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북서부 타림 분지에 묻힌 미라의 몸에서 발견된 유제품 시료.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3600년 전 치즈로 밝혀졌다./중국과학원 척추동물 고생물학 및 고인류학 연구소

3600년 된 중국 미라에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치즈가 발견됐다. 고대 치즈를 자세히 연구하면 고대 인류의 식생활과 문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나아가 치즈 발효균의 진화 과정도 밝힐 수 있다.

중국과학원 척추동물 고생물학 및 고인류학 연구소의 푸 챠오메이(Qiaomei Fu) 교수 연구진은 26일 국제 학술지 ‘셀’에 “중국 타림 분지에서 발굴한 3600년 전 미라에서 나온 고대 치즈 시료에서 처음으로 DNA를 추출하고 분석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푸 교수는 “지금까지 발견된 치즈 시료 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며 “치즈와 같은 식품은 수천 년 동안 보존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에서 이번 연구는 매우 드물고 귀중한 기회”라고 말했다.

◇미라 치즈에서 발효균 유전자 확인

고고학자들은 2003년 중국 북서부 신장위구르 타림 분지의 샤오허(小河) 공동묘지에서 발견된 미라를 발굴했다. 미라는 양모 모자와 코트, 모피 안감이 있는 가죽 장화 차림이었다. 미라들은 3300년에서 3600년 전 청동기 시대에 살았던 사람으로 추정됐다. 특이하게 여러 미라의 머리와 목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흰색 물질이 나왔다. 당시 과학자들은 흰색 물질이 발효 유제품의 일종이라고 생각했지만, 정확히 어떤 종류인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푸 교수 연구진은 10년 동안 고대 DNA를 분석한 끝에 수수께끼를 풀었다. 연구진은 치즈 시료에서 소와 염소 DNA를 확인했다. 고대 샤오허 사람들은 여러 종류의 동물성 우유를 따로 분리해 사용했는데, 이는 중동과 그리스 치즈 제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유 종류 혼합과는 다른 방식이다. 연구진은 염소 우유는 유당 함량이 적어 장에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작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연구진은 미라에서 나온 치즈 시료에서 오늘날 케피어 알갱이에서 흔히 발견되는 락토바실루스 케피라노파시엔스(Lactobacillus kefiranofaciens)와 피치아 쿠드리아브제비(Pichia kudriavzevii) 등 박테리아와 효모가 포함됐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케피어 알갱이는 천연발효 빵을 만들 때 효모 역할을 하는 사워도우 스타터(Sourdough starter)처럼 우유를 발효시키는 여러 종의 프로바이오틱스(probiotics·몸에 좋은 세균)와 효모가 들어있는 공생 군집이다. 케피어 알갱이는 요구르트 같은 케피어 우유와 부드럽고 시큼한 케피어 치즈를 만든다.

중국 타림 분지 샤오허 묘지에서 나온 미라. 몸에서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3600년 전 치즈가 나왔다./중국과학원 척추동물 고생물학 및 고인류학 연구소

◇케피어 치즈의 새로운 기원도 규명

인류의 치즈 사랑은 수천 년 역사를 갖고 있다. 과학자들은 7000년 전 도자기에서 치즈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지방 잔여물을 발견했으며, 4000년 전 수메르 기록에 유제품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하지만 타림 분지 시료는 과학자들이 자신 있게 치즈라고 부를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물질이다.

연구진은 고대 케피어 치즈의 박테리아 유전자를 해독해 지난 3600년 동안 프로바이오틱스가 어떻게 진화했는지 추적할 기회를 얻었다. 고대 케피어 치즈에 있는 고대 락토바실루스 케피라노파시엔스와 현대의 종을 비교했다.

오늘날 락토바실루스 박테리아는 러시아에서 유래한 것과 티베트에서 유래한 두 가지 집단이 있다. 러시아 유형은 미국, 일본, 유럽 등 전 세계에서 요구르트와 치즈 제조에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다. 연구진은 고대 치즈에서 나온 락토바실루스 케피라노파시엔스가 티베트 집단과 더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지금까지 케피어 치즈는 오늘날 러시아의 북코카서스 산악 지역에서 유래했다고 생각했는데 그와 다른 경로도 있었던 것이다. 푸 교수는 “이번 연구는 청동기 시대부터 신장 지역에서 케피어 문화가 유지됐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또 락토바실루스 케피라노파시엔스가 어떻게 유전 물질을 관련 균주와 교환해 시간이 지나면서 유전적 안정성과 우유 발효 능력을 향상했는지도 밝혀냈다. 오늘날 박테리아는 고대 락토바실루스보다 인간의 장에서 면역 거부 반응을 일으킬 가능성이 작다. 수천 년 동안 상호작용을 통해 유전적 교류가 락토바실루스가 인간 숙주에 더 잘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되었음을 시사한다.

타림분지에서 발견된 샤오허 묘지의 모습./중국 신장문화유적고고학연구소

◇유럽인 외모지만 유전자는 토착민

앞서 과학자들은 미라의 유전자부터 분석했다. 미라는 서양인 같은 외모를 갖고 있어 유럽에서 이주한 사람으로 생각했지만, 유전자 분석 결과 고고학자들의 예상과 달리 지역 토착민인 것으로 확인됐다. 미라와 치즈 모두 대대로 신장에서 살았던 것이다.

정충원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중국 지린대,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와 함께 2021년 네이처에 “타림 분지에서 발견된 미라의 게놈을 주변 지역에서 발견된 미라와 비교한 결과 다른 지역에서 온 이주민들과 유전적으로 섞이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샤오허 묘지는 20세기 초부터 타림 분지의 타클라마칸 사막 전역에서는 발견됐다. 외형이 인도, 유럽계와 비슷한 미라는 소가죽으로 싸인 보트 모양의 관에 묻혔다. 소금 사막의 뜨겁고 건조한 환경은 미라를 완벽하게 보존했다.

미라 일부는 신장위구르 지역보다 훨씬 서쪽인 오늘날 우즈베키스탄이나 아프가니스탄에서 발견되는 모직물로 만든 의복과 함께 묻혔다. 무덤에는 기장, 밀, 동물 뼈와 유제품이 담겨 있었다. 고고학계는 이들의 외모와 부장품 들을 토대로 시베리아에서 아프가니스탄이나 중앙아시아를 통과해 서쪽으로부터 이주한 이민자라고 추정했다.

정충원 교수 연구진은 타림 분지 묘지애서 발견된 미라 13구의 유전자와 그보다 북쪽으로 수백㎞ 떨어진 신장 북부 중가르 분지에서 발견된 미라 5구의 유전자를 비교했다. 그 결과 타림 분지 미라들은 주변 어느 인구와도 유전적으로 섞이지 않은 토착민으로 나타났다.

당시 연구진은 타림 분지에 살던 사람들이 유전적으로 고립됐으나 문화적으로는 고립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치아에서 나온 우유 단백질을 근거로 주변의 유목민들과 교류하며 유목 기술을 배웠고 식문화도 교류했다고 추정했다. 이번 연구는 타림 분지 사람들이 유전적으로 고립됐을 뿐만 아니라 식문화도 서쪽 유목민과 별개로 발전했다는 주장에 힘을 실었다. 푸 교수 연구진은 이번 연구를 바탕으로 당시 사람들이 먹은 치즈를 만들 계획이다.

참고 자료

Cell(2024), DOI: https://doi.org/10.1016/j.cell.2024.08.008

Nature(2021),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1-04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