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병원 설립자인 이상호 회장(74)은 부산 우리들병원 원장이던 지난 1985년 돌연 프랑스 파리 유학길에 올랐다. ‘앉은뱅이도 일으켜 세우는 명의’라는 입소문으로 부산 병원에 하루 수백명 환자들이 줄을 서던 때였다. 이 회장은 그 당시 수술을 하면 할수록 답답함을 느꼈다고 한다.
은사인 연세대 의대 박수영 교수는 ‘프랑스에서 공부해보라’고 제안했다. 이 원장은 당장 파리 제5대학 데카르트 의대로 연수를 떠났다. 파리에서는 해부학 수업에서 의대생 1명당 시체(검체) 한 구가 돌아갔다. 시체 한 구를 갖고 수십 명이 나눠보는 한국 상황과는 너무 달랐다.
이 원장은 사람의 몸을 들여다보면서 통증을 일으키는 것이 척추 뼈가 아닌, 염증으로 부은 인대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신경을 누르는 인대만 잘라내면 통증을 없앨 수 있다고 확신했다. 이 회장은 1년 6개월 만에 유학을 마치고 그 길로 현미경으로 인대 등을 제거하는 방법 개발에 들어갔다. 현재 전세계 척추 수술의 한 축으로 자리잡은 ‘척추 최소 침습 수술법’의 시작이었다.
이 회장은 소형 카메라가 달린 척추 내시경을 보면서 레이저를 이용해 신경을 누르는 인대와 디스크를 제거하는 수술법을 개발했다. 이 방법은 1㎝ 정도로 절개 부위가 작아서 통증도 적고 간편하다. 그러나 이 회장이 이 수술법을 국내 도입한 1990년대만 해도 대학병원의 신경외과 정형외과 교수들이 강하게 반대했다.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척추 내시경 치료는 고령의 척추 질환 환자들에게 쓰이는 대표적 수술법이 됐다.
우리들병원은 의사들이 부모님의 척추관협착증 수술을 추천하는 병원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최근 서울 청담우리들병원에서 이상호 회장을 만났다. 이 회장은 대한신경외과 서울경인지회장, 대한의학레이저학회장을 역임했으며, 평생을 척추 수술의 발전에 힘쓴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19년 북미척추학회(NASS)의 ‘더 파비즈 캄빈상 골드상’를 수상했다.
이 회장이 진료하는 청담우리들병원은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선정하는 ‘세계 최고 스마트병원’에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선정됐다. 회장의 집무실 책장에는 ‘같은 방법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라는 글귀가 놓여 있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최소절개수술과 최소침습수술의 차이점에 대해서 설명해 줄 수 있나.
“상한 척추 관절을 갈아내서 치료하는 것은 기존의 척추수술과 다를 게 없다. 과거에 등뒤로 크게 잘라냈다면, 최소침습수술은 5~6㎝ 정도로 작게 절개를 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작게 구멍을 뚫어 내시경을 집어 넣은 다음 척추관절이 아니라 문제가 되는 작은 부분만 잘라내지 않는 것이 현미경 최소침습 수술이다.”
-상한 척추 관절을 잘라내지 않고 어떻게 치료를 할 수 있나.
“척추협착증수술의 경우 옆구리에 구멍을 뚫어서 척추로 접근해 인대를 재건하게 된다. 척추관협착증은 한 군데가 문제가 아니라 다발성 즉 여러 곳의 신경이 눌려 통증이 심한 상태일 때가 많다. 미국 일본의 의사들은 신경을 협착 즉, 누르는 것은 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뼈를 잘라냈는데, 막상 해부를 해 보니 뼈가 아니라 ‘나쁜 인대’ 즉 염증이 생겨 부어오른 인대가 신경을 누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염증으로 부어오른 인대가 척추 신경을 눌러 통증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최초로 발견했다는 건가.
“그걸 처음 발견한 건 내가 아니다. 내가 생각해 낸 것은 신경을 눌러서 다리에 마비를 일으키는 것이 뼈가 아니라 나쁜 인대이니, 척추 뼈를 자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퉁퉁 부어서 신경을 누르는 게 인대라면, 뼈는 그대로 두고 인대만 발라 내 버리면 되는 것 아닌가.”
-후유증은 어떤가. 뼈를 자를 때와는 다른가. 인대를 자르지 않은 이유가 있지 않나.
“뼈를 자르는 것과 인대를 자르는 것의 후유증은 비교가 안 된다. 뼈에는 신경이 있기 때문에, 뼈를 잘라내면 수술 후에도 다리가 저리다던지, 허리가 아프다든지 하는 후유증이 남는다. 현미경으로 인대를 잘라낸 것은 다르다. 뼈를 자르는 수술의 후유증 확률이 25%라면, 현미경은 4% 정도에 불과하다. 척추인대재건술에 삽입하는 인공인대는 시간이 지나면 본인 인대처럼 유연해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고, 꾸준히 운동하면 척추건강을 지킬 수 있다. 인대재건술로 허리를 고친 환자 1만 명을 분석해서 SCI급 국제학술지 스파인(Spine)에 발표한 연구 결과다.”
-부산 우리들병원에서 ‘척추명의’로 명성이 자자했다.
“1985~1986년 부산 병원 1층부터 5층까지 복도가 대기 환자로 꽉 찼다. 척추 수술을 받겠다고 옥상에 텐트까지 친 사람도 있었다. 지금은 환자를 보기 어렵지만, 결핵이 척추에 걸리면 신경을 눌러 하반신 마비가 됐다. 이렇게 하반신 마비된 환자를 고쳤다. 등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옆구리와 배꼽으로 갑상선을 수술하듯이 갈비뼈 사이를 뚫고 들어가서 신경을 누르는 염증 부위를 잘라냈다.”
이 회장은 척추뼈 모형을 손에 들어 인대와 신경 척추뼈를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갔다.
“척추뼈를 보면, 디스크는 등이 아니라 배 쪽에 있다. 척추뼈가 뒤에 있으니 등으로 수술하면 쉬워 보이지만, 병변은 반대편에 있으니 그 쪽으로 들어가야 했다. 척추뼈를 다 잘라낼 게 아니라면 뱃속 장기 사이를 파고 들어가서 잘라내는 방안을 고안해 낸 것이다.”
-배 속에 장기가 많은데, 배꼽이나 옆구리를 통해서 어떻게 칼을 넣는다는 건가.
“우리 몸 속 장기가 다치지 않게 손으로 밀어내면 된다. 내장이 있으니 수술이 어렵다고 보는데, 막상 사람 몸을 해부해 보니 척추뼈와 내장 사이에 지방을 포함해서 안전한 공간이 있었다. 그 공간을 손으로 밀어내면서 들어가는 길을 본 것이다. 물론 척추 안쪽으로 대동맥과 대정맥이 흐른다. 이 혈관을 다치지 않으면서 병변을 없애는 건 쉬운 게 아니다.”
-사람 몸이 그렇다는 걸 어떻게 아신 건가.
“연세대 대학원에서 해부학 수업을 들었는데, 박수영 교수가 의학과 생리학의 본산이 프랑스로 가 보라고 제안했다. 그래서 잘되던 병원을 팽개치고 1985년에 프랑스로 갔다. 의대생들과 함께 수업을 들었다. 해부학 교실에 학생 한 명당 시체 한 구를 제공할 정도로 교육 환경이 좋았다. 그런데 그 당시 스웨덴 웁살라 의과대학에서 사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사체를 해부했는데, 부어오른 인대를 잘라냈더니 신경이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논문이 나왔다.”
-지금은 인대를 자르는 수술이 대세가 된 건가.
“그런 건 아니다. 최근 미국에서 척추수술을 받은 환자 케이스를 봤는데, 척추 관절 다섯개를 잘라냈더라. 뼈를 잘라내서 신경을 누르는 압력을 줄이는 감압수술이 아직도 이뤄지고 있다. 한국도 큰 병원에서는 그렇게 시행되고 있다. 척추뼈 사이로 들어가서 인대만 잘라내도 신경이 퍼져서 걸을 수 있고, 다리 저림없이 허리가 펴지는데 말이다.”
-최소침습수술이 적합한 환자들은 어떤 환자인가.
“고치기 어려웠던 환자, 특히 80~90대 고령의 환자를 고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다. 척추관협착증은 60대 이상 고령에서 생기는데, 이 병을 고친 환자는 10년 이상 생명이 연장된다. 수술을 통해 다시 잘 걸을 수 있게 되면서 90대를 바라볼 수 있는 나이가 된다는 것이다.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남성 80세, 여성 85세인데, 이걸 10년 이상 연장할 수 있다.”
-척추수술을 하면 수명이 늘어난다는 건가. 관련해서 연구 결과가 있나.
“10년 생명 연장에 대한 것은 미국에서도 논문이 나왔다. 국내에도 관련 연구가 있는 것으로 안다. 우리들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환자 20여명을 연구한 통계 조사로는 20~30년 수명이 연장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능하다면 조만간 논문으로 만들어서 공개할 계획이다.”
-고령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이유가 있나
“대부분의 의사들이 70세만 넘으면 척추 수술을 거절한다. 어차피 수명이 얼마 안남았는데, 수술하다 사망할 확률이 10%나 되니, 아프지만 그대로 사시라는 취지다. 그런데 뼈를 자르는 수술과 인대를 제거하는 수술은 전혀 다르다. 인대재건술은 출혈이 거의 없고 회복이 빨라 수술 후 사흘이면 퇴원하고 걸을 수 있다. 그러니 나이가 80대, 90대라도 수술을 할 수 있다. 우리 병원에서 수술한 최고령환자는 103세다. ”
-흔히 ‘디스크’라고 불리는 추간판탈출증 수술은 어떤가.
“추간판탈출증의 경우에도 기존 수술법은 디스크를 잘라내는데, 사실 그렇게 많이 잘라 낼 필요가 없다. 통증을 일으키는 것은 신경을 누르는 아주 작은 파편인 경우가 많아서 그 파편을 제거하면 된다. 현미경과 내시경을 활용해서 파편을 제거하면 통증은 사라진다.”
-내시경 레이저를 쓰는 수술을 개발해 내기도 했다.
“나는 레이저를 ‘빛의 칼’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작은 구멍만 있으면, 빛의 칼로 문제가 된 부분을 잘라낼 수 있으니까 얼마나 효율적인가. 단 15분만에 내시경으로 목디스크를 절개 안하고 구멍만 내고 고칠 수 있게 됐다. 1990년대 이 수술법이 보도가 된 이후에 우리들병원으로 환자가 한 달에 3000명씩 몰려들었다.”
-레이저를 쓰는 목디스크 수술도 궁금하다.
“목 디스크(추간판탈출증) 수술은 상한 디스크를 끄집어내고, 새로운 인공 디스크를 넣고 나사못으로 고정하는 것이 정석이다. 현재 국내 대학병원은 물론 미국 일본 등 전세계에서 쓰는 수술법이다. 이 수술을 하면 6개월 정도는 일상 생활이 어렵다. 그런데 내가 발명한 내시경 최소침습수술을 하면 바로 다음날부터 일상생활이 가능했다. 그게 벌써 10여년 전의 일이다. 이제 내시경 디스크 수술은 보편화됐다.”
이 회장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 클리블랜드 척추센터보다 20년이나 앞선 1986년 척추 한 곳만 집중적으로 보는 척추전문병원을 설립했다. 이 회장은 “과거에 재경부 장관을 지냈던 분도 우리들병원에서 목디스크 수술을 받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과거에 내시경 디스크 수술은 ‘검증되지 않았다’고 비판을 받기도 했다.
“석박사를 연세대에서 받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석박사 경력은 아무도 인정을 안 해줬다. 사람들은 내가 부산대 출신이라는 것만 봤다. 서울에 처음 우리들병원을 개원했을 때 박대도 많이 당했다. ‘서울대의대 안 나오셨네요’ 라면서 진료를 취소한 환자도 많았다. 그런데 다시 다 돌아왔다. 다른 대학병원에서는 고령의 목디스크 환자에게 수술을 잘 해 주지 않으니. 지금은 우리들병원 수술법이 사람을 구했다고 해서 감사패 공적패를 받고 있다. 척추학교의 명예의 전당에도 이름을 올렸다.”
-40대에 잘 되던 병원을 두고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간다는 결정을 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정말 세계 1등 세계 최고의 의사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컸다. 국내가 아니라 세계에서 인정받는 최고의 병원이 돼야 되겠다는 열망이 있었다. 한국 환자들이 미국이나 일본 독일로 가지 않고 국내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늘 생각했다. 이제는 반대로 홍콩이나 싱가포르 등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나라의 의사들이 우리들병원에서 연수를 받고 있다.”
우리들병원은 지난 1993년부터 국제교육센터를 두고 학회 및 장단기 연수 방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국제 최소침습척추수술 교육과정(MISS) 등에 참가한 외국인 의사 수는 870여명에 이른다. 2011년 개원한 두바이 우리들병원은 현지화에 성공한 대표적 병원으로 꼽힌다. 이 회장은 “10여년 전만해도 해외병원으로 사람들이 진료를 받으러 나가서 연간 3조원씩 외화가 유출됐다”고 말했다.
-우리들병원이 외국인 의사들 교육에 적극적인 이유가 있나.
“내가 아무리 혼자 수술을 열심히 해 봤자 하루에 5~10명 정도밖에 못 고친다. 1년에 가장 많이 수술을 한 게 5000명이다. 그래서 혼자서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1년에 5000 명씩 10년을 수술하게 되면 5만 명을 고칠 수 있는데, 기술이 있는 의사가 100명이 되면 500만 명을 고칠 수가 있지 않나. 그래서 우리들 병원에서 교육을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술을 배운 사람이 새로 병원을 열면 우리들병원 수익은 줄어들지 않나.
“그건 그렇긴 하다. 일본의 한 의사가 우리들병원 국제센터에서 배우고 일본으로 돌아가 병원을 개원했다. 아이치현의 개원의였는데, 수련과정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가서 나고야와 도쿄에 병원을 세울 정도로 대성공을 했다. 그 덕분에 일본에서 찾아오던 우리들병원 환자 수는 급감했다.(웃음)”
-좌우명이 있으신가.
“내 좌우명은 3D정신이다. 어렵더라도(Difficult) 남들과 다르게(Different) 끊임없이 연마(Discipline)하자. 아무리 어려워도 남다르게 고쳐내자는 얘기다. 기술이 차별화되지 않은데, 해외에서 우리 병원으로 오겠나. 우리가 1등이 되려면 차별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들병원에 전임의로 들어가게 되면, 레이저 기기로 계란을 터트리지 않고, 껍질에 자기 이름을 쓰는 법을 수련한다고 했다. 매주 금요일 오전 7시 30분에 전국의 의료진이 모여서 회의를 한다. 끊임없는 연마를 요구하는 이 회장의 철학이 여기 담겼다.
-어려운 걸 뛰어난 기술로 다르게 만들어내자. 이렇게 이해하면 되나. 수술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나.
“수술은 무출혈 수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확히는 무수혈 수술이라는 표현이 맞다. 수혈을 하지 않고 수술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과학자로서 다른 사람의 피를 수혈하는 건 몸에 나쁘다고 생각한다. 피에는 DNA가 포함돼 있지 않나. 짧게 요약하면, 환자에게 해를 끼칠, 후유증을 남길 수술은 아예 안 하겠다는 것이 내 신조다.”
-정부가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한다. 혹시 의대 신설에는 관심이 없으신가.
“의대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당연히 신청할 생각이다. 내 인생의 목표가 네 가지다. 첫째 우수한 진료. 두번째는 교육, 세번째는 연구를 통해 기록으로 남긴다. 네번째는 사회 봉사. 사실 이 목표는 모든 의사들의 소망이기도 하다. 사정이 여의치 않다면 간호 대학이라도 만들고 싶다. 그렇게라도 사회에 기여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