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복합상가쇼핑몰 내에 입점한 구분점포 형태인 ‘오픈상가’를 경매 시장에서 더 자주 볼 수 있을 전망이다. 경매 물건이 되려면 해당 점포의 독립성(구분소유권 객체)이 인정돼야 한다. 그동안은 근저당권자가 이러한 사실을 증명해야 했는데 어려운 일이다 보니 경매가 잘 성사되지 않았다. 이제는 다투는 측에서 독립성이 없다는 증거를 찾아야 한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업계에서는 오픈상가 관련 거래가 활발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래픽=손민균

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제3부(재판장 노정희)는 A시행사가 대우건설을 상대로 제기한 ‘경매개시결정에 대한 이의 신청’ 재항고심 사건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에 돌려보냈다.

오픈상가는 1990년대 말부터 ‘패션몰’이 각광 받으면서 분양 열풍이 불었던 시기에 다수 분양됐다. 동대문 두타, 명동 밀리오레 등 소형 의류소매점포들이 입점한 복합쇼핑몰이나, 의류 아웃렛·가구몰처럼 특정 분류 상품들을 판매하는 점포를 무리지어 입점시킨 상가 형태를 말한다. 경계벽 등 견고한 물리적 구분이 없는 ‘오픈된’ 형태인 경우가 많다. 주로 근린상가나 지하상가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대우건설은 시행사에 구상금 및 대여금 채권을 갖고 있었다. 시행사가 채무를 변제하지 않자, 대우건설은 시행사가 담보로 제공했던 서울 서초구 양재동 소재 구분점포 9곳에 대해 임의경매를 신청했다. 그러자 법원은 경매개시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시행사는 이러한 결정에 대해 이의신청을 했다. 자신이 대우건설에 근저당권을 설정해줬던 각 점포들은 구조나 실제 이용상 다른 부분과 구분되지 않는 등 ‘독립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취지였다. 즉 구분소유권을 행사할 수 있는 객체로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실제 각 점포는 리모델링이 되면서 경계벽이나 경계표지 없이 인접한 점포들과 함께 통합된 매장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1심은 시행사의 주장을 받아들여 임의경매개시결정을 취소했다.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집합건물법)과 시행령 표지규정상 ▲경계표지의 재료나 색깔이 바닥과 명확히 구분돼야 하고 ▲건물번호표지 글자와 재료, 색, 설치 위치 등에 대한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점에서였다.

즉 해당 점포가 구분소유권 목적으로 등기돼 있다는 점에 근거해 경매절차가 진행, 매각 허가를 받고 매수대금을 납부했다 하더라도 결국 독립성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등기 자체가 무효라 소유권을 취득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우건설이 항고했고, 2심은 1심 판단을 존중하는 결정을 내렸다. 특히 과거에 경계표지 등이 있었는지 알 수 있는 자료를 근저당권자인 대우건설이 제출하지 못한 점을 사유로 들었다. 그러자 대우건설은 재항고했다.

대법원은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돌려보냈다. 경매개시 당시 구분점포가 경계벽 또는 경계표지를 갖추지 못한 상태라해도, 구분 등기가 완료된 것을 보면 등기 시점(준공) 당시 집합건물법 제1조의2에서 정한 구분소유권 요건을 갖추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경계벽이 제거돼 각 점포가 구조상·이용상 독립성을 상실하게 됐다 하더라도 각 점포의 위치와 면적을 특정할 수 있고 사회통념상 복원이 용이하다면 구분소유권의 실체를 상실했다고 쉽게 단정할 수 없다는 법리를 다시 한번 확인한 셈이다.

특히 과거에 경계표지가 있었는지 여부를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대우건설이 제출하지 못한 점을 탓하는 항고심 판단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각 점포가 집합건축물대장 신규등록과 구분건물로 소유권 보존등기가 마쳐진 것을 보면 경계표지 등이 설치돼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면서 “따라서 (이의) 신청인이 ‘경계표지 등이 설치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하면 구조상 독립성을 갖춘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사건을 대리한 박성철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는 “집합건축물대장에 첨부된 편명도와 건축물현황도로 경계를 확인할 수 있다면 현재 경계표지 등이 없더라도 구조상 독립성이 인정될 수 있다는 취지로 판시한 것”이라며 “주장·증명의 주체를 이의 신청자가 하도록 한 것도 경매 실무상 큰 의미”라고 평가했다.

부동산업계에서는 이번 판결로 향후 경매시장에 나오는 오픈상가 물건이 많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집합건물법은 1984년 제정됐다. 이후 상가건물 내 구분점포가 독립해 거래되는 현실을 반영하는 취지에서 2003년 집합건물법 제1조의 2가 신설됐다. 해당 조항은 구분점포가 구조상·이용상 독립성을 갖추면 구분소유권 대상이 되도록 규정했다. 다만 오픈상가와 같은 개방형 매장에 대해서는 경매법원이 독립성 여부를 까다롭게 판단해왔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기존에 나오는 물건들은 (구분돼 있다는) 위치 확인이 형식적으로 잘 돼 있어야 했다. 위치 확인이 잘 안 되면 경매 개시 결정이 안 났다”면서 “이번 판결로 오픈상가의 담보 가치가 올라가면서 자금도 안정적으로 융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상가집합건물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