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를 정춘숙 위원장이 주재하고 있다./연합뉴스

간호사 업무범위 확대를 골자로 한 간호법 제정안과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 받은 의사의 면허를 최소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심의를 건너뛰고 곧바로 본회의에 회부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9일 전체회의를 열어 두 법안을 포함해 7개 법안을 국회 본회의에 직접 회부하는 안건을 무기명 투표 방식의 표결로 의결했다. 이날 표결에서 간호법 제정안은 재적 24명에 찬성 16표, 반대 7표, 무효 1표가 나왔고, 의사면허취소법을 포함한 나머지 법은 찬성 17표, 반대 6표, 무효 1표가 나왔다.

간호법은 지난해 5월 국회 복지위 전체회의를 통과해, 법사위 법안심사 제2 소위원회에 회부돼 있다. 국회법에 따라 법사위에 60일 이상 계류된 법안에 대해서 소관 상임위는 재적 위원 5분의 3 이상 찬성하면 본회의에 직접 넘길 수 있다.

간호법은 지난해 복지위에서 간호사 출신 최연숙 국민의힘 의원을 제외한 여당 의원들이 모두 퇴장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단독으로 처리됐는데, 국민의힘이 위원장을 맡은 법사위에서 법안 처리가 막히자 민주당에서 ‘법사위 패싱’을 감행한 것이다.

간호법은 현행 의료법에 정하는 간호사 관련 조항을 따로 떼어내 법제화한 것이 핵심이다. 의료법에서 간호사는 ‘의사의 지도 하에 진료 보조’하도록 돼 있다. 간호법에서는 ‘의사의 지도 또는 처방 하에,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를 한다고 정했다.

간호사 업무 범위가 확대되고, 간호사 관련 재원을 따로 확보할 수 있어서 간호사 처우와 역할이 강화된다. 문제는 이런 간호법을 두고 의료계 전반에 갈등이 커지면서 간호사를 제외한 모든 직군이 간호법을 반대하는 상태라는 점이다.

대한간호협회는 이날 국회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간호법의 본회의 직회부와 간호법 제정을 촉구했다. 그런데 이날 대한의사협회와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등이 참여하는 간호법 저지 보건복지의료연대는 오전 9시 국회 앞에서 간호법 본회의 상정 의결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한간호협회 회원들이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간호법 제정·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통과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뉴스1

이들은 간호법이 간호사에 상대적 특혜를 주는 법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보건복지의료연대에는 의사협회, 간호조무사협회, 방사선협회, 임상병리사협회 등 13개 의료단체가 참여한다.

국회 복지위 전체회의에 출석한 보건복지부 조규홍 장관도 “간호법 제정안이 현재 의료법 체계를 완벽히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조금 더 협의가 있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박민수 제2차관도 “(의사와 간호사 등) 직역 갈등이 심한 상황이고, 이럴 때 법안이 통과되면 행정부로서 집행이 상당히 어려운 측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민주당 소속의 정춘숙 위원장은 “소위에서 간호법안을 여러차례 토의했고 전체회의에서 의결할 때도 지금의 여당(국민의힘) 의원이 있었다”라며 강행처리를 시사했고 결국 표결에 이르렀다.

정치권에선 이 법안이 본회의로 직접 넘어간 만큼 “민주당 뜻대로 간호법이 처리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본회의에 곧바로 넘겨진 법안은 30일이 지나면 자동 표결에 부치도록 되어 있다. 169석을 가진 민주당 마음대로 법안 처리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정부·여당으로선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외에는 간호법 시행을 막을 방법이 없다. 민주당 김민석 의원은 “간호법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될 것이며, 윤 대통령도 거부권을 행사하지 못한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때인 지난해 1월 신경림 간호협회장을 만나 “간호법 제정에 최선을 다 하겠다”라고 말했다.

이날 전체회의 표결 직전까지 여야는 첨예하게 맞섰다. 복지위 국민의힘 간사인 강기윤 의원이 “이달 22일에 법사위 법안소위에서 간호법을 논의하기로 여야가 합의한 상황이다. 법사위 처리를 기다려 달라”고 했다. 민주당 간사인 강훈식 의원은 “간호법 등 법사위 계류된 법안 처리를 복지위 차원에서 법사위에 지속적으로 요구했지만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라며 “법사위에 상임위 중심주의가 무엇인지 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간호법과 함께 의사면허 취소와 관련한 개정안도 본회의에 회부하는 안건이 통과됐다. 의료법 개정안은 살인·강도·성폭행 같은 강력 범죄와 교통사고 범죄 등으로 금고 이상 형을 받은 의료인의 면허를 취소한다는 게 골자다.

특히 미성년자 성폭력 범죄를 저지르면 면허를 영구히 박탈하도록 했다. 다만, 의료 행위로 인한 업무상과실치사상죄는 제외했다. 공공의대를 둘러싼 의·정 갈등이 한창이던 지난해 9월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의원이 발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