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가구, 1000가구에서 딱 한 채가 모자란 499가구와 999가구로 짓는 아파트가 이따금씩 등장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주택 성능 규제를 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비판도 하지만, 건설사들은 비용부담을 줄이고 분양가를 낮추기 위한 선택이라고 항변한다.

19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분양한 아파트 중 ‘평택역 경남아너스빌 디아트’, ‘e편한세상 연천 웰스하임’, ‘역삼 센트럴 아이파크’, ‘영종국제도시 화성파크드림 2차’ 등은 500가구에서 딱 한 가구 부족한 499가구로 분양했다.

서울시내 아파트 단지의 모습. /뉴스1

건설업계에서는 499가구로 짓는 이유로 주택성능 등급표시제도를 꼽는다. 주택법에 따르면 500가구 이상의 주택을 건설·공급하는 건설사는 입주자 모집공고에 소음·구조·환경·생활환경·화재 및 소방 등 5개분야·56개 세부항목에 대한 등급을 담아야 한다. 이를 ‘주택성능 등급표시제도’라고 한다. 주택사업자로 하여금 주택을 공급할 때 공동주택의 품질을 향상시키고 입주자에게 정확한 주택정보를 전달하라는 취지에서 제도가 도입됐다.

이 제도가 처음 실시된 2006년에는 단지 규모가 2000가구 이상인 곳에만 규제가 적용됐다. 그러나 이 기준은 2008년 1000가구로 낮아졌고, 2019년에는 500가구로 더 낮아졌다. 공개와 관련된 기준도 점차 까다로워지면서, 2019년부터는 성적표를 모집공고 안에서도 잘 보이는 곳에 실어야 하도록 했다.

분양마진을 높이려는 건설사들 입장에서는 이 같은 제도가 달갑지 않다. 품질을 높이려면 공사비를 더 지출해야하기 때문이다. 공사비가 높아지면 분양가 인상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상품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아파트를 짓는 지역이 서울이 아닌 지방이나 경기도 외곽이라면 이런 우려는 더욱 커진다.

이에 건설사들은 차라리 가구 수를 줄이는 대신 가구당 면적을 넓혀 제도를 피하자는 판단을 하게 된다. 늘어난 면적만큼 가구당 분양가를 살짝 높이면 분양수익을 유지하면서도 공사비를 높이지 않을 수 있다. 일례로 전용 84㎡짜리 509가구로 계획한 아파트를 499가구로 줄이면 가구당 면적을 85.7㎡로 높이면 된다. 가구 당 분양가를 2%만 높이면 전체 분양가격은 동일하다.

수도권 내 분양하는 한 아파트 단지의 공동주택성능등급 인증서

시중에 1000가구가 아닌 999가구짜리 단지가 등장하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이미 준공된 단지 중에는 ‘하남 호반써밋 에듀파크’와 ‘신동탄 롯데캐슬 나노시티’, ‘칠곡북삼서희스타힐스’ 등이 999가구로 지은 사례다. 공급계획이 발표된 곳 중에서도 ‘신길역세권 재개발 사업’, ‘상봉 터미널 복합개발’ 등이 999가구로 지어진다.

이 단지는 1000가구 이상 단지에 적용되는 ‘장수명주택’ 인증제도를 피할 수 있다. 주택법상 1000가구 이상 공동주택을 짓는 건설사는 장수명주택 인증등급이 ‘일반등급’ 이상이어야한다. 일반등급은 내구성·가변성·수리 용이성 부문에서 받은 점수의 총합이 100점 만점에 50점 이상인 경우를 말한다. 60점 이상은 ‘양호’, 70점 이상은 ‘우수’, 90점 이상은 ‘최우수’로 분류된다.

부문별 세부 인증기준에 따르면 아파트를 짓는 건설사는 내부 내력벽을 줄이고 내부 벽 면적 중 구조변경이 쉬운 건식벽(석고보드를 활용해 조립하는 벽)의 비율을 높여 사용자가 이동 설치 및 변형이 가능토록 설계해야 한다. 사용 중에 개·보수 및 점검이 쉽도록 공용 배관과 전용 설비 공간을 따로 설치해야하는 조건도 있다. 이런 조건이 추가될수록 건설사는 비용압박에 직면하게 된다.

정부는 장수명주택 인증을 받은 단지의 경우 건폐율과 용적률을 15%씩 올려주는 등 혜택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이런 혜택도 지자체 조례상 허용가능한 한도 내에서만 가능해 용적률을 꽉 채워 아파트를 지으려는 경우 적용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다. 또 우수·최우수 등급의 장수명주택을 건설하려면 기존 주택보다 최대 20%가량 비싼 건축비를 투입해야해 비용이 더 크다는 지적도 있다.

이처럼 비용 대비 혜택이 크지 않다는 점이 가구 수를 줄이는 ‘꼼수’가 등장한 배경으로 꼽힌다. 한 부동산 개발업계 관계자는 “장수명주택으로 지었을 때 정부가 제공하는 인센티브보다 품질 개선을 위해 추가로 지출해야 하는 공사비가 더 큰 것이 현실”이라면서 “과거 1050가구짜리 아파트를 지으려고 했는데 이런 이유로 999가구로 낮춰서 분양했다”고 했다.

이동훈 리모델링협회 정책법규위원장은 “장수명주택, 고성능 주택 개념은 좋지만 현실적으로 비용이 많이들면 분양가가 올라가서 건설사들이 이를 따르기가 쉽지 않다”면서 “소비자들도 보이지 않는 주택의 내구성이나 품질보다는 보이는 가치에 치중하다보니 건설사가 성능을 개선할 유인이 많지 않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