰어야 했던 작은 병원은 대학병원을 제외하면 서울에서 가장 큰 민간 종합병원이 됐다. 40평(132㎡)이던 병원 면적은 본관과 별관 3곳을 합치면 7306평(2만4152㎡)에 이를 정도로 커졌다.

근무하는 의사는 120여명까지 늘었다. 양지병원 본원은 현재 291병상, 32개 임상과, 2개 특화병원, 5개 특화진료센터, 에이치플러스(H+)의생명연구원을 두고 있다. 구로구에는 급성기 재활병원, 재활자립병원이 있다. 미국 시사전문지 ‘뉴스위크’가 선정한 ‘한국의 최고병원 100′에도 4년 연속 포함됐다.

김철수 에이치플러스 양지병원 이사장/ 에이치플러스 양지병원 제공

양지병원은 지난 1일 효천의료재단을 설립하고 제2의 도약을 예고했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 에이치플러스 양지병원 2층 진료실에서 김 이사장을 인터뷰했다. 진료실 문 앞에 ‘진료중,대기시간 0분’이라는 명패가 걸려 있었다. 김 이사장은 지금도 주 5일 출근해 하루 30~40명의 환자를 만나 진료를 본다. 김 이사장은 “의사와 환자가 친해야 병이 빨리 낫는다”며 “환자를 자주 만나고, 환자 질문에 많이 답하는 의사가 명의(名醫)”라고 말했다.

전북 익산 이리고, 전남대 의대를 졸업한 김 이사장은 서울대 의대에서 내과 석사, 고려대 의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보건행정학(단국대)·법학(경희대)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김 이사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후보일 때 후원회장을 맡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달 1일 개원 47주년을 맞아 효천의료재단을 설립했다고 들었다. 법인 설립의 취지가 궁금하다.

“개인 김철수가 경영하던 양지병원이 한 단계 뛰어넘는 성장을 준비한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코로나19 감염병을 비롯해 빠르게 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양지병원이 적절하고 효율적으로 대처하려면 체계적인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직원들의 노고와 노력으로 노력으로 병원이 성장했으니 더 좋은 병원이 됐으면 좋겠다는 취지도 있다. 의료 법인은 국가의 것이나 마찬가지이니까, 사회에 기여하는 좋은 병원을 만들기 위한 첫 출발이다.”

-재단 설립으로 병원이 더 커진다고 봐야 하나. 제2병원 설립과 증축 계획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병원 증축은 계획대로 진행 중이다. 신림동 본관 증축은 지구단위계획과 교통영향평가 등을 거쳐 올해 10월 시공에 들어가 2026년 6월 완공을 목표로 추진한다. 본관 증축과 함께 신관도 신축하고, 지하 포함 연면적은 약 1만 1300평 규모로 증개축한다. 병상 수는 500병상으로 늘고, 의생명연구원도 326병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병원 증축이 마무리되면 경기도에 제2병원을 추진하려고 한다. 제 2병원 건립 외에 경기도 용인에 있는 병원 인수 논의도 진행 중이다.”

-성공한 의사이자, 경영인이다. 본인을 의사와 경영자 가운데 어느 쪽에 더 가깝다고 보시나.

“우리가 독일을 선진국이라고 한다. 독일에서 ‘명의’의 정의가 뭔지 아시나.”

-수술 잘하고, 약을 잘 써서 병을 잘 고치는 게 명의 아닌가.

“독일에서 국민 설문조사로 ‘누가 명의 인가’라고 물었더니 ‘환자 질문에 잘 대답해 주는 의사’라는 답이 나왔다고 한다. 환자 상태를 잘 살피고, 환자의 궁금증에 잘 대답하는 의사가 명의라는 것이다. 의사가 전문의 정도 땄으면 실력은 비슷하다고 본다. (실력이 비슷하다면) 환자 편에 서서 환자 손을 한번이라도 더 잡아주는 의사가 명의가 된다. 지금도 나는 병실을 다니면서 환자들을 만난다.”

-요즘 대학 병원에 3분 진료가 논란이 되는데, 경종을 울리는 말이다.

“우리 병원은 대학병원 교수 출신 의사를 적극적으로 영입한다. 첫 출근하는 의사들에게 제일 먼저 당부하는 말이 ‘환자에게 마음을 주시라’는 것이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마음이 안되는 의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의사는 환자의 마음을 잘 알아야 한다.”

서울 신림동 에이치플러스 양지병원 본관 2층에는 김철수 이사장의 진료실이 있다.진료실 앞에는 '진료중'이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김명지 기자

-양지병원은 실력있는 의료진을 과감하게 영입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난 2019년 비만당뇨수술 최고 권위자인 김용진 센터장을 영입해서 비만당뇨수술센터를 세웠다. 김 센터장은 2020년SRC(Surgical Review Corporation)에서 아시아 5번째로 ‘마스터 서전’으로 선정됐고, 10여년간 2000번 이상 비만당뇨수술을 한 경험이 있다. 최근 중앙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임인석 교수를 명예 원장으로 영입했다.”

-소아과는 기피과가 아니었나. 병원 경영에는 큰 도움이 안될 것 같다.

“그건 맞다. 소아과를 운영해서는 경제적인 이익은 없다고 봐야 한다. 소아진료 대란에, 필수의료를 강화하는 정부 정책에 발 맞추는 차원에서 이 분야를 강화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관악구에서 소아과 환자를 입원시킬 수 있는 병원은 양지병원이 유일한 것으로 안다. ”

-임인석 교수는 소아청소년과 중에서 어떤 분야를 맡게 되나.

“임 교수는 소아청소년과 중에서도 내분비내과, 성조숙증 분야에 최고 대가로 꼽힌다. 양지병원 정도의 규모라면 소아과 전문의 2명 정도면 충분하다. 상급병원들이 소아과 규모를 축소하고 있지만, 우리는 늘렸으니 큰 의미가 있다고 봐야 한다. 또 임 교수를 영입해 수련병원의 면모를 갖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부의 필수의료 지원정책은 어떻게 평가하시나.

“얼마 전 신문기사를 보니, 서울 대학병원 흉부외과에서 하루 종일 수술하고서 190만원 정도 수술비를 받는다고 하더다. 190만원이면 쌍꺼풀 미용 수술비 한 번보다 적지 않나. 의사들도 사람이다. 수련의들도 어떤 과에 가야 돈을 좀 더 많이 벌 수 있을지를 살핀다. 이런 구조라면 기피과에는 아무도 안 간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정부가 과감하게 투자를 해야 한다. 지금 한국 의료는 경제 원리에는 맞지 않는다. 전국의 주유소를 다녀보면 경제원리를 알 수 있다. 신림동에서 휘발유값이 리터(ℓ)당 1500원 쯤 한다. 지방으로 가면 1400원, 서울 강남으로 가면 2000원 씩 한다. 땅값 인건비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물론 의료를 ‘경제’의 잣대로만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람이 몰리고 힘든 과에는 진료비를 차등해서 책정해야 하지 않겠나.”

김 이사장은 지난 2004년 17대 총선 때 관악을에서 의사 출신 정치인으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고문과 맞붙기도 했다. 비록 선거에서 이기지는 못했지만, 지역구 선거 첫 도전에서 33%의 지지율을 거뒀다.

-호남 출신인데, 보수당에서 공천을 받아 출마한 경험이 있다. 보수 이념을 갖고 있으신가.

“6⋅25 때 부모님을 잃었다. 그래서 민주당으로는 못 가겠더라. 그래도 노무현 정부 때 대한병원협회회장을 하고, 대통령 직속 자문위원도 했다.”

김 이사장의 진료실 장식장에는 문재인 대통령 때 받은 대통령 표창과 함께 윤석열 대통령, 가천대 길병원 이길여 이사장 등과 함께 찍은 사진들이 놓여 있었다. 이길여 이사장은 전북 익산 이리여고를 졸업한 후 서울대 의대에서 병리학을 전공했다. 김 이사장과는 동향이다. 김 이사장은 성공한 의료 경영인으로서 두 사람의 공통점을 묻자 “호남 사람들이 고생을 많이 해서 끈기가 있다”며 웃었다.

-현재 대한노인회 부회장으로 계신 것으로 안다. 요즘 지하철 ‘노인무임승차’ 논란이 거세다.

“갑자기 70세로 연령을 올리라는 건 무리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된 배경을 알아야 한다. 그 연령대 사람들이 독일에 가고 중동에 가서 피땀 흘려 일군 나라다. 그에 대한 고마움을 국민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하지만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벌써 국민의 16%를 차지한다. 2025년이면 20%를 넘어 초고령사회가 된다. 그 때가 되면 사회적 부담이 더 커지지 않겠나.

“그 때가 되면 협의를 통해 시범적으로 65세 이상에 대한 (지하철 운임) 유료화를 시도해 볼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리고 노령 인구가 지하철을 타고 움직여야 의료비를 아낄 수 있다. "

-노인 인구가 운동해야 국가가 부담하는 의료비가 줄어든다는 뜻인가.

“호주에서는 60세 이상 인구가 1주일에 나흘 이상 운동한 걸 인증하면 30 호주 달러씩 지원금을 준다. 운동할 때 주는 수당이 의료비 부담보다 적기 때문이다. 사람이 운동을 안 하면 병이 생기고 병이 나면 국가가 의료비를 부담한다. 좀 다른 예라고 볼 수도 있는데, 우리 병원이 비만 수술을 많이 한다. 그런데 비만 수술이 건강보험 급여가 된다. 비만 수술을 했더니 당뇨병과 같은 성인병 만성질환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부가 효과를 생각해야 한다.”

-양지병원에 대해서 더 자랑하고 싶은 게 있으신가.

“장남인 김상일 병원장이 2020년 3월, 세계 최초로 워크스루 선별진료소를 개발해 특허청으로부터 특허를 받았다. 워싱턴포스트 1면 톱기사,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내셔널지오그래픽 등 30여 개 국가, 50여 개 외신이 보도했고, K방역 주역으로 평가받았고, 코로나19 대응 유공부문 대통령 표창을 비롯해, 2020 서울특별시 안전상 등을 수상했다. 이런 점에서 본원이 코로나19 확산 방지에 기여한 바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효천의료재단의 ‘효천(曉泉)’은 무슨 뜻인가.

“‘새벽 미명의 옹달샘’이란 뜻이다. 세상 모두가 고요하고 평화로운 새벽 미명에 맑은 물이 솓는 옹달샘처럼 맑고 깨끗한 정신으로 성실한 삶의 자세를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좀 쉽게 설명하면 앞으로도 계속 환자와 사회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이다. 그렇게 이해해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