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03번 마을버스가 힘겹게 오르막길을 오르고 그 뒤를 직물 더미를 가득 실은 오토바이 두 대가 뒤따랐다. 그 오른편 경사지를 따라 세월을 알 수 없는 주택들이 구불구불 줄을 지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비좁은 골목과 가파른 계단, 그 위를 어지럽게 뒤 덮은 전봇대의 전선들. ‘신속통합기획안 주민설명회’를 알리는 현수막 뒤로 펼쳐진 서울 종로구 숭인동 56번지의 모습이었다.

30일 오전 창신역 4번 출구에서 내려 마주한 숭인동 노후 주택가는 잠잠한 분위기었다. 오전 11시가 다 되도록 도로변 부동산 중개업소들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재개발 사무실에도 드나드는 발걸음이 없었다. 안쪽 주택가에서는 소규모 방직·봉제공장에서 재봉틀 소리가 간간히 들릴 뿐이었다. 2주 전인 지난달 16일 이 곳에는 960가구에 이르는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개발안이 발표됐지만 기대감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숭인동 56번지의 모습. 신속통합기획안 주민설명회를 알리는 현수막 뒤로 노후 주택가가 자리하고 있다./조은임 기자

“재개발요? 그게 그렇게 쉽게 됩니까. 내가 여기 터를 잡은 게 20년 전인데 그 때부터 나왔던 얘깁니다. 돼 봐야 아는거지 뭐...”

4차선 도로 건너편의 창신동 23번지. 작은 봉제공장에 직원 한 명을 두고 일하던 A씨는 재개발 여부를 묻는 기자의 질문의 손사레를 치며 말했다. 숭인동 56번지와 함께 신속통합기획이 진행 중인 이곳의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창신동 일대에만 1260가구, 숭인동과 합해 2000가구가 넘는 신축 아파트가 들어설 계획이다. 이 곳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B씨는 “2주 전쯤 설명회를 했다는 얘기는 들었다”면서도 “재개발 얘기가 하도 오랫동안 오락가락 하니 딱히 기대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창신동 23번지 일대. 경사지를 따라 노후 주택들과 가파른 계단이 위치해 있다./조은임 기자

창신동 23번지·숭인동 56번지 일대는 17년 전인 2006년 창신·숭인재정비촉진구역으로 지정됐다. 당시 뉴타운으로 조성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2013년 박원순 시장이 취임한 뒤 재정비촉진구역에서 해제됐고, 2014년 5월 1호 도시재생 선도구역으로 선정됐다. 이후 투입된 예산만 1000억원이 넘었다. 하지만 이제는 군데군데 주민 공동시설만이 도시재생 사업의 흔적을 말해줄 뿐 열악한 주거 환경은 개선되지 않았다. ‘역사성 보존’이라는 명목 아래 주민들은 십 수년 불편한 일상을 감내해야 했다. 1년에 수 차례 화재가 발생해도 이 곳에는 소방차 한 대가 들어오질 못했다.

이 일대는 오세훈 시장이 취임한 뒤 2021년부터 신통기획 재개발 지역으로 선정, 사업을 진행하게 됐다. 하지만 흔한 재개발 지역에서 볼 수 있는 투기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토지면적 6㎡를 초과하면 사실상 거래가 어렵게 됐다. 창신 이수아파트 인근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지금은 매물도 없고, 거래를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라면서 “경계선 바로 접해 있는 매물도 평당(3.3㎡당) 3500만~4000만원 정도 한다”고 했다.

주민들 사이의 이견도 적지 않다고 한다. 3~4층 규모의 빌라에 세를 놓고 있거나, 대로변에 점포를 가진 주민들은 재개발 공사로 이주가 시작된다면 월세를 받을 수 없고, 이후에도 아파트 한 채를 받는 것은 손해라는 판단을 한다는 것이다. 창신동 인근의 또 다른 중개업자는 “그래도 이번에는 재개발로 향하는 분위기이기는 하다”면서 “대로변의 점포들은 구역에서 제외될 수도 있다”고 했다.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창신동 23번지의 한 골목길에서 오토바이 한 대가 직물을 가득 실고 이동하고 있다./ 조은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