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을 멸종시킨 소행성(小行星)은 하나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과학자들이 바닷속에서 소행성이 남긴 거대한 충돌구를 발견했다. 초대형 소행성이 남긴 것보다 작았지만 공룡 멸종을 유발하는 데 한몫했을 정도 규모로 나타났다.

영국 헤리엇와트대의 해양지질학자인 유스딘 니컬슨(Uisdean Nicholson) 교수 연구진은 4일 “6600만년 전 서아프리카 해안에서 지구를 강타하고 공룡 멸종을 유발한 또 다른 소행성이 있었다”고 발표했다. 이번 결과는 이날 네이처 자매지인 ‘커뮤니케이션 지구환경’에 실렸다.

과학자들은 6600만년 전 폭 10~15㎞인 소행성 칙술루브(Chicxulub)가 지구에 충돌해 공룡을 비롯한 생명체를 대량 멸종시켰다고 본다. 5차 대멸종이라 불릴 정도로 생태계에 큰 변화를 가져온 사건이다. 칙술루브 충돌구의 폭은 약 180㎞이고 깊이는 20㎞에 이른다.

니컬슨 교수는 같은 시기에 그보다 작은 소행성이 바다에 부딪혀 해저에 폭 8.5㎞에 이르는 충돌구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2022년에 기니 앞바다 밑에서 나디르(Nadir) 충돌구를 처음 발견했지만, 충돌구가 실제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연구진은 이번이 충돌구가 바다로 돌진한 소행성이 만들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6600만년 전 지구에 소행성이 충동하는 모습의 상상도. 소행성 충돌은 5차 대멸종을 불렀다./David A. Hardy, www.astroart.org

◇시속 7만2000㎞로 바다 돌진한 소행성

연구진은 세계에서 가장 큰 지진파탐사선 램폼 아틀라스를 타고 바다로 나가 나다르 충돌구를 탐사했다. 탐사선이 쏜 탄성파가 충돌구에 갔다고 돌아온 파동을 측정해 3D(입체) 이미지를 확인했다. 니컬슨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20여 개의 해양 충돌구가 발견됐지만, 이번처럼 정밀하게 촬영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6500만년에서 6700만년 전 사이에 폭이 450~500m 정도인 소행성이 시속 7만2000㎞로 지구를 강타했다고 추정했다. 니컬슨 교수는 “충돌구의 구조로 볼 때 북동쪽에서 20~40도 각도로 충돌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대량 멸종을 촉발한 소행성보다는 작지만, 지구 표면에 상처를 남기기에 충분한 크기였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나디르 충돌구가 만들어지면서 해저 아래에 단층이 형성되는 격렬한 진동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높이 800m가 넘는 거대한 쓰나미(지진해일)가 대서양을 가로질렀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소행성 충돌구를 연구하는 데 전기가 될 전망이다. 공저자인 미국 애리조나대의 베로니카 브레이(Veronica Bray) 교수는 “달과 같이 공기가 없는 천체에서 깨끗한 충돌구를 볼 수 있지만 지하 구조 정보는 없고, 지구는 지하 구조는 알지만 충돌구 표면이 매우 침식된 상태”라며 “나디르의 새로운 3D 이미지는 두 가지 정보를 모두 제공해 충돌구의 모습을 놀라울 정도로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당시 왜 소행성 두 개가 비슷한 시기에 지구에 충돌했는지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규모가 큰 소행성이 짧은 시간에 잇따라 지구로 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앞으로 3D 이미지를 이용해 충돌구 형성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개발할 계획이다.

영국 헤리엇와트대의 해양지질학자인 유스딘 니콜슨 교수가 서아프리카 바다밑에 있는 충돌구의 구조를 발표하고 있다./영 헤르엇와트대

◇지구와 소행성 충돌 대처에도 도움

과학자들은 소행성이 또 다른 생물 대멸종을 일으키지 않도록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구하고 있다. 연구진은 기니 해저의 충돌구를 유발한 소행성이 현재 지구를 공전하는 소행성 베누(Benu)와 비슷한 규모라고 설명했다. 베누는 폭이 500m 정도인 다이아몬드 모양의 소행성이다. 미국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과 비슷한 크기다.

베누는 지구 근접 궤도에서 가장 위험한 천체로 간주된다.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 과학자들에 따르면 2300년까지의 충돌 확률은 약 1750분의 1(0.057%)이다. 연구진은 또한 2182년 9월 24일에 소행성이 2700분의 1(약 0.037%) 확률로 충돌할 수 있다고 추정했다.

만약 나디르나 베누 같은 규모의 소행성이 충돌하면 엄청난 재앙이 예상된다. 니컬슨 교수는 “인간이 이와 같은 현상을 가장 가까이서 본 것은 1908년 퉁구스카 사건으로, 50m 소행성이 지구 대기권에 진입하여 시베리아 상공에서 폭발했다”며 “만약 나디르 소행성이 글래스고에 떨어졌다면 태양보다 24배나 큰 불덩이가 50㎞ 떨어진 에든버러의 숲까지 불태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소행성 충돌에 대비하기 위해 소행성이 어떤 성분인지, 무인우주선을 충돌시켜 경로를 바꿀 수 있는지 연구하고 있다. 지난해 9월 24일 나사의 소행성 탐사선 ‘오시리스-렉스(OSIRIS-REx)’가 하늘 위에서 떨어뜨린 캡슐이 지구에 도착했다. 지난 2016년 9월 발사된 지 7년만의 귀환이었다. 오시리스-렉스는 2020년 10월 베누에서 로봇팔로 질소 가스를 내뿜고 표면의 자갈과 모래를 공중에 띄워 채집했다.

NASA 과학자들이 9월 24일 무인 탐사선 오시리스-렉스가 미국 유타주 사막에 떨어드린 캡슐을 회수하고 있다. /NASA

나사 과학자들은 소행성 궤도 수정 실험도 했다. 2022년 9월 27일 오전 8시 14분(한국 시각) 지구와 1100만㎞ 떨어진 곳에서 다트를 소행성 디모르포스와 충돌시켰다. 과학자들은 마하 19 속도의 골프 카트로 피라미드를 때리는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디모르포스의 공전주기는 약 33분 단축된 것으로 밝혀졌다. 인류가 최초로 천체의 움직임을 인위적으로 바꾸는 데 성공한 것이다.

영화처럼 핵무기로 소행성을 파괴하거나 궤도를 수정하는 방법도 논의 중이다. 중국 베이징우주항공시스템공정연구소 연구진은 지난 8월 중국 학술지에 언젠가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해 생명을 멸종시킬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핵무기 사용이라고 밝혔다. 미국 샌디아 국립연구소도 지난달 핵폭발에서 발생하는 X선 펄스가 소행성 표면을 기화시켜 소행성 궤도를 바꿀 수 있다는 개념을 실험으로 입증했다고 국제 학술지 ‘네이처 피직스’에 발표했다.

참고 자료

Communications Earth & Environment(2024), DOI: https://doi.org/10.1038/s43247-024-01700-4

Nature Physics(2024), DOI: https://doi.org/10.1038/s41567-024-02633-7

Nature(2023),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3-05805-2.

Scientia Sinica Technologica(2024), DOI: https://doi.org/10.1360/SST-2023-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