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한 공인중개사 사무소의 모습. /뉴스1

임차인이 퇴거하지 않아 부동산 매매가 최종 무산됐더라도, 공인중개사에게는 중개 수수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부동산 거래 현장에서는 통상 잔금까지 치러야 거래가 성사된 것으로 보고 중개 보수 지급 여부를 판단하는 경우가 많지만, 법원은 매매계약이 체결된 시점에 이미 중개 업무는 완료됐다고 봤다.

20일 부동산 업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이달 서울중앙지법은 주요 판결 중 하나로 사건 '2025가단89955'의 판결문을 공개했다. 법원은 피고인 주식회사 B가 원고인 공인중개사 A에게 중개보수 1억395만원과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지연손해금은 2025년 6월 19일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12% 비율로 계산하도록 했다.

사건은 서울 중구의 한 토지와 지상 건물 매매 과정에서 비롯됐다. B사는 2024년 10월 30일 공인중개사 A의 중개로 매수인 C와 해당 부동산을 105억원에 매도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금은 10억5000만원, 중도금은 15억5000만원, 잔금은 84억원이었다. 중도금 지급일은 2024년 11월 29일, 잔금 지급일은 2025년 5월 1일로 정했다.

계약에는 중요한 특약도 포함됐다. B사가 해당 부동산에 있는 모든 임차인을 퇴거시킨 뒤 토지와 건물을 매수인에게 넘기기로 한 것이다. 이후 당사자들은 잔금 지급일을 2025년 5월 1일에서 같은 달 16일로 연기했다.

그러나 연기된 잔금일이 지나도록 B사는 임차인들을 모두 퇴거시키지 못했다. 매수인 C는 이를 이유로 잔금 지급을 보류했다. 잔금을 받지 못한 B사는 매매계약이 최종적으로 마무리되지 않았다고 보고, 공인중개사 A에게 중개보수를 지급하지 않았다.

이에 A는 B사를 상대로 중개보수 1억395만원과 지연이자를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재판에서 B사는 "원고인 A가 잔금 지급일을 2025년 5월 1일에서 5월 16일로 연기했고, 연기된 잔금일에도 매수인이 잔금을 지급하지 않았다"며 "중개보수를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래픽=정서희

하지만 법원은 B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매매계약 특약사항에 '잔금일은 상호 협의하에 조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었고, B사 역시 잔금 지급일을 5월 1일에서 16일로 연기하는 데 동의했다고 봤다. 따라서 잔금일 연기의 책임을 공인중개사 A에게 돌릴 수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또 매매가 끝까지 이행되지 못한 원인이 공인중개사의 중개 업무 미완료 때문이 아니라, 매도인 측의 임차인 퇴거 의무 불이행에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고는 이 사건 부동산의 임차인들을 모두 퇴거시킨 후 부동산을 인도하기로 정했지만, 연기된 잔금 지급기일은 물론 변론 종결일인 2025년 9월 9일까지도 임차인들이 해당 부동산을 점유·사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이 때문에 매수인이 잔금 지급을 보류하고 있는 사정을 고려하면, 이 사건 매매계약에 관한 원고의 중개 업무가 완료되지 않았다거나 중개보수 지급 시기가 도래하지 않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결국 법원은 매수인이 잔금을 지급하지 않은 사정만으로 중개보수 지급 의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본 것이다. 매매계약이 체결됐고, 이후 잔금 지급이 지연된 원인이 매도인의 임차인 퇴거 의무 미이행에 있다면 공인중개사의 중개 업무는 이미 완료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취지다.

변선보 법무법인 지음 변호사는 "일반적인 부동산 매매 계약에서 많은 사람이 잔금을 받지 못하면 계약이 마무리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중개 수수료를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러나 매매 계약서를 작성한 순간 계약은 체결된 것이고 중개 업무도 이뤄진 것으로 법적으로 중개 수수료 지급 의무도 발생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