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살고 있는 오피스텔 바로 옆 오피스텔에서 전세 사기 피해자가 나왔다는 소식에 식은땀이 흘렀어요. ‘혹시 내 집도 해당될까’ 불안감에 요즘 밤잠도 설칠 지경입니다.” (30대 김모씨, 삼성전자 재직중)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후문. /채민석 기자

지난 21일 경기 화성 동탄신도시에서 만난 김모씨는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인근 오피스텔로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원래 동탄1신도시 석우동에 거주하다가 최근 문제의 오피스텔 바로 옆으로 이사했다는 것. 김씨는 “무엇보다 직장과 거리가 가깝고, 월세도 전보다 저렴해 계약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전셋값은 1억5000만원이었다.

김씨가 이른바 ‘동탄 오피스텔 전세 피해’ 사건을 처음 접한 것은 뉴스가 아닌 삼성전자 내부 커뮤니티에서다. ‘전세사기 피해를 조심하라’는 제목의 글이었는데, 불안감에 급하게 연차를 내고 공인중개사를 찾아갔다고 했다. 그는 “회사 근처에 거주하는 직원들을 중심으로 부랴부랴 피해 여부를 알아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내부 분위기가 흉흉하다”고 말했다.

동탄 신도시에서도 전세 보증금을 받지 못한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피해자 중에는 삼성전자 소속 직원들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문제의 오피스텔이 화성사업장과 도보로 8분 거리에 있는 데다 전세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점에서, 아파트를 매매할 여력이 없는 젊은 직원들이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소속 직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는 공인중개업소의 추천도 한몫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오피스텔 옥상에서 바라본 삼성전자 화성자업장 모습. 이 오피스텔은 A씨 부부가 갭투자를 통해 매매한 250채 중 한 곳이다./채민석 기자

조선비즈 취재 결과, 이번에 피해를 본 직원들 대부분은 역전세로 인해 전세보증보험 가입을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오피스텔 전세가가 매매가보다 높아 전세보증보험 가입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동탄 지역 오피스텔은 삼성전자 기숙사로 불릴 정도니 안심하라”는 공인중개사의 말을 믿고 계약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삼성전자 화성사업장뿐만 아니라 용인 기흥구에 있는 삼성디스플레이 본사와 수원 영통구의 삼성전기 수원사업장으로 출근하는 일부 직원들도 피해를 입었다.

삼성디스플레이에 재직 중인 전세사기 피해자 A씨는 동탄역 인근의 한 오피스텔을 전세가 1억3500만원에 계약했다고 했다. 그는 이날 조선비즈와의 통화에서 “계약 당시 공인중개사 측에서 ‘소유자 변경이 될 것’이라고 말해 다른 곳을 알아볼까 했지만, 매매 전에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받도록 해주겠다고 해서 보증보험 없이 계약을 진행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공인중개사가 ‘삼성 직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고 했다. 주변에 이 말을 듣고 계약을 한 지인들이 많다”고 강조했다.

실제 피해 오피스텔 중 한 곳은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후문에서 도보로 5~1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해있었다. 직선거리로 40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동탄1동의 오피스텔 밀집지역도 출퇴근이 용이한 거리였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니 후문까지 20여분 만에 도착했다.

피해자 중 대부분은 2030세대의 젊은 직원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혼자 거주하기 때문에 전셋값 1억원대 오피스텔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지난 21일 기준 피해 신고가 접수된 동탄의 한 오피스텔전용면적 45㎡의 전세가는 1억3300만원이었다. 매매가(1억3900만원) 보다 600만원 낮았다. 동탄1동의 오피스텔의 평균 전세 시세도 1억원대 중반에서 1억원대 후반 사이에 형성돼 있다.

삼성전자 등의 신입사원 공개채용 시기에는 전세 수요가 몰려 동탄 지역의 집값이 요동치기도 한다. 동탄 지역에서 부동산을 운영하고 있는 한 공인중개사는 “전국에서 올라온 신입사원들이 숙소를 구하기 위해 몰려 공채 시즌에는 수백만원씩 전셋값이 오르기도 한다”고 밝혔다.

화성사업장 인근 오피스텔에 거주하고 있는 C씨는 “이곳에 삼성전자 직원들이 다수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실제 임대차 계약할때 부동산 중개소 사무실에 손님들이 모두 삼성 재직자였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전했다.

A씨 부부가 소유하고 있다고 알려진 동탄의 한 오피스텔. /채민석 기자

삼성전자는 ‘전세 사기’ 피해자 명단에 화성사업장 근무자들이 다수 포함돼있다는 소식을 듣고 회사 자체적으로 전수조사에 나선 상황이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회사가 법률적으로나 금전적으로 지원을 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편,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임차인들의 피해 신고 70여건을 접수해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동탄·병점·수원 등 지역에 오피스텔 253채를 소유하고 있는 40대 부부와 공인중개사 등 4명을 사기 혐의로 입건하고 출국금지 조치를 내린 상태다. 동탄 일대에 오피스텔 43채를 보유하고 있다가 파산 신청을 한 또 다른 임대인에 대한 고소 건도 수사하고 있다.

다만 피해자 구제를 위해서는 임대인 부부가 임차인을 상대로 기망행위를 했는지 여부 등 ‘사기 혐의’부터 입증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피해자 법률 대리인 윤영석 법무법인YK 변호사는 “임대인 부부가 임차인들을 처음부터 속이고 계약을 한 것인지, 아니면 속일 의사가 없었는데 자금 경색으로 전세금을 지불하지 못하게 된 것인지가 관건”이라며 “만약 임차인들에게 손해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면 사기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