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안양시의 한 레미콘 공장에서 믹서트럭들이 주차돼 있다. /뉴스1

수도권 레미콘 제조사들이 전국레미콘운송노조연합회(전운련)에 운반비 협상을 통합교섭이 아닌 권역별 협상 방식으로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국토교통부 중재로 마련된 운반비 인상 합의안이 전운련 내부 투표에서 부결되면서, 통합교섭 논의도 사실상 무산된 것이다.

11일 레미콘 업계에 따르면 수도권 레미콘 제조사들은 이날 오후 전운련에 공문을 보내 "운반비 협상은 권역별 협상으로 전환하겠다"고 통보했다. 제조사들은 공문에서 "통합협상으로 인한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난 만큼 향후 운반비 협상은 권역별 협상으로 전환할 것을 알린다"고 밝혔다.

앞서 수도권 레미콘 제조사들과 전운련은 지난 9일 국토교통부 중재 아래 올해 운반비를 회전당 4200원 인상하는 내용의 최종 합의안을 도출했다. 그러나 전운련이 해당 합의안을 조합원 찬반투표에 부친 결과 부결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전운련은 이후 운송 거부를 철회하지 않은 채 재협상을 요구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제조사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제조사들은 "찬반투표 부결을 이유로 운송 거부를 철회하지 않고 재협상을 요구해 온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양측 협상 대표단이 공식적으로 도출한 합의안을 번복하는 것은 상호 신뢰 관계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라고 했다.

이번 공문 발송으로 양측이 어렵게 마련했던 잠정 합의는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가게 됐다. 제조사들이 전운련이 요구해 온 통합교섭에 더는 응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전운련은 수도권 일대 14개 레미콘운송노조 지부를 하나로 묶어 교섭하는 통합교섭을 요구해 왔다. 권역별로 협상이 진행될 경우 상대적으로 교섭력이 약한 지역은 운반비 인상 폭에서 불리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레미콘운송노조 노조원들이 9일 서울 강남구 건설회관 앞에서 열린 '건설사의 불공정거래 철폐 촉구 총력 투쟁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반면 제조사들은 통합교섭에 부정적인 입장을 유지해 왔다. 통합교섭을 수용할 경우 개별 운송사업자를 노동조합법상 근로자로 인정하는 결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향후 운반비 협상에서도 제조사 측 협상력이 크게 약화될 수 있다는 점을 부담으로 본 것이다.

다만 이번 잠정 합의안 도출 과정에서는 운송 거부 장기화에 따른 레미콘 공급 차질을 막기 위해 제조사들이 통합교섭 요구를 일부 수용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그러나 합의안이 전운련 내부 투표에서 부결되면서 제조사들은 다시 권역별 협상 원칙을 꺼내 든 것이다.

제조사들은 공문에서 "즉각적인 운송 거부 철회를 촉구한다"며 "운송 거부 철회 없이는 협상을 지속할 수 없음을 단호히 밝힌다"고 했다.

공문 발송 이후 전운련은 아직 제조사 측에 공식 입장을 회신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레미콘 업계 관계자는 "제조사와 노조 간 입장 차가 다시 커진 만큼 이날 중 협상 테이블이 마련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