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가 부동산 시장의 ‘큰 손’이 됐다. 정부의 정책금융 상품 지원에 힘을 얻은 영향이다. 반면 기성세대의 부동산 구매는 오히려 주춤하고 있다. 대출 혜택 등이 청년들에게 집중되다 보니, 오히려 소외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부동산 시장에서 ‘생애주기별·세대별’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부동산 시장에서 세대별 특성은 무엇인지,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짚어봤다. [편집자주]

서울 중구 한국주택금융공사 서울중부지사에서 한 시민이 상담을 받고 있다. /뉴스1

2021년 ‘내 집 마련’에 성공한 A씨(34, 고양시 거주)는 최근 팔리지 않는 집 때문에 고민이 많다. 노원구 월계동에 전용면적 59㎡ 아파트를 8억원대 중반에 매매했는데, 최근에는 비슷한 층의 실거래가가 7억원대 중반까지 떨어졌다. A씨는 “결혼을 앞두고 다른 곳으로 갈아타려고 했지만 본전도 못 건질 것 같아 사실상 포기했다”며 “9억원을 넘었을 때 팔았으면 좋았겠지만 타이밍 잡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A씨의 친구 B씨(34, 영등포구 월세 거주)는 그래도 ‘유주택자’인 A씨가 부럽다. 그는 “’영끌족(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이 ‘벼락거지(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가격이 급격히 올라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는 사람)’보다 낫지 않냐”고 했다. 특례보금자리론을 활용해 주택 매수를 노려봤지만, 이미 집값이 올라버린 탓에 정작 살 수 있는 집은 거의 없었다. B씨는 “분양가는 높아지는데 청약에는 자꾸 실패한다”면서 “박탈감을 또다시 느끼지 않고 싶어 급매나 청약 등을 열심히 알아보는 중”이라고 했다.

올해 서울 주택 매수세와 매도세를 보면 모두 30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고금리 영향으로 영끌한 주택을 내다 파는 경우가 많았는데, 정책금융 지원을 받아 내 집 매수에 나선 경우도 상당했다. 그만큼 정책 변수에 상대적으로 민감하며, 부동산을 마치 금융상품처럼 ‘자주 사고 팔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문가들은 30대가 주도하는 부동산 시장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 “정책금융 민감도 높은 세대... 규제 완화發 매수 이끌어”

31일 법원 등기정보광장이 제공하는 ‘집합건물 매매에 의한 소유권이전등기 신청 매도인 연령별 수치’에 따르면, 지난 3개월(9~11월) 간 서울에서 아파트 등 집합건물을 매도한 연령대 중 30대는 4743명이었다. 올 1분기 1757명에 비해 2.7배가량 늘어난 수치다.

가장 많이 매도한 연령대는 40대(7458명)로 같은 기간 2.3배 늘었다. 50대는 1.85배 증가하는 데 그쳤다. 통상 30~50대는 가장 활발하게 부동산을 거래하는 연령대로 통한다. 이 가운데 30대 매도인이 가장 많이 증가한 것이다.

서울 집합건물 매수세를 봐도 30대의 비중은 확연히 높다. 올해 9월에서 11월, 30대 9585명이 집합건물(오피스텔, 도시형생활주택 등)을 매수했는데 모든 연령대 중 가장 많았다. 이어 40대는 8950명, 50대는 6601명 순이었다. 1분기와 비교하면 연령대별로 각각 2.7배, 2.1배, 1.5배 늘었다. 증가폭도 30대가 가장 많았다.

젊은이들이 서울에서 보유하고 있던 주택을 판 이유는 뭘까. ‘고금리 여파’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2021년 말 1.00%에 불과했던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올해 3%대 중반까지 치솟았다. 대출을 끌어모아 집을 샀던 30대 들의 이자 부담은 크게 늘었다.

2020년 집값 급등기 이전에 이미 집을 구매했던 30대가 차익을 실현한 뒤 매각한 사례가 늘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일시적 하락기를 거쳐 올해 잠시 부동산 가격이 오른 틈을 타 매각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눈여겨볼 점은 매수세도 30대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1·3부동산 대책’ 등 정책적 영향이 컸다고 본다. 서울 강남과 서초·송파·용산구를 제외한 전국 모든 지역이 규제 지역에서 해제됐다. 수도권 분양주택의 전매제한 기간도 최대 3년으로 줄었다. 분양가상한제 주택의 실거주 의무와 중도금대출 보증 분양가 기준도 당시 폐지를 약속했다.

특히 1월 말 실시된 특례보금자리론은 내 집 마련을 고민하고 있는 30대에게 첫 구매를 권하는 시그널로 읽혔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을 적용하지 않고, 9억원 이하 주택에 대해 최대 5억원까지 연 4%대의 고정 금리로 빌려주는 것은 젊은 세대들에겐 그야말로 ‘파격’이었다. 취득세 면제도 ‘1+1 구매’처럼 따라왔다. 12억원 이하 주택을 생애 최초 취득하면 소득과 관계없이 취득세를 200만원까지 면제받을 수 있었다.

서울 남산에서 내려다 본 서울의 아파트 단지. /뉴스1

◇ ‘벼락거지 박탈감’에 전세사기 덮쳐... 사회적 분위기도 ‘한몫’

전문가들은 정부의 부동산 연착륙 정책이 젊은 세대의 부동산 ‘구매 욕구’를 부채질했다고 평가한다. 여기에 부동산을 하나의 ‘변동성이 높은 금융상품’처럼 취급하는 젊은 세대의 특성도 더해졌다. 부동산 상승장 때 집값이 크게 오르면서 느낀 심리적 박탈감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 2030세대에게 ‘영끌의 성지’로 불리는 노도강(노원·도봉·강북)의 아파트 가격을 보면 변동 폭이 심했다. 2021년 기준, 노도강 매수자 가운데 2030세대 비율은 45.5%에 달했다. 이처럼 매수자가 많다 보니 집값이 하락할 때 ‘패닉 셀(공포에 의한 투매)’도 빈번하게 이뤄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올해 11월까지 기준으로 서울시 25개 구 중 하락률이 가장 높은 곳은 도봉구(10.9%)였다. 이어 노원구(10.3%), 강북구(8.3%) 순이었다. 2020년 부동산 상승기 당시 노원구의 84㎡ 아파트가 ‘10억 클럽’에 진입했던 것에 비하면 큰 폭으로 떨어진 셈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과거 30대는 결혼 후에 기성세대가 젊은 시절 살다가 판 아파트 매물을 매입하는 경향이 강했다”면서 “그러나 최근에는 30대들끼리 서로 아파트 매물을 주고받는 ‘수평교체’의 형태가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세 사기 여파도 컸다. 젊은이들이 주로 거주하는 빌라 등을 중심으로 사기 피해가 극심해지자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는 공포감이 확산됐다. 이로 인해 2030세대가 매매를 더욱 선호하게 됐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젊은이들이 주로 집값 상승과 반등기 때 불안한 마음에 ‘추격 매수’하는 경우가 많아 유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경험과 자산이 부족한 젊은 계층일수록 오히려 상승할 때 구매하는 경향이 강한 편”이라며 “내년 금리가 어떻게 될지 등 흐름을 지켜본 후 주택 매입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