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공사 계약에서 물가 상승분을 공사비 증액에 반영하지 않기로 한 ‘물가변동 배제 특약’의 효력이 무효라는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서 공사비 분쟁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판결이 나왔다고 해도 실제 모든 건설 현장에 적용될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수도권 아파트 건설 현장 모습. /뉴스1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지난 4월 부산 소재 교회가 시공사를 상대로 제기한 선급금 반환 청구에서 시공사가 승소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2심을 맡은 부산고등법원이 특약 효력을 제한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고 대법원은 이를 심리 불속행 기각으로 확정했다. 심리불속행 기각은 상고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되는 사건을 더 이상 심리하지 않고 기각하는 제도다. 이번 판결로 이미 지급한 선급금을 돌려달라며 소송을 낸 교회는 건설사와 계약 해지를 하지 못하게 됐다.

물가변동 배제특약은 시공사의 착공 후 추가 공사비 요구를 금지하도록 하는 내용의 도급계약상 특약 사항이다.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으로 원자재 가격이 상승해 공사비 급증으로 이어지면서 특약의 유효성을 다투는 소송이 증가하는 추세다.

이 판결을 계기로 건설업계의 공사비 분쟁은 더욱 본격화 할 것으로 전망된다. KT는 경기 판교 신사옥 공사비 증액을 놓고 쌍용건설과 법적 소송을 진행 중이다. 쌍용건설은 KT 측에 공사 대금 상승분으로 171억원을 요구했다. KT는 쌍용건설 외에도 현대건설, 롯데건설, 한신공영 등과도 물가변동 배제특약이 담긴 도급계약을 체결했다.

또 GS건설은 3월 미아3구역 주택 재개발 정비사업조합을 상대로 소송가액 322억9900만원 규모의 공사 대금 청구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공사비가 더 오르기 전에 적당한 선에서 협의하고 착공에 돌입하려고 했던 재건축 조합들도 난감해졌다. 서울 서초구의 한 재건축 조합은 일부 조합원이 계약서의 물가변동 배제특약을 내세워 인상에 반대해 갈등이 커졌다. 건설사가 추가 커뮤니티 시설을 지어주겠다는 제안으로 해결책을 냈지만 내부 반발은 여전히 큰 상황이다.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르면 민간·공공 공사에서 계약서상의 불공정 조항을 무효로 취급한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4월 지방자치단체뿐만 아니라 민간 발주자에게도 공사비 관련 불공정 조항에 관한 유권해석 내용을 전달했다. 그러나 일선 재건축·재개발 현장에서는 조합원 반발 때문에 차라리 조합이 소송에서 패소하는 게 빠르다는 반응도 나온다.

다만 대법원 판결이 건설 현장에 널리 적용될 수 있을지 의문이어서 그 파급력은 알 수 없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법원 판결은 의미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결과가 실제 모든 건설 현장에 적용될 지는 알 수 없다”면서 “추후 실무 적용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