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영 연세의료원 의과학연구처장이 이달 20일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병철 기자

싱가포르 연구진이 최근 소리를 잘 듣지 못하는 난청 환자가 보청기, 인공와우를 쓰면 치매 발병률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청각 장애가 치매 발병 위험을 높인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졌지만 다시 청력을 회복하면 그 위험성이 다시 떨어진다는 결과를 얻은 건 처음이다.

난청 환자가 겪는 어려움은 이처럼 단순히 듣지 못하는 것만이 아니다. 난청이 장기화되면 인지, 언어 장애를 동반하고, 사회경제적으로 소외된다. 난청을 치료하는 의사들은 어릴 때부터 난청을 반드시 관리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 시절이 언어 능력 발달에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최근 들어 보청기와 인공와우 기술이 발전하면서 언어 능력에 문제를 겪는 난청 환자는 점점 줄고 있다.

소아 난청 전문가인 최재영 연세의료원 의과학처장(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이비인후과 교수)은 “보청기, 인공와우 덕에 언어 장애를 겪는 어린이 환자가 크게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개선해야 할 것들은 많다”고 말했다. 의사이자 과학자로서 의료기술이 단지 환자의 증상을 없애는 것을 넘어서 실생활에서 겪는 불편함과 어려움까지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 최 처장의 생각이다.

최 처장은 어린이 난청의 근본적인 치료법을 찾고 있다. 한국인의 난청 유전자를 찾기 위해 난청 환자 2000명의 유전체를 분석해 유전자 지도를 만들었다. 이를 바탕으로 유전자 치료제도 만들고 있다. 어린 난청 환자들이 이식하기에는 너무 크고 불편한 인공와우를 개선하는 연구도 함께하고 있다.

최 처장은 “의과학자는 의료 현장에서 환자를 가장 가까이서 보는 과학자”라며 “정말 환자들에게 필요한 건 무엇인지, 또 그들을 위해서 우리가 뭘 할 수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의과학자의 임무”라고 말했다.

이달 20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최 처장을 만나 소아 난청 문제에서 의과학자의 역할을 들어봤다.

-유전성 난청에 특히 집중하는 이유가 있나.

“어린이 난청 환자 대부분이 유전적인 요인으로 난청을 갖고 태어난다. 노인성 난청도 문제지만, 어린이 난청은 앞으로 살아가는 데 큰 문제가 된다. 언어 발달에서 중요한 시기인데 청각에 문제가 있으면, 언어 발달이 더디거나 아예 되지 않는다. 물론 지금은 인공 와우 같은 의료기기가 워낙 잘 나와 난청 때문에 말을 못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언제 치료를 받느냐에 따라서 효과의 차이가 크다. 나름의 골든 타임이 있다는 의미다.”

-빨리 치료받을 수록 좋다는 건가.

“그렇다. 일반적으로 7살 이전에 치료받으면 언어 능력이 건강한 어린이의 90% 수준까지 올라온다. 하지만 7살 이후에 치료를 받으면 40~50%까지만 회복된다. 회복하는 기간도 나이에 따라 차이가 난다. 어릴 때 치료받을수록 언어 능력이 최대치까지 회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짧다. 치료를 너무 늦게 받으면 회복까지 10년이 넘게 걸리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20대가 다 돼야 치료의 효과를 보는 것이다.”

-어떤 연구를 하고 있나.

“여전히 유전성 난청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유전성 난청을 완치할 수 있는 치료제는 아직 허가받은 게 없는 상황이다. 지금은 유전성 난청 중에서도 전정도수관 확장증후군 치료제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전정도수관은 청각을 담당하는 달팽이관 속에 있는 작은 뼈다. 청각 신호를 뇌로 전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전정도수관이 유전적 문제로 건강한 사람보다 넓어지면 외부 충격에 의한 뇌압의 변화가 커지는 증상이 나타난다. 환자는 가벼운 충격에도 급격하게 청력이 떨어질 수 있다. 한국의 선천성 난청 환자 15%가 전정도수관 확장증 때문으로 알려졌다.”

-연구는 잘 진행되고 있나.

“상당히 진전이 있다. 전정도수관 확장증후군은 세포의 이온 농도를 조절하는 유전자 ‘SLC26A4′ 하나가 잘못돼 나타난다. 여러 유전자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다른 유전병보다 훨씬 원인이 간단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개발된 치료제는 없는 상황이다. 최근 우리 연구팀에서 치료제의 후보물질을 찾는 데 성공했고, 지금은 동물 실험을 하고 있다. 잘못된 유전자를 교정할 수 있는 유전자 치료제도 따로 개발하고 있다. 아마 두 연구 모두에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인공와우를 연구한다는데.

“기존 인공와우의 단점을 보완하는 연구를 한다. 인공와우는 효과가 좋고, 부작용은 적어 사람의 몸에 직접 이식하는 인공장기로는 가장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덕분에 최근에는 난청 환자라도 말을 못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하지만 실제 환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장치가 너무 크고, 아주 세밀한 언어를 듣기엔 여전히 힘들다. 의사가 아니라면 인공와우로 청력을 어느 정도 회복한 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겠지만, 환자들을 직접 만나다 보면 인공 와우의 크기를 줄이고 성능을 높이면 이들이 받는 혜택이 더 커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공 와우는 청력 회복에 도움을 주지만, 큰 크기와 낮은 정확도로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central institute for the deaf

-의과학자로 불리고 있다. 계기가 있나.

“2001년 처음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교수로 임용됐다. 주로 어린이 난청 환자들을 돌봤는데, 성인 난청도 그렇지만, 어린이 난청은 대부분 유전적인 요인으로 발생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유전병을 치료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어린 환자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환자를 잘 치료하기 위해 의사가 됐는데, 큰 벽에 부딪힌 기분이었다. 그래서 혼자서 난청을 치료하는 약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때는 의과학이라는 개념도 없었고, 혼자서 논문을 보면서 신약 개발을 공부하는 게 전부였다. 당연히 계속 시행착오가 있었고, 3~4년 동안 진척도 거의 없었다.”

-곧바로 연구를 시작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다행스럽게 우연히 해외 연수를 떠날 기회가 생겼다. 덕분에 2005~2007년을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유전병 치료제를 연구했다. 처음에는 잘 모르니 과학자들이 어떤 과정으로, 어떻게 연구하는지 지켜봤다. 이후에는 연구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기회도 받았다. 이때 과학적인 접근법이 무엇인지, 연구를 체계적으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많이 배웠다.”

-당시 어떤 연구를 했나.

“낭포성 섬유증 치료제를 개발하는 연구였다. 이 병에 걸리면 여러 인체 기관에서 점액질이 건강한 사람보다 두껍고, 끈적이게 만들어진다. 염분, 수분을 조절하기 어려워져 신체 기능이 크게 떨어진다. 유전병은 보통 서양인과 동양인에서 유전 양상이 다른데, 낭포성 섬유증은 특이하게 서양인과 동양인의 유전 양상이 비슷하다. 낭포성 섬유증 치료제를 개발해나가는 경험이 유전성 난청 치료제 개발에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해 연구 주제로 선택했다. 당시 연구를 바탕으로 2012년에 낭포성 섬유증 치료제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았다. 이걸 보면서 의과학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그게 의미가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의과학자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결국 의과학자는 ‘언맷니즈(unmet needs·미충족 수요)’를 찾는 사람이다. 언맷니즈는 당장 치료법이 부족하거나, 없던 질병이 요구하는 의료적 필요를 말한다. 국내 과학자들은 연구 역량이 뛰어나지만, 의료 현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환자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고려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는 의사들이 더 잘 알고 있다. 과학자들이 연구해서 효과가 좋은 약을 개발했어도 예상치 못한 문제로 실제 의료 현장에 적용하지 못할 수도 있다. 가령 먹는 약을 개발했는데, 합병증으로 섭식 장애가 있어서 환자가 약을 먹기 어려운 경우처럼 말이다. 내가 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의과학자에게 중요한 역량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환자들이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결국 다양한 환자를 돌본 경험이 의과학자가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의과학에 대한 관심이 최근 늘면서 연구 성과를 잘 내고 있다. 이런 현상이 의과학자가 과학자보다 뛰어난 역량이 있어서는 아니다. 의과학이 주목받으면서 언맷니즈가 다뤄지고 있고, 그만큼 이전에는 문제라는 것을 알지도 못해 쉽게 해결할 수 있었던 부분들을 개선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재영 연세의료원 의과학연구처장이 이달 20일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병철 기자

-의과학자는 의사에게만 해당하는 역할일까.

“의과학자라는 단어가 의사와 과학자의 합성어지만, 언맷니즈를 찾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간호사, 의료기사처럼 환자를 돌보는 사람이면 누구나 의과학자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연세의료원에서는 간호사들이 발명대회를 열어 환자들을 위한 다양한 제품을 기획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유방암 환자들이 방사선 치료를 받을 때 효율을 높이는 속옷을 개발해 기술이전을 하기도 했는데, 의사가 아닌 방사선사들이 아이디어를 내서 만든 제품이다.”

-의과학자 양성에 관한 여러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의과학자를 양성하는 방법은 의대를 다닐 때부터 과학 교육을 강화하는 방법, 전공의 수련을 받을 때 과학도 함께 훈련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있다. 또 전문의 자격을 받은 후에 전문 교육 기관에서 과학을 배우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의과학자에게 가장 중요한 역량은 다양한 환자를 돌본 경험이다. 의대생에게 아무리 과학을 잘 교육한다고 하더라도 환자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는 의과학자가 아니라 과학자가 될 뿐이다. KAIST가 지금 운영하는 의과학대학원이 의과학자 양성에 적합한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환경이 필요하다고 보나.

“아무리 의과학자 양성이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병원 입장에서는 당장 환자를 잘 치료해야 한다. 병원에서 일하는 교수들이 새롭게 과학적인 연구 방법을 익히는 것은 쉽지 않다. 나도 해외 연수를 다녀오기 전에 진료와 연구를 동시에 하면서 어느 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의과학자를 키우려면 임상 경력을 가진 상태에서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의과학자로서 앞으로 목표는.

“유전병 환자들은 건강만 문제가 아니다. 사회생활을 하는 것도,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렵다. 특히 유전병은 유전으로 이어지는 만큼 환자의 선대들도 모두 같은 병을 앓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지금 세대에 유전병을 앓는 환자의 가족은 오랜 기간 사회적 약자로 살아왔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유전병 환자에 대해서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의과학자와 의사, 과학자들이 함께 협력해 유전병 환자를 위한 새로운 치료법을 찾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