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이 호주건설시장의 문을 두드렸지만 첫 수주에 실패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당초 야심차게 계획했던 호주 지사 설립도 없던 일이 됐다.

그래픽=손민균

7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현대건설은 지난달 호주 중서부 오라나 지역의 신재생에너지구역(CWO REZ, Central-West Orana Renewable Energy Zone) 내 송변전선 플랜트 사업에 입찰했지만, 수주에 실패했다. 해당 사업은 30억달러 규모로, 이 가운데 송변전선 건설만 10억달러(한화 약 1조3036억원)에 달한다. 현대건설은 현지 업체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입찰에 나섰다.

CWO REZ는 ‘전기 인프라 투자법’에 따라 서호주 에너지·환경부 장관이 공식 선언한 특별구역으로, 호주 내 REZ 구역 5곳 중 1곳에 해당된다. 풍력과 태양열 발전 등을 효율적으로 저장하고 전송하기 위한 곳으로, 석탄화력 발전소 퇴출 움직임에 맞춰 뉴사우스웨일스 전 지역과 도시에 재생 에너지를 통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취지로 설립됐다.

앞서 삼성물산, DL이앤씨, GS건설 등 국내 대형 건설사들은 1~2년전 호주건설시장에 진입한 상태다. 하지만 업계 맏형인 현대건설만 마수걸이를 하지 못하고 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호주공사 입찰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안다”면서도 “최종적으로 호주 현지 업체가 수주했다”고 말했다. 이에 함께 준비 중이던 호주 지사 설립도 중단하게 됐다. 지난 3월 현재, 현대건설의 수주규모는 연간 목표의 약 90%에 달할 정도로 성과가 나쁘지 않지만, 유독 호주에서만 수주를 못한 상황이다.

사실 호주 시장은 국내 건설사들 사이에서 ‘까다로운 곳’으로 통한다. 호주는 강력한 산업별 노조가 결성돼 노사 분규가 잦고 노동조합 규모가 큰 편이라 사업 진출에 있어 어려움이 많은 곳으로 꼽힌다. 또 기술인력이 많지 않고, 인건비도 비싼 편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호주는 2370억원 호주 달러(한화 약 100조원) 규모의 5개년 공공인프라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급속한 투자 확대에 따른 자재와 인력난, 프로젝트 지연 및 예산 증가를 겪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호주의 뉴사우스웨일스 지역은 자격을 갖춘 건설인력 확보가 어려워 해당 지역 전역에서 공사가 몇 달 동안 지연됐다고 보고된 바 있다.

무엇보다 현지 업체들의 텃세가 심한 편이라 입찰시 컨소시엄을 구성해야 하는 국내 건설사 입장에서는 어려움이 가중될 수 밖에 없다. 중동 지역과 달리 국내 건설사와의 사업 경험이 적다는 점에서 신뢰감 형성이 덜 된 영향도 있다. 건설업계에서 오랫동안 종사한 한 관계자는 “호주 시장은 미국 시장보다 훨씬 더 까다롭고 어려운 곳”이라며 “시장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전제되지 않고서 함부로 들어갔다가 말 그대로 막대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과거 삼성물산도 호주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은 바 있다. 2013년 4월, 삼성물산은 호주 로이힐 광산에서 채굴한 철광석을 수출하기 위한 플랜트·철도·항만 인프라 조성 공사를 따냈다. 당시 계약금액만 6조4763억원에 달했지만, 저가수주 논란에 공사지연까지 겹치면서 8000억원대의 손실을 입었다.

그럼에도 업계에서 호주 시장은 포기할 수 없는 ‘미개척지’라는 평가가 나온다. 시장 규모 자체가 워낙 크고 기본 인프라가 적은 상황이라 향후 무궁무진한 시장이 될 것이라는 분석에는 이견이 없다. 최근 국내 주택경기가 침체되면서 건설사들이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고심하고 있는 것과도 일맥 상통한다.

호주에서 플랜트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대형 건설사의 한 관계자는 “호주 시장은 본사 인력을 파견 보내는 등 ‘과거 프로세스’로 진행하면 절대 안 된다. 기술인력이든 관리인력이든 인적구성을 최대한 현지화하고 세심하게 관리해야 한다”면서 “특히 단독수행이 어렵다는 점에서 컨소시엄 형태로 들어가야 하는데 무엇보다 수행 경험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