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와 원자잿값 상승으로 주택시장 침체가 이어지는 가운데 건설사들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브랜드 재정비에 나서고 있다. 오래된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탈피하는 동시에 고급화, 첨단화된 인상으로 건축비를 올리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서울 은평구의 한 견본주택에서 방문객들이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14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금호건설은 20년 만에 새 아파트 브랜드 ‘아테라’를 최근 선보였다. 기존 브랜드 ‘금호타운’과 ‘금호 베스트빌’을 ‘어울림’과 ‘리첸시아’로 대체한 뒤 20년 만에 브랜드를 변경했다. 아테라는 삶의 공간인 집을 ‘대지 위의 예술’로 만들겠다는 뜻을 담았다.

HL디앤아이한라도 27년 만에 새 주거 브랜드 ‘에피트(EFETE)’를 공개했다. 기존 브랜드 ‘한라비발디’를 대체해 에피트를 대표 아파트 브랜드로 변경했다. 에피트에는 누구나 선호하는 완벽한 아파트(Everyone’s Favorite, Complete)라는 뜻을 담았다.

반도건설은 새로운 상업시설 브랜드 ‘시간(時間)’을 선보였다. 2014년 ‘카림애비뉴’, 2021년 ‘파피에르’ 출시에 이어 3년 만에 새 상업시설 브랜드를 내놓은 것이다. ‘시간’에는 ‘사람이 머무는 곳, 시간을 즐기는 곳, 시간 공간이 되다’라는 의미를 넣었다.

시티건설도 지난 3월 CI(Corporate Identity)를 비롯해 자사 주거브랜드인 ‘프라디움’ BI(Brand Identity)를 8년 만에 리뉴얼했다. 동부건설도 ‘센트레빌’을 24년 만에 리뉴얼하기 위해 오는 6월 3일까지 BI 공모전을 진행하고 있다.

코오롱글로벌도 지난달 24년간 사용한 아파트 브랜드 하늘채의 외관을 새 단장한 ‘하늘채 유니버스(HANULCHE UNIVERSE)’ 패키지를 공개했다. 하늘채의 이미지를 커뮤니티, 문주(단지 출입 게이트), 동출입구, 조경 등에 일관되게 담는 것이다.

GS건설도 ‘자이(Xi)’ 브랜드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 상황을 파악하고 로고 변경 등을 검토하고 있다. GS건설은 지난해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부실 시공 관련 논란이 불거졌고, 올해 4월에는 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를 국내산으로 위조한 중국산 유리로 시공한 사실이 드러났다. GS건설은 2002년부터 20년 이상 유지한 자이 브랜드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졌다고 보고 브랜드 관리를 강화할 방침이다.

건설업계에서는 건설사들이 브랜드 재정비에 나서고 있는 것은 침체된 주택 경기에 맞서 분양을 촉진하기 위한 마케팅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중견건설사 관계자는 “국내 주택 경기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언제까지 좋아지기를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겠나”라며 “수년간 사용했던 기존 브랜드를 새롭게 바꾸면 이전보다는 분양 실적이라든지 수주 활동에 있어서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보고 있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주택 경기가 좋을 때는 굳이 브랜드를 리뉴얼하지 않더라도 수주 활동이 원활히 이뤄진다. 주택 경기가 침체기에 들어서면 건설사들이 시도할 수 있는 것이 제한적이다. 주택 경기가 안 좋을 때 새 브랜드에 투자해 향후 부동산 시장이 회복에 대비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의견도 있다. 정비사업 또는 분양사업에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사전 작업에 나서는 것이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브랜드를 바꾸는 이유는 인지도가 미약하거나, 하자·부실시공 문제로 이미지가 크게 실추됐거나, 정비사업 수주전에서 하이엔드 브랜드로 전략적 우위를 선점하기 위한 대비책 등 세 가지 중 하나”라며 “기존 브랜드라도 새로 바꿔서 부진한 주택 실적을 조금이라도 끌어올리기 위한 고육책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했다.

건설사들이 저조한 분양 실적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첨단화·고급화로 건축비를 올려 받는 ‘일거양득’ 효과도 있다는 분석이다.

권대중 서강대학교 일반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브랜드를 오래 쓰면 인지도가 높아지고 기억에 오래 남는 효과가 있겠지만, 오래된 ‘구닥다리’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주기도 한다”며 “건설사들이 브랜드 변경으로 첨단화, 고급화한 브랜드라는 이미지 쇄신에 나서면서 분양 촉진을 이끌어내고, 건축비 인상을 할 수 있는 명목도 얻을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