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건설사의 타워크레인 현장은 ‘비노(비노조)’가 절대 운전할 수 없는 구조다. 민주노총(민노)과 한국노총(한노)이 현장을 7대3 정도로 나눠 갖고 있으며, 이 비율에 따라 타워기사가 배정된다. 배정 비율이 달라지면 건설사에 자기 노조원 채용을 더 하라고 압박한다. 타워크레인이 2대가 들어가는 현장은 더 골치 아프다. 민노와 한노 사이에 배정문제를 놓고 합의가 원활히 되지 않으면 양측간 ‘치열한 싸움’이 시작된다. 이 와중에 이쪽 저쪽 눈치를 살피던 건설사가 불응하면, 지자체와 고용노동부에 각종 민원을 지속적으로 제기한다. 입구를 막고 타워를 점거하는 등 모든 수단을 동원, 현장 공사기간이 지연될 수 밖에 없다. 해당 공사 현장과 전혀 관련이 없는 A건설사의 또 다른 현장에 대해 민원을 걸기도 한다. ‘저쪽 현장에 타워기사 배정문제 때문에 공사 진척이 안 되고 있으니 이쪽 현장에서 압력이라도 가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면서다.

노조소속 타워기사는 골조 협력사로부터 고정적으로 월례비를 받는다. 기본 월 500만~600만원에 달하는데 해마다 늘어가는 추세다. 주간에는 사실상 태업을 하고 이로 인해 늦어지는 공기는 아침 조기출근 또는 일과 후 오버타임(OT)을 통해 별도 비용을 받는다. “통상 타워 기사가 받아가는 돈은 월급을 제외하고 OT비용 포함해 월 1000만원 이상”이라는게 B건설사의 전언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1일 서울 강남구 건설회관에서 열린 건설현장 불법행위 관련 대한건설협회 등 유관 단체 간담회 참석하고 있다./뉴스1

그간 건설현장에서 관행처럼 이뤄지던 건설노조의 ‘불법 행위’에 대해 정부가 철퇴를 가하겠다고 밝혔지만 건설업계에선 노조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대체적으로 숨 죽이고 있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정부와 노조가 ‘강대강 국면’으로 치달아 문제가 커지면 결국 피해는 건설사가 볼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다.

23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건설사들은 정부의 불법행위 근절 대책에 대해 일단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공개적으로 이 같은 입장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노조를 자극해서는 좋을 것이 없다는 불안감이 깔려 있는 것이다. 오히려 대책 발표를 계기로 노조가 파업하거나 현장을 점거하는 일이 발생할까봐 더 노심초사하고 있다.

건설노조 문제는 업계에서 ‘알면서도 손 못대는’ 숙제로 통한다. 문제가 되고 있는 불법행위에는 ▲자기 소속 노조원들을 과도하게 적정인원 수 이상으로 채용하라며 부당한 채용요구를 하거나 ▲태업과 민원 제기 등 여러 방해행위를 통해 공사시간을 지연시키는 것 등이 거론된다.

건설업계는 당장 노조측에서 정부 태도에 현장을 점거하고 공사를 진행하지 못하게 할 것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노조원 수십명이 와서 게이트를 점거하면 원자재 등을 나르지 못해 공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B건설사 관계자는 “오랜 관행이라는게 있고 시장에서 돌아가는 공식이라는게 있다”면서 “정부 대책의 취지도 맞고 당연히 개선해야 할 것들이 있지만 정부 대책 발표로 인해 발생하는 리스크는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고 토로했다.

무엇보다 건설사들은 노조의 파업 및 태업에 따른 피해, 즉 손실보전을 어떻게 할지 강구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건설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피해 현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불법행위가 명확한 경우에는 실질적 보상을 해 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공기 연장에 따른 피해는 결국 건설사를 거쳐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불법행위를 인지했을때 원청사와 감리사 등에게 적극 신고하도록 한 점은 현실과 거리가 먼 얘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원도급사와 감리사의 강력한 ‘신고 의지’를 주문했지만, 누구 하나 앞장서서 노조에 발목을 걸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눈치싸움만 할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건설현장에서 오랫동안 근무해 온 C씨는 “한마디로 고양이 목에 방울을 누가 달 것이냐 하는 문제”라며 나중에 생길 손실이나 손해를 걱정해서 과연 적극적으로 신고를 하고 문제제기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반면 건설노조는 정부가 노조를 ‘절대악’으로 규정하고 있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월례비를 받은 건설기계 조종사에 대해서는 자격정지 및 건설기계 조종사 면허 정지 조치라는 강수를 둔 상태다.

건설노조는 지난 21일 성명을 내고 “타워크레인 월례비에 대해서 옹호한 적이 없으며 건설협회 등 건설 사업자단체에 월례비 근절을 촉구하는 입장의 공문도 발송한 적이 있다”고 강조했다. 월례비는 타워크레인 노동자가 일방적으로 강요해서 받는 돈이 아니라, 건설사가 무리한 작업을 요구하는 대가로 지급해온 수당이라는 게 노조 측 주장이다.

전문가들은 정부나 노조 어느 쪽이든 한쪽이 일방적으로 100% 맞거나 틀리다고 전제하고 매도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건설현장과 사업진행과정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 불법행위를 원천적으로 근절할 방안이라는 취지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월례비나 불법 및 부당행위의 대부분은 비용과 관련된 사안”이라며 “이런 비용들이 대부분 공식적인 공사비에 포함되지 않는다. 특히 공공 공사에서는 예정가격을 산정하기 때문에 해당 유형의 금품 명목을 넣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건설사들이 해당 비용을 어디선가 충당해야 하는데 결국 건축물의 품질저하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부실공사 여지가 커지는 셈”이라며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면 처음부터 공사비를 산정할 때 적절히 반영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