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 소장인 스반테 페보(Svante Pääbo, 67) 교수가 호명됐을 때 ‘노벨상 수상자 발표 기자간담회’가 열린 서울 역삼동 한국과학기술원 현장은 술렁였다.
노벨 생리의학상은 의학 분야에서 공로를 세운 사람에게 수여한다. 노벨상 초창기만 해도 생리의학상은 대부분 의사(Medical Doctor) 출신이 수상했다. 이와 달리 페보 교수는 현생인류의 직계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와 이미 오래 전에 멸종한 고(古) 인류인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이 서로 유전자를 나눴다는 것을 밝혀낸 과학자다. ‘고생물학’ 분야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데, 굳이 따지면 ‘진화 인류학자’로 분류된다.
1901년부터 올해까지 노벨 의학상 역대 수상자 225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의사 출신이다. 초창기 의학상 수상자는 대부분 의사였다. 최근 10여 년 동안 생물학, 동물학, 신경과학처럼 기초 의과학 분야의 수상자가 늘어나긴 했지만, 인류학을 연구한 학자가 이 상을 받은 것을 이번이 처음이다.
반면 생명과학 분야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페보 교수의 노벨상 수상은 어느 정도 예견됐다. 독일에서 연구한 정충원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생리의학상이라는 분야 때문에 수상을 예상하지만 못했지만, 질병과 관계가 없는 분야에서 누군가 노벨상 받는다면 페보 교수가 받을 것이라는 공감대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오늘 수상은 진화 유전학이라는 분야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라고도 했다.
페보 교수는 진화 인류학에 있어서는 독보적인 인물로 통한다. 1980년대부터 멸종된 고인류의 유전체 연구를 시도했고, 지난 2010년 세계 최초로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체 지도를 만들었다.
페보 교수는 사람마다 질병에 잘 걸리는 정도가 다른 것도 고대인류에서 찾았다. 정 교수는 “멸종한 고대 인류인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우리 몸의 2%를 차지한다”라며 “비율만 놓고 보면 작아 보일 수 있지만 인류가 유전체의 차이를 축적하는 방식으로 진화를 한 만큼 기능적 영향을 보면 더 클 수 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최근 현생인류의 유전자에서 고대인류가 차지하는 비율이 인간의 질병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보고서들이 나오고 있다. 이번 노벨상 위원회가 올해 수상자로 페보 교수를 선정한 것은 코로나19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페보 교수 연구팀은 지난 2020년에는 코로나 중증을 유발하는 유전자가 네안데르탈인에서 왔다고 밝혔다. 지난해에는 반대로 코로나를 이기는 유전자도 네안데르탈인에서 유래했다고 밝혔다. 둘을 비교하면 코로나를 이기는 유전자가 더 많아 결국 멸종한 네안데르탈인이 오늘날 인류가 코로나를 이기는 데 도움을 줬다고 페보 교수는 설명했다.
노벨상 위원회는 페보 교수를 지명하면서 “오늘날 사람 몸 속에 남아 있는 고인류 유전자가 우리 면역 체계에서 감염에 반응하는 방식과 생리학적인 관련성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라며 “페보 박사의 연구는 ‘고생물학’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과학을 탄생시켰다”라고 했다.
위원회는 또 “모든 살아있는 인간을 멸종된 호미닌과 구별하는 유전적 차이를 밝혀냈고, 결과적으로 무엇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지를 탐구하는 기초를 제공했다”라고도 했다.
남성인 페보 박사가 단독 수상한 것도 이례적이다. 노벨상의 부문별 수상자는 최대 3인이고, 노벨 의학상은 그동안 공동 수상자 비율이 가장 높은 분야로 통한다. 수여된 상의 개수 대비 공동 수상자 비율이 1.98에 달한다. 과학 분야에서 가장 여성 수상자의 수가 많은 상도 노벨 의학상이다.
페보 교수는 1000만 크로나(약 13억 원)의 상금을 혼자 받는다. 노벨 의학상의 상금은 공동 수상이면 기여도에 따라 차등 분배된다. 우선 노벨상 상금은 노벨이 남긴 유산을 기금으로 노벨재단이 1년 동안 운영한 이자 등의 수입에서 지급한다. 한 해 이자 수입의 67.5%를 다음 해의 노벨상 상금으로 지급하는 식이다.
시상식은 오는 12월 10일에 스톡홀름에서 열린다. 코로나19 유행으로 시상식을 건너뛰었던 2020년과 2021년 수상자들도 초청된다. 스톡홀름은 시상식 일주일 전후를 ‘노벨위크(Nobel Week)’라고 정하고 강연회와 콘서트를 개최한다. 이런 이벤트 때문에 스톡홀름 일대는 성탄 시즌과 맞물려 축제 분위기가 된다고 한다. 평화상 시상식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