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7일(현지시각), 영국 런던 39 이스트로드(East Road). 런던 최중심부에 있는 뱅크(bank)역에서 지하철 언더그라운드를 타고 두 정거장을 지나 올드 스트리트(old street)역에 내렸다. 이곳에서 5분 정도 걸어가자 회색 골조가 높이 솟아 있는 것이 보였다. 현장에 가기까지 걸린 시간은 10분 남짓. GS건설의 자회사이자 고층 철골 모듈러 전문업체인 엘리먼츠 유럽이 지난 2022년 수주한 호텔의 공사 현장 모습이다.

지난 6월 찾은 영국 런던 39이스트로드에 위치한 GS건설 자회사 엘리먼츠가 수주한 모듈러 호텔 공사 현장. 런던 중심부에 위치한 부지 특성 상 좁은 곳에 호텔 시설을 지어야 하고, 바로 옆에는 오피스 등 실제로 사용 중인 시설들이 있어 공사가 쉽지 않아 보였다. /백윤미 기자

현장에서는 형광 주황색 옷을 입은 인력들이 안전모를 쓴 채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관계자에게 안전모를 건네받아 쓰고 내부로 직접 들어가자 촘촘하게 이어져 있는 철골이 한 눈에 들어왔다. 파란 게시판에는 월별로 진행된 공사 과정을 찍어둔 사진이 여러 장 붙어 있었다. 현지 직원들은 그 사진을 보고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언뜻 봐도 부지 특성상 좁은 곳에 호텔 시설을 지어야 하고, 바로 옆에는 오피스 등 실제로 사용 중인 시설들이 있어 공사가 쉽지 않아 보였다. 심지에 옆 건물이 틈도 없이 붙어 있어 난이도가 높을 것으로 짐작됐다.

공사장 중간에 설치돼있는 파란 게시판에 붙어 있는 사진을 보고 토론 중인 현지 직원들. /백윤미 기자

GS건설이 모듈러 방식을 선택한 이유는 이처럼 공사 조건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런던 현지에서 근무 중인 최기호 GS건설 책임은 “호텔 부지가 런던 최중심부인 존(zone)1에 있는 데다 주변 건물과 인접하고 인근 지하철로 인해 공사 수행에 난이도가 있었다”면서 “그래서 주변 시설에 방해가 적고 빨리 지을 수 있는 모듈러 방식 공사가 훨씬 유리하겠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이 건물은 지하 2층과 오피스 5개 층 등 아래 부분은 골조로 짓고, 최고층인 23층까지 나머지 객실은 모듈러 공법으로 건축한다. 이미 고층 모듈러 건물의 척추와 같은 엘리베이터와 계단실 등 핵심 골조는 21층까지 올라가있는 상태였다. 모듈러 방식은 유닛을 타지에서 생산해 조립하고 공사 현장으로 이동시켜 현장에서 완공한다. 즉, 레고 블록처럼 모듈 유닛을 쌓는 형태다.

GS건설 자회사인 영국 엘리먼츠가 수주한 모듈러 호텔 조감도. 공사가 마무리되면 이 같은 모습으로 지어진다. /GS건설 제공

구체적으로는 객실 한 개가 모듈러 유닛 한 개로 제작된다. 모듈러 유닛은 층당 14개씩 총 239개 들어간다. 해당 유닛은 런던 북쪽에 있는 텔포드 지방에서 생산했다. 화장실 역시 미리 만들어서 현장으로 이송하는 방식이라, 현장에선 볼 수 없었다. 다만 화장실이 습식 공사로 진행돼 흥미로웠다. 화장실 공사는 방수와 타일 등 공사가 복잡한데, 타지에서 배관 공사까지 완료해 현장에서 연결만 하면 되는 구조라 용이해보였다.

모듈러 공법은 본래 부지가 넓고 인구가 적은 교외에서 단독주택 건축 용도로 쓰인다는 인식이 있다. GS건설의 모듈러 자회사로 국내에서는 자이가이스트, 폴란드 등 유럽에서는 단우드가 목조, 저층 위주의 단독주택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하지만 런던 현지에서 본 결과, 무엇보다 대도시에 필요한 공법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공사 과정에서 안전사고가 한 건도 없었고, 조립하는 모듈러 공법 특성상 분진도 거의 없어 민원이 제기될 가능성도 낮다.

철골이 빽빽한 호텔 저층부 모습. /백윤미 기자

건축 공법이 수익과 직결되는 면이 있다는 점도 눈에 띄었다. 이 건물의 경우 호텔이라는 용도 때문에 빨리 지을수록 운영도 빨리 할 수 있어 조립식인 모듈러 공법이 훨씬 유리했다. 국내에서는 생소하지만 유럽 등지에서 잘 알려진 BTR(Build-to-Rent, 다세대 아파트나 단독 가구 주택의 임대용 개발)이나 기숙사 등에서도 모듈러 공법이 주는 이익이 크다.

오는 2025년부터 운영 예정(내년 11월 준공)인 이 호텔은 독일계 호텔 프렌차이즈 회사인 ‘모텔1′이 35년 장기 리스 계약을 한 상태다. 저층부 오피스는 글로벌 부동산 업체인 UBS에 준공 후 임대하게 된다.

최 책임은 “수주 전에도 쉽지 않은 공사임을 알았지만 모듈러 공법의 장점을 믿었기에 할 자신이 있었다”면서 “현재도 지연 없이 공사가 진행 중이며 영국에서는 흔치 않은 모듈러주택 550가구 대단지 수주도 마친 상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