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동네에서 이사를 가려고 해도 토지거래허가구역에 묶여 집을 사고 팔기가 어렵다. 언제까지 집값을 잡는다고 실거주를 위한 거래를 제한하려는지 모르겠다. 이건 반(反)시장적, 반헌법적 정책이다.”(서울 송파구 잠실동 리센츠 주민 홍모씨).

8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 리센츠 아파트 외벽에 토지거래허가제 해제를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 김송이 기자

지난 7일 서울시가 강남구 삼성·청담·대치동과 송파구 잠실동 등 4곳에 대한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을 1년 연장하면서 주민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이들 지역은 지난 2020년 6월23일부터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였는데, 이번 결정으로 약 4년 간 부동산 거래에 제약을 받게 됐다.

9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토지거래허가구역은 일정 규모 이상의 주택·상가·토지 등을 거래할 때 관할 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직접 거주 또는 운영 목적이 아니면 매수할 수 없도록 설정한 구역이다.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면 임대를 놓거나 전세를 끼고 집을 매수하는 일명 ‘갭투자’가 불가능하다.

잠실동 A 공인중개소 관계자는 “지난 4월 압구정·여의도·목동·성수가 재지정되면서 예상은 했지만, 막상 재지정되니 주민들 실망감이 크다”면서 “다른 지역에서 거주하면서 잠실동으로 이사 예정인 실거주 예정자들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이사 계획을 세우기도 어렵다”고 했다.

해당 지역 주민들은 재산권 침해와 형평성 문제 등을 이유로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잠실동 한 주민은 “개발 호재는 다른 곳들도 많은데, 왜 잠실동만 10년 전부터 추진됐던 마이스(MICE) 사업을 핑계로 재산권을 침해 당해야하는지 모르겠다”면서 “풍선효과로 가락동, 반포 등의 집값만 뛰었다”고 했다.

실제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전용면적 84㎡는 지난 4월 43억1000만원에 매매됐다. 지난 2020년 6월 30억원과 비교해 43.6% 오른 것이다. 대치동 옆 도곡동 ‘상지리츠빌카일룸’에선 전용 210㎡가 지난달 역대 최고가인 65억원에 거래됐다.

8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 엘스 아파트(왼쪽)과 리센츠 아파트 / 김송이 기자

이 지역 주민들은 단체 행동도 진행하고 있다. 엘스와 리센츠 주민들이 지난달 말 단지 외벽에 ‘재산권 침해하는 토지거래허가제! 즉각 해제하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내걸었고, 최근엔 ‘엘리트레(엘스·리센츠·트리지움·레이크팰리스)’ 연합을 만들었다. 이들은 지역구 국회의원, 시의원, 송파구청 등을 상대로 탄원서를 모으고 간담회도 개최할 예정이다. 잠실동이 지역구인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은 도계위를 앞두고 정부와 서울시에 토허제 철회를 강력 요구하기도 했다.

엘스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관계자는 “당장 반포만 하더라도 롯데칠성부지, 경부고속도로 지하화, 정보사부지개발 등 여러 개발 사업이 예정돼 있고 집값도 급격히 올랐는데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았다”면서 “특정 지역에 혜택을 몰아주는 듯한 정책 철회를 위해 현재 준비 중인 단체 행동이 효과가 있지 않을 경우 추가 행동도 불사할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엘·리·트·레가 지난 2008년 준공돼 재건축 아파트가 아님에도 개발지역 인근이라는 이유만으로 토허제로 묶인 것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압구정‧양천구 목동 등은 투기 우려가 있는 재건축 단지 만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했지만, 잠실은 이미 재건축이 완료된 단지까지 포함해 전역을 토허제로 지정해 과도하다는 것이다.

다른 지역들에서도 토지거래허가구역 반대를 위한 단체행동이 진행되고 있다. 강남이 지역구인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은 도계위 심사를 앞두고 지난 5일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주민 5500여 명이 서명한 해제 의견서를 전달했고, 대치동 일부 단지들도 토지거래허가구역 반대 서명운동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과잉규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이유가 된 개발 사업들은 2028년에 잠정 완성되는 데다 현재는 집값 조정기인데도 이 제도가 유지되는 것은 시의적절하지 못하다”면서 “집값 상승을 대비한 과잉규제로 삼성·청담·대치·잠실의 상업용 부동산 거래마저 제약받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