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하면서 부동산 경기 침체가 상당 기간 지속할 가능성이 커졌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부동산 시장 참여자들의 관망세가 올해 하반기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국은행은 13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를 개최하고 현재 연 1.75%인 기준금리를 0.50%포인트 인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번 결정으로 기준금리는 2.25%가 됐다. 기준금리가 2.25%를 기록한 것은 2014년 8월 이후 8년 만이다.

◇ 주택담보대출 금리 4% 중반대… 하반기 주택가격 약세 전망

올해 들어 주택 시장은 침체를 보이고 있다. 부동산 정보제공업체 직방에 따르면 지난 5월까지 전국 총 주택 거래량은 46만4832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74만7468건)의 62% 수준에 그쳤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6월 말까지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은 0.11% 하락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6.65% 오른 것과 대조적이다.

부동산 시장 전문가들은 연이은 금리 인상으로 최근 이어지는 주택시장 침체 기조가 더 강화될 것으로 전망하는 경우가 많다. 안그래도 금리 부담이 커지면서 집을 사는 사람이 줄고 있는데, 이런 추세가 이어질 것이란 뜻이다. 거래가 잘 안되고 집값이 다소 떨어지는 수순이 이어질 것이라는 게 상당수 전문가의 예상이다.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모습./뉴스1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한동안 집값이 제자리에 머물거나 떨어질 가능성이 보이는 상황에서 높은 이자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대출로 무리하게 집을 사는 의사결정은 어려운 문제일 수 밖에 없다”면서 “관망세 속 저조한 주택거래와 가격 약세장이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연 4% 중반대를 넘어 연 5%까지 가면 더 심한 약세장이 펼쳐질 것이란 전망도 많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최근 금융기관의 신규취급액 기준 주택담보대출 평균금리는 지난 5월 기준 3.9%였다. 이번 금리 인상으로 평균금리는 4% 중반에 가까워질 가능성이 크다.

지난 1년간 대출금리 저점이 연 2.3~2.4% 수준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단기간 내 금리가 2%포인트가 올랐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하반기에 추가로 금리가 오르면 급격한 위축이 나타날 가능성 크다”고 했다.

주택시장이 약세로 접어들기 시작했던 2008년 12월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다. 당시 국내 기준금리는 연 3.0%를 기록했는데, 주택담보대출금리(신규)는 연 6.81%까지 치솟았다. 이 시기 가계대출 금리별 비중은 연 5.0~8.0% 미만 대출자가 84.8%나 됐다.

올해 5월 기준 관련 수치를 보면 연 3.0~4.0% 미만 대출자가 55.7%, 연 4.0~5.0% 미만 23.7%, 연 5.0~8.0% 미만 6.9% 수준이다. 함영진 랩장은 “앞으로 연 5~8% 미만의 가계대출 금리를 지불하는 차주 비중이 전체 중 50%를 넘기게 된다면 가계 경제나 부동산 시장도 상당한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했다.

현 정부에서 규제를 핀셋으로 해제시켜준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도 부동산 시장에서 큰 역할을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주택담보대출 비율을 80%까지 완화해줬지만 금리 부담에 적극적으로 매수에 나서지 못할 것으로 보여서다.

박원갑 KB국민은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임대차 3법 시행 만 2년을 맞아 전월세살이에 지친 실수요자들이 집을 일부 사려고 나설 수 있지만, 그 수가 많지 않을 것”이라면서 “소나기를 피하자는 심리가 커질 수밖에 없고 이런 상황에서 위험을 지고 매수에 나서는 사람은 적을 것”이라고 했다.

◇ 전세의 월세 가속화… 월세 부담은 더 커진다

전세의 월세화 현상은 가속할 전망이다. 대출금리가 급등하면서 세입자 입장에서도 전세대출을 받아 은행에 이자를 내기보다 집주인에게 월세로 내는 것이 낫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하반기에는 임대차법 시행 2년을 앞두고 있어 전세계약을 종료하고 월세로 갈아타는 세입자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국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지난 4~10일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의 전세대출 금리는 연 3.58~4.14%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 연 4.799%였던 전세대출 금리 상단은 지난 4월 연 5%를 넘은 데 이어 6%대 진입을 앞두고 있다. 이번 금리인상으로 지표금리인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와 금융채 금리가 오르면 전세대출 이자는 더욱 오를 전망이다.

지난 4일 오후 서울시내 한 상가에 밀집한 공인중개업소./연합뉴스

임대차 시장에서는 이미 전세보다 월세를 선호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5월 전국의 전월세 거래는 총 40만4036건으로, 이 중 월세가 59.5%(24만321건)를 차지해 전세(16만3715건·40.5%)를 크게 앞섰다. 월세 비중은 올해 4월 50.4%로 집계되며 정부가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1년 이후 처음으로 전세를 넘어섰는데, 한 달만에 9.1%포인트 더 뛰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높은 지방 아파트나 연립·다세대 주택 임대차계약은 전세가율이 80%를 넘어설 경우 보증금 미반환 위험을 낮추기 위해서라도 보증금의 일부를 월세로 지불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라고 했다.

월세 수요가 늘면서 월세 가격은 더 오를 가능성이 크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4월 서울 지역의 평균 전월세전환율은 4.8%로 작년 8월(4.8%) 이후 8개월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전월세전환율은 전세금을 월세로 전환할때 적용하는 비율로, 이 값이 높으면 임차인의 월세부담이 더 커진다는 의미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금리가 오르니 집주인들이 전환율도 올릴 수 밖에 없다”면서 “월세화가 진행되며 월세 자체도 오른다는 것”이라고 했다.

◇ 실수요자 내년 상반기 급매물 중심으로 매수전략 짜야

부동산 전문가들은 당분간 시장 분위기가 약세로 판단된다는 점을 미뤄볼 때 실수요자라면 내년 상반기 나올 급매물 중심으로 매수 전략을 짤 것을 권했다. 내년 종합부동산세 기산일(6월 1일) 이전에 다주택자 급매물이 나올 가능성이 높은데 이를 활용하라는 것이다.

갈아타기를 원하는 1주택자에게는 선매도·후매수 전략을 권했다. 거래절벽이 이어지고 호가가 내려가면서 급매물이 보일 때 급한 마음에 먼저 매수부터 할 경우, 기존 보유주택을 매도하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에 내몰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일부에선 전·월세 시장이 강세를 보이는 만큼 ‘갭투(보증금을 끼고 집을 사는 것)’가 더 성행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지만, 투자심리가 살아나긴 어려울 것이란 의견이 많았다. 박합수 교수는 “집값이 좀 더 떨어질 확률이 높다 보니 투자자도 가격 추이 지켜볼 때라 매수가 쉽게 이뤄질 상황은 아니다”고 했다.

임차인 입장에서는 전세보다는 월세가 나을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급여의 소득세율이 낮을수록 전세대출 이자 납입분에 대해 연말 소득공제를 받는 것보다 월세로 지출하고 세액공제를 받는 게 유리한 편이다. 박원갑 전문위원은 “앞으로 금리가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면 집주인과 한번 계약을 하면 2년 동안 지불금액이 일정한 월세 선택이 나을 수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