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양행(000100)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미뤘던 유럽 진출을 본격화한다. 이르면 연내 노바티스, 로슈 등 유럽의 글로벌 대형 제약사 본사가 몰려있는 스위스 바젤에 법인을 설립하고, 유럽 진출의 교두보로 삼을 계획이다.
14일 제약 업계에 따르면 유한양행은 최근 유럽 법인 진출지로 스위스 바젤을 낙점하고 부지 물색에 나섰다. 회사 관계자들은 내달 24일부터 26일까지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열리는 '바이오유럽' 행사에 참석한 뒤 바젤에 들러 스위스 투자청과 미팅을 갖기로 했다.
유한양행은 2019년 유럽 진출을 공식화했다. 하지만, 이듬해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법인 설립을 계속 미뤄왔다. 유한양행이 바젤에 법인을 설립하면 국내 제약사 가운데 스위스에 진출하는 첫 사례가 된다. 유한양행은 당초 영국 런던을 유럽 진출 교두보로 고려했다가 막판에 스위스로 후보지를 변경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영향으로 유럽의 경제 금융 허브로 런던의 위상이 퇴색했고, 그러는 사이에 바젤 투자청의 적극적인 투자 권유를 받은 것이 변경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유한양행은 앞서 올초 스위스 바젤 투자청(Basel Area Business & Innovation)과 파트너십을 체결하기도 했다.
바젤은 업계에선 '유럽의 바이오 중심지'로 통한다. 글로벌 1위 제약사인 노바티스와 진단기기 1위 기업인 로슈의 본사가 여기에 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바젤에 투자되는 연구개발(R&D) 자금만 연간 약 210억달러(약 24조원)에 이른다. 국내 제약 바이오 산업 전체 시장 규모와 맞먹는다.
노바티스는 1억 스위스 프랑(약 1450억원)을 투자해 바젤에 차세대 바이오 의약품 개발을 위한 신규 R&D 센터를 설립하고 있다. 로슈는 5억 5000만 스위스프랑(약 7950억원)을 투자해 지은 50층 높이의 신사옥을 올해 열었다. 이 빌딩은 스위스 최고층 빌딩이다.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개발(CDMO) 글로벌 1위 기업인 론자도 바젤에 본사를 두고 있다.
바젤이 국내 제약사의 유럽 진출 교두보로 갖는 또 다른 장점은 언어다. 스위스는 독일과 프랑스의 접경 국가로 유럽의 중심에 있고 독일어와 프랑스어, 영어를 모두 쓰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원활하다.
조세 제도 역시 유리하다. 바젤의 법인세율은 약 13%로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저렴하다. 또 지역 내에서 진행한 연구로 특허를 등록하면 세제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오봉근 스위스 바젤 투자청 한국 대표는 "해외에 진출할 때 의약품 인허가를 제일 신경쓰지만 실제 해외 시장에 진출할 때는 세제 문제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라며 "바젤은 법인세가 전세계적으로 저렴한 편인데다 R&D활동에 대해서는 추가로 세제 혜택을 준다"고 말했다. 오 대표는 "코로나19 기간 동안 일본과 중국의 제약 바이오 기업들이 바젤로 대거 진출을 했다"라고도 했다.
유한양행은 지난해 국내 31호 신약 허가를 받은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을 필두로 글로벌 신약 개발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유럽 진출에 앞서 지난 2018년 3월 미국 샌디에이고에 현지법인 '유한USA'를 설립하고, 그해 12월 미국 보스턴에도 법인을 설립했다.
하지만 이들 미국 법인 역시 코로나 여파로 올해 들어 겨우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유한양행은 미국 보스턴 법인은 기술 이전 투자처를 물색하는 전략적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다면, 샌디에이고와 유럽의 바젤은 'R&D'와 '마케팅'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으로 보인다.
신약 개발 연구가 가장 활발한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R&D 정보를 모으고 바이오벤처가 몰려있는 보스턴에서는 원천 기술을 발굴하고 신약 허가 절차 업무를 맡아 신약 개발 성공률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바젤에서는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과 협력을 추진해 R&D는 물론 시장 공략도 함께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스위스 바젤을 법인 설립지로 검토하는 것은 맞는다"며 "법인을 설립할 지 연락사무소 수준이 될 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