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7일(현지 시각)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의 메릴랜드 대학 병원에서 돼지 심장 이식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인 57세 남성 데이비드 베넷(오른쪽)이 담당 의사 바틀리 그리피스(왼쪽)와 '셀카'를 찍고 있다. 이 대학 의료센터는 같은 달 10일 이 환자가 사흘째 안정된 상태에서 회복 중이라고 밝혔다. 돼지 심장을 인체에 이식하는 수술은 이번이 처음이다. /볼티모어 AP=연합뉴스

유전자를 조작한 돼지 심장을 사람에 이식한 수술이 올해의 ‘세상을 바꾼 의학적 혁신’ 성과에 선정됐다. 어린이에게 발병해서 ‘소아 당뇨병’이라 불리는 ‘제1당뇨병’ 치료제 신약과 운동신경세포가 파괴돼 근육이 마비돼 치명적 질환인 루게릭병(ALS) 치료제 신약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승인을 받은 것도 이름을 올렸다.

USA투데이는 27일(현지 시각) 돼지 심장 이종 이식 수술과 제1 당뇨 치료제 승인 등을 포함해 올해 의학이 이룬 5가지 혁신 성과를 소개했다.

매체는 생명과학에서 2021년이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백신과 치료법 개발에 뛰어든 시기였다면, 올해는 코로나로 중단된 연구가 재개되면서 새로운 성과가 나오기 시작하는 한 해로 기록될 것이라고 평가했다.특히 올해 4월에는 지난 2003년 분석이 끝난 줄 알았던 인간 게놈 지도를 분석해 8% 미지의 유전체를 해독한 논문이 발표됐고, 미국에서는 장기 이식 수술이 100만 건을 달성했다.

◇ 돼지 심장 이식 수술 ‘이종 장기 희망’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지난 7일(현지시간) 메릴랜드대 의료진이 사람 심장을 이식받지 못한 시한부 환자 데이비드 베넷(57)에게 이식할 돼지 심장을 들어보이고 있다. /메릴랜드대 의대 제공

올해 1월 미국 메릴랜드 대학병원에서 유전자를 조작한 돼지의 심장을 이용한 심장이식 수술이 최초로 성공했다. 심부전을 앓고 있지만, 심박동이 불규칙해지는 질환인 부정맥을 앓고 있어서 인공 심장은 사용할 수 없는 57세 환자가 대상이었다.

미국 바이오벤처인 리비비코어가 이번 수술을 목적으로 사육하고 유전자 편집한 돼지가 수술에 사용됐다. 수술은 총 9시간이 걸렸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환자는 두 달 후 갑자기 사망했다. 사인은 돼지 종류에서 주로 나타나는 돼지사이토메갈로바이러스(CMV) 때문으로 추정된다.

환자가 사망했지만 동물 장기나 조직을 인간에게 이식하는 이종이식의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것이 의학계 평가다. 미국에서는 장기 이식 대기 환자가 10만 명에 이른다. 하지만, 몸에 맞는 사람의 장기를 찾지 못해 대부분은 사망한다. 이 수술을 이끈 메릴랜드대 의대 무하마드 모히후딘 교수와 동료 의료진은 국제 학술지 ‘네이처’가 선정한 올해의 10대 과학 인물에 올랐다.

◇ ‘소아 당뇨병’ 늦추는 신약 승인

미국 제약사 프로벤션바이오가 개발한 1형 당뇨병 지연 치료 신약 티지엘드(성분명 테플리주맙)./Provention Bio

어린이 환자가 많아 ‘소아 당뇨병’이라고 불리는 제1형 당뇨병 치료제 ‘테플리주맙(제품명 TZIELD)’이 지난 11월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았다. 제1형 당뇨병 치료제가 승인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당뇨병은 췌장이 인슐린을 제대로 분비하지 못해 혈당을 조절하지 못하는 질환이다. 췌장에서 인슐린을 만드는 세포를 ‘베타 세포’라고 하는데, 제1형 당뇨병은 몸속 면역 체계(T세포)가 베타 세포를 공격해 인슐린을 만들 수 없게 하는 자가면역질환이다. 사노피가 개발한 테플리주맙은 T세포가 베타 세포를 공격하지 못하게 차단하는 약이다.

당뇨병은 췌장이 망가진 3기부터 증상이 나타나는데, 2기 환자에게 이 약을 투여했더니 3기 진행을 2년 가량 늦출 수 있었다.다만 이 약은 췌장이 망가지지 않게 막는 ‘예방’이 초점이다. 망가진 췌장을 되돌리는 약은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비싼 약값도 문제다. 이 약은 14일 동안 환자에 투여하는데, 약값만 19만 3000달러(약 2억 7000만원)이 필요하다.

◇ 인간 게놈 지도 완성… 유전체 8%, 20여년 만에 해독

최근 바이오 의약품을 복제해 만드는 바이오 시밀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다국적 제약사들과 국내 대기업들이 잇달아 바이오 시밀러 사업에 진출하거나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은 바이오 의약품의 기본이 되는 DNA 이중나선 구조에 의약품을 합성한 것.

올해 4월 33개 다국적 연구기관으로 구성된 공동연구진이 인간게놈프로젝트(HGP)가 규명하지 못했던 게놈 지도의 남은 8%를 20여년 만에 해독했다고 발표했다. 관련 논문 6편은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실렸다. 인간게놈프로젝트는 1990년 시작해 2003년에 종료됐지만, ‘이질염색질’ 부분은 충분히 해독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번 연구진은 새로운 분석법을 도입해 DNA 염기쌍 약 2억개를 새로 밝혀냈다.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 2000여개와 200만개의 유전적 변이 등도 찾아냈다. 연구진은 추가 정보를 확인하는 데까지 향후 몇 년이 더 걸릴 것으로 봤지만, 이번에 완성된 정보만으로도 인간 발달, 노화, 암과 같은 질병은 물론 선사 시대에 걸친 인간의 다양성, 진화 및 이주 패턴에도 통찰력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의학계는 기대하고 있다.

인간이 어떻게 감염과 전염병에 적응하고 살아남았는지, 우리 몸이 독소를 어떻게 제거하는지, 사람들이 약물에 어떻게 다르게 반응하는지, 무엇이 뇌를 인간과 뚜렷하게 구분하는지, 그리고 사람을 구별하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USA투데이는 에반 아이슐러(Evan Eichler) 워싱턴대 의대 유전학과 교수를 인용해 설명했다.

◇ 5년 만에 첫 루게릭병(ALS) 신약 승인

서울 동작구 노들나루공원에서 루게릭병 환우를 위한 '아이스버킷 챌린지 런' 행사가 열렸다./뉴스1

미국 FDA가 지난 9월에는 루게릭병(ALS) 치료제인 릴리브리오(성분명 페닐부티르산나트륨, 타우루르소디올)을 승인했다. 루게릭병 치료제가 FDA 승인을 받은 것은 일본 에다라본이 허가받은 지 5년만이다.

루게릭병은 뇌에서 신호를 전달하는 운동신경세포가 파괴되면서 온몸의 근육이 약해지는 퇴행성 질환이다. 이 병이 진행되면 걷기 말하기는 물론 호흡까지 불가능해져 죽음에 이른다. 릴리브리오는 세포 속 소포체와 미토콘드리아를 조절해 신경세포가 파괴되는 속도를 늦춘다.

임상에서 이 약은 초기 루게릭병 환자 수명을 10개월 연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효성 등에 논란이 있긴 했지만, FDA는 루게릭병 치료제에 대한 미충족 수요(언멧니즈)가 크다는 점을 고려해 허가했다. 이에 따라 루게릭병 치료제는 사노피의 리줄론과 에다라본에 이어 세 개가 됐다.

◇ 미국 장기 이식 수술 100만 건 성공

미국 병원의 장기이식 수술 장면. / 미 국립보건원 홈페이지 캡처

돼지 심장 이식 수술 성공 소식 이후인 올해 9월 미국에서 100만 번째 장기 이식 수술이 시행됐다. 세계 최초의 장기 이식 수술은 1954년 미국에서 있었다. 23세의 청년이 쌍둥이 동생으로부터 받은 신장을 이식받았다. 장기 이식 수술은 최근 10여년 사이에 매우 빠르게 발전했다.

비영리 장기 공유 연합 네트워크(UNOS)에 따르면 미국에서 시행된 백만 건의 장기 이식 수술 가운데 절반인 50만건은 최근 15년 동안 이뤄졌다. 이 정도 속도라면 앞으로 25년 안에 200만 건 장기 이식 수술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의료계의 분석이다.

USA투데이는 한편 내년에 주목할 만한 의학 혁신으로는 호흡기 바이러스 백신과 비만 치료제를 지목했다. 모더나와 화이자가 독감과 코로나19 변이에 동시에 대응할 수 있는 백신을 개발하고 있으며, 글로벌 제약사들이 급성호흡기증후군(RSV)백신 개발 막바지에 왔다. 제2형 당뇨병 치료제로 승인된 티르제파티드(제품명 마운자로)가 체중의 21%까지 감량해 주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비만 치료 신약에도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