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끝나면 바로 무더위와 함께 모기가 찾아 온다. 요즘 모기는 기후변화로 인해 국내에서 활동 기간이 크게 늘었다. 모기에 물리면 보통 가렵고 말지만 지역에 따라 말라리아나 뎅기열, 황열, 일본뇌염 같은 감염병에 걸리기도 한다.
특히 야외 활동이 많은 군인에게 치명적이다. 미 육군에 따르면 말라리아만으로도 연간 2만1000시간 장병 근무에 문제가 발생하고, 최대 440만달러(약 60억원)의 경제적인 피해를 입힌다.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미군이 모기 퇴치를 위한 기술을 개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다르파)은 2020년 모기 퇴치 프로그램 ‘리벡터(ReVector)’를 가동했다. 미국 스탠퍼드대와 바이오 기업 징코 바이오웍스(Ginkgo Bioworks)가 참여하는 이 프로그램의 목표는 인간의 피부 미생물을 바꿔 모기를 유인하는 물질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다르파는 피부 미생물이 휘발성유기화합물을 만들어 모기를 유인한다는 점에 착안해 ‘모기 퇴치 크림’을 개발하고 있다. 휘발성유기화합물은 끓는점이 낮아 쉽게 증발하는 물질을 말한다.
인간의 땀과 피부에 사는 미생물은 휘발성유기화합물(VOCs)을 분비한다. 주로 인간과 미생물이 에너지를 만드는 과정인 대사에서 부산물로 만들어지는 노폐물에 포함돼 있다. 모기는 휘발성유기화합물 중 카르보실산을 특히 좋아하며, 부틸산, 이소부틸산, 이소발레르산 같은 물질에도 반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기는 15~20m 밖에서도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모기 퇴치 크림은 기존 피부 미생물 대신 대사 과정에서 휘발성유기화합물을 만들지 않는 미생물이 피부에 살도록 환경을 조성한다. 원리는 유익한 미생물이 몸에서 자랄 수 있도록 하는 먹이인 프리바이오틱스(prebiotics)를 이용해 신체 기능을 조절하는 방식이다. 이미 장내 미생물의 종류를 바꿔 소화기 질병을 예방하거나 건강을 회복하는 방법이 널리 활용되고 있다. 피부에 사는 미생물의 종류를 바꾸면 모기 퇴치 효과가 2주 이상 지속될 것으로 다르파는 기대하고 있다.
이미 모기가 싫어하는 냄새를 이용한 모기 퇴치제가 있으나 효과 지속 시간이 짧다는 문제가 있다. 모기를 유인하는 물질과 마찬가지로 휘발성유기화합물을 이용해 퇴치제를 뿌리더라도 효과 지속시간은 4~5시간에 머문다. 땀에 쉽게 씻겨나가면서도 자주 뿌리면 부작용을 유발해 군인들이 사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린다 크리세이 다르파 프로젝트매니저(PM)는 “모기로부터 군인을 보호하는 혁신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모여 해결책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리벡터 프로그램 연구진은 현재 피부 미생물의 종류를 바꾸는 물질을 찾고, 동물에서 효과를 확인하고 있다. 이르면 올해 말 동물실험은 마치고 인체 대상 임상시험을 거쳐 군에 보급할 예정이다.
다르파와 별개로 미 육군은 모기 퇴치를 위한 연구소도 설립해 연구하고 있다. 월터리드 육군연구소(WRAIR)는 워싱턴에서 일주일에 모기 1만 마리를 키울 수 있는 사육장을 운영하고 있다. 연구소는 전 세계에서 서식하는 질병 매개 모기 6종을 연구해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프리마퀸, 바토바퀴논, 독시사이클린 같은 말라리아 치료제는 물론 최초의 말라리아 백신인 ‘RTS, S’도 월터리드 육군연구소와 영국 제약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이 공동으로 개발했다.
모기의 산란을 막는 장치도 월터리드 육군연구소에서 개발해 민간에서 판매 중이다. 월터리드 육군연구소는 1990년 알을 낳는 암컷 모기를 유인해 죽이는 살충제 함정(트랩)을 개발했다. 모기가 알을 낳기 선호하는 환경을 만들고 내부에 살충제를 넣어 유인하는 방식이다.
월터리드 육군연구소는 이 제품을 군사 활동을 하는 지역에서 모기를 죽이는 목적으로 개발했다. 2014년 미국 환경보호청(EPA)의 인증을 받고 민간에도 판매를 시작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모기로 인해 감염병이 창궐하는 지역에서 함정 제품을 사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한국군은 아직 모기 관련 연구에는 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 해외 다른 나라에 비해 모기로 인해 감염병이 발생하는 사례가 많지 않다는 이유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모기에 물려 말라리아에 감염된 환자가 연간 수백명씩 나온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국내 말라리아 감염 경로 중 군복무가 2위를 차지한다.
전체 말라리아 감염 사례 중 약 21%가 군부대에서 발생한다. 특히 경기 북부와 강원도에 있는 전방 부대에 감염 사례가 집중돼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군 출신의 과학기술계 관계자는 “한국군이 지금의 전투력을 유지할 수 있던 비결이 무기 체계 연구개발(R&D)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면서도 “감염병, 건강 같은 기초 분야에도 투자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