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가 발생한 건설사에 대해 공공입찰 참여를 제한한 제도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건설사들은 행정처분에 대해 집행정지 가처분과 행정 처분 취소 소송으로 대응하며 시간을 벌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금호건설은 30명의 사상자를 낸 오송 지하차도 참사의 책임으로 공공기관 입찰 참여가 1년간 제한될 위기에 처하자 가처분 신청을 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다.
27일 건설 업계·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법원은 금호건설이 조달청으로부터 통보받은 '부정당업자 입찰참가자격 제한 처분'에 대해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금호건설이 지난 16일 입찰 참가 자격 제한 처분에 대해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및 행정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한 지 4일 만이다. 앞서 조달청은 금호건설에 대해 1월 23일부터 2027년 1월 22일까지 1년간 국내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공공 공사 입찰 참가 자격을 제한했다.
금호건설은 '오송~청주(2구간) 도로확장공사' 중 쌓은 임시 제방이 2023년 7월 집중호우로 붕괴되면서 오송 참사로 이어졌다는 혐의를 받는다. 이 사고로 차량 17대가 침수돼 14명이 숨지고, 16명이 다쳤다. 금호건설 현장소장은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6년형이 확정됐고, 서재환 전(前) 금호건설 대표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시민재해치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금호건설은 입찰 참가 자격 제한 처분으로 조달청은 물론 다른 공공기관 발주 신규 사업 입찰에 참여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법원의 집행정지 결정으로 당분간 공공공사 입찰 참여가 가능해졌다. 판결 선고일인 20일부터 1개월이 되는 날까지 입찰 참가 자격 제한은 효력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금호건설은 가덕도신공항 부지조성공사 재입찰에 단독 참여한 컨소시엄에 들어가 있기도 하다.
입찰 참가 자격 제한 처분을 받은 건설사들은 일종의 관행처럼 법원에 효력 정지 신청을 제기해 '시간 끌기' 전략을 펼치고 있다. 집행정지 처분을 받으면 대법원 확정판결 전까지는 계속해서 공공 입찰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형 사고의 책임을 진 건설사들이 사실상 평균 2년 넘도록 공공입찰에 참여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산업재해가 발생한 건설사를 상대로 공공입찰 참가 제한이 실행된 사례가 최근 5년간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박민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조달청에서 제출받은 공공입찰 참여 제한 관련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산업 재해를 규율하는 국가계약법상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공공입찰 참가 자격을 제한받은 건설사는 없었다. 이 기간 건설사들의 공공입찰 제한 244건 중 231건(94.7%)은 계약불이행이 이유였다.
조달청 제재 처분에 반발해 제기한 집행정지 가처분 평균 인용률은 90.6%로 파악됐다. 더불어민주당 안도걸 의원에 따르면 지난 2019년부터 2024년 8월 말까지 조달청이 부정당업자로 제재 처분한 건수는 1703건에 이른다. 이 중 조달청의 제재 처분에 반발해 법원에 부정당제재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 건수는 527건으로 이 가운데 454건이 인용됐다. 신청만 하면 대부분 제재를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2022년 광주 서구 화정동 아이파크 신축 현장 붕괴 사고로 지난해 5월 서울시로부터 총 12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HDC현대산업개발의 경우 행정처분을 받자 같은 달 20일 서울시 처분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내고 집행정지 가처분도 신청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해 6월(8개월)과 전날(4개월) HDC현산이 서울시를 상대로 낸 집행정지 신청을 각각 인용했다. 행정소송 본안 사건은 집행정지를 결정한 같은 재판부에서 1심 재판이 진행 중인데, 이 사이 HDC현산은 용산정비창 전면 1구역 재개발, 미아9-2구역 재건축, 신당10구역 재개발 등 굵직한 사업을 단독 또는 공동 수주했다.
건설 업계 관계자는 "물론 기업 입장에선 신규 수주를 못 하게 되면 영업 활동에 큰 악영향이 있는 만큼 배임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합법적인 대응 수단을 활용한 것"이라면서도 "이런 일률화된 영업정지와 무력화 시도를 되풀이할 게 아니라 과징금 대체 등 제도 개선과 근본적인 사고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