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반포주공 1단지 제3주구 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이 HCD현대산업개발에 164억원에 달하는 손해배상액을 물어주게 됐다. 3~4년 전 정비사업 수주 경쟁이 치열했던 국면에서 조합들의 ‘시공사 갈아타기’가 빈번했는데, 확실한 시공사 해지 사유가 있지 않는 이상 ‘공사 도급계약 취소’가 성립할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 용산구 HDC현대산업개발 본사 옥외 간판./뉴스1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7민사부는 HDC현대산업개발이 반포아파트(제3주구) 재건축조합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조합측은 HDC현대산업개발측에 약 164억4062만원을 지급하라”고 판단했다. 해당 단지 조합원은 약 1490가구로 가구당 1000만원 이상 물어줘야 하는 셈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2018년 5월, 반포3주구 조합측은 HDC현대산업개발이 단독 입찰해 2회 이상 유찰되자 수의계약 체결을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하지만 특화 설계와 공사비 등을 놓고 갈등을 겪으면서 본계약 체결에 실패했다. 일부 조합원이 HDC현대산업개발과 수의계약을 추진했던 전임 조합장에 대한 고소·고발장을 제출하면서 해당 사업은 혼탁 양상으로 치달았다.

본격적으로 시공사 교체 가능성이 대두된 것은 같은 해 10월, 새 조합장이 선출되면서다. 새 조합장은 HDC현대산업개발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박탈하고 시공사 선정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밟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결국 조합 측은 새 시공사 선정에 나섰고 삼성물산과 대우건설이 경합한 끝에 삼성물산이 새 시공자로 선정됐다. 이 과정에서 시공사 지위를 박탈당한 HDC현대산업개발은 조합 결정에 강력 반발하면서, 손해배상 소송 등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HDC현대산업개발측은 조합측이 공사도급 본계약을 체결할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당초 시공사 선정을 위한 입찰 제안서를 제출했고 결의에 따라 시공사로 선정됐으므로, 양측 사이에 공사도급 본계약의 체결에 관한 계약이 성립했다는 입장이다. HDC현대산업개발측은 “해당 재건축 공사를 그대로 진행해 완성했을 경우, 얻을 수 있었던 이행이익 상당의 손배해상으로 시공이익 합계 411억여 원과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라고 했다.

반면 조합측은 HDC현대산업개발측이 입찰금액 산출 시 반드시 포함시켜야 할 지하철 연결통로 공사비를 반영하지 않았고, 질이 낮은 마감재를 공급하는 등 기준 조항과 참여 규정에 어긋난다고 반박했다. 조합측은 “입찰제안도 무효이고, 이에 기초한 사건 결의도 무효”라고 맞섰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HDC현대산업개발 손을 들어줬다. 시공사 측이 ‘입찰 참여 조건을 위반했다’는 조합측 주장에 대해 “입찰효력을 부정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입찰절차 과정에서 ‘내역 입찰 방식’으로 이뤄졌고, 시공사도 조합으로부터 제공받은 원안 설계도서와 물량내역서를 토대로 입찰금액을 산출했다는 점에서다. 연결통로 공사비와 관련해서도 공사계획도 수립되지 않은 데다 지하철 9호선 운영주체와 협의도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마감재 부분도 “조합이 제시한 마감재를 시공사가 일부 적용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를 이유로 입찰금액을 다시 산출해야 한다거나 입찰제안이 참여 조건을 위반해 무효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또 서초구청장으로부터 ‘마감재 비용을 일부 미반영해 이를 입찰금액에 포함하면 예정 가격을 초과한다’는 내용의 시정명령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내용을 재차 검토해야 한다는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입찰제안에 위법사유가 있다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다.

재판부는 “원고와 시공자계약협상단의 회의 내용, 그 이후 이뤄진 피고의 수정요구, 원고가 계약서 초안과 함께 송부한 사건 비교를 고려하면 원고가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한 확약을 번복하고 유리한 계약조건을 강요했다는 조합 측 주장은 수긍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다만 재판부는 조합이 손해배상할 금액은 HDC현대산업개발이 재건축 공사를 이행했을 경우 얻게 되는 이익의 40%로 제한해야 한다고 봤다. 법원이 인정한 이행이익은 약 411억원이다. 하지만 시공자 선정 취소로 재건축 공사를 위해 투입해야 할 시간적·금전적 비용 지출이 대부분 없어진 데다, 사업비용 지출이나 사업성 위험을 면하게 됐다는 점에서다. 이 밖에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원자재 가격 폭등과 건설경기 불황 등의 사정을 고려하면 손해배상책임은 40%가 적정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HDC현대산업개발측은 “재판부 판결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합원 중 한 관계자는 조선비즈와의 통화에서 “조합측에서 항소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반포3주구는 전용면적 72㎡ 1490가구로 조성된 지하철 9호선 구반포역 역세권 단지다. 재건축을 통해 지하 3층~지상 35층, 17개동, 2091가구 대단지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삼성물산이 ‘프레스티지 바이 래미안’이라는 이름으로 올 3월 착공에 들어갔으며, 오는 2025년 후분양을 계획하고 있다.

대형 로펌의 한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이번 사례와 비슷한 소송들이 여러 건 대기 중”이라며 “하이엔드 브랜드로 갈아탔던 곳들 위주로 조합과 시공사의 귀책 여부 다툼이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정비 사업 경쟁이 치열할 때 무리하게 브랜드 갈아타기를 했던 곳들이 손해액을 물어주게 된 상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