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전국의 전세권 설정등기 건수는 전년보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전세 거래 자체가 줄어든 측면도 있지만 전세권 설정 등기가 아직 전세 계약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서울 송파구의 한 부동산중개업소에 붙어 있는 전세 매물 안내문. /뉴스1

4일 대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의 집합건물 전세권 설정등기 건수는 4만 4766건이었다. 전년도인 2022년 5만2363건과 비교하면 15% 가까이 줄었다. 같은 기간 서울만 봐도 8065건에서 7996건으로 소폭 감소했다. 올해 1월과 2월은 4000건대로 예년과 비슷한 수준을 기록했다.

전세권 설정등기는 세입자가 전세보증금을 지급하고 집주인의 집을 점유하고 있다는 것을 명시한 등기다. 대항력면에서는 전입신고 후 확정일자를 받는 것과 동일한 효력을 가진다.

전세권 설정등기가 줄어든 이유는 가장 먼저 전세 거래 자체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 주택 통계에 따르면 2022년 전국 주택 전세 거래 건수는 135만9361건이었다. 지난해는 122만6465건으로 전년 대비 9.7%가량 줄었다. 같은 기간 서울 주택 전세 거래량도 40만8302건에서 36만7948건으로 9.8%가량 감소했다. 지난해 서울 강남구의 100억원대, 경기도 성남의 50억원대 등 대규모의 전세사기가 발생하면서 임차인들의 불안감이 커진 탓이다.

전체 전세 거래보다 전세권 설정등기 감소 비중이 더 크게 줄어들었는데, 이는 여전히 전세 계약을 할 때 전세권 설정등기를 임차인과 임대인 모두 필수 절차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세권 설정등기는 확정일자를 받는 것과 동일한 효력을 지니지만 보증금 미반환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엔 달라진다. 전세권 설정등기는 임차인이 별도의 소송절차 없이 해당 집을 임의경매로 넘길 수 있다. 반면 확정일자는 세입자가 법원에 보증금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해 승소해야 경매로 넘길 수 있다. 이 때문에 전세권 설정은 집주인의 동의를 받아야 해 집주인들이 꺼려하는 경우가 많다.

또 확정일자는 전입신고만해도 받을수있지만 전세권설정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임차인도 굳이 선호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전세권설정등기를 하려면 수수료 1만5000원에 ‘전세금 ×0.24%(등록세·지방교육세)’를 더 내야한다. 예를 들어 전세보증금이 10억원일 경우 기본적으로 241만5000원이 들어간다.

이와 함께 전문가들은 전세사기로 인해 해당 집이 경매에 넘어갔을 때 선순위로 근저당권이라 가압류가 있으면, 전세권 설정등기가 큰 힘을 발휘할 수 없는 점도 문제라고 설명한다.

고준석 연세대 상남경영원 교수는 “전입신고하고 확정일자를 받아놓으면 나중에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게 돼 경매로 넘어갔을 때 전부 배당 요구를 할 수 있는데, 전세권 설정등기는 보증금을 일부만 받아도 전세권이 소멸돼 버려 전부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며 “또 그 집에 연체된 재산세나 상속세 등 당해세(부동산에서 발생하는 세금. 대표적으로 종합부동산세 등)를 납부해야하는 상황이라면 또 전세권자가 밀리게 돼 전세시장에서 크게 선호하지 않는 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