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전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공사 현장. 평소 같으면 인부들과 장비들이 움직이는 소리로 시끄러울 시간이지만, 공사현장엔 공사중단에 항의하는 인부들의 시위 소리만 들렸다. 공사장 펜스 곳곳에는 시공사업단과 인부들이 붙인 현수막이 혼재돼 붙어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한 인부는 “공사가 일방적으로 중단되고 수많은 인부들은 일자리를 잃었다”면서 “공사중단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가능한 한 공사중단에 항의하는 시위를 지속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어 “현재 공사현장 곳곳에서 총 50여명의 인부가 항의 시위를 하고 있다”고 했다.

시공사업단에 따르면, 이날 0시를 기점으로 둔촌주공 재건축 공사가 공식적으로 중단됐다. 현대건설·HDC현대산업개발·대우건설·롯데건설 등으로 구성된 시공사업단은 이미 전날 부터 인부들과 장비들을 철수하고, 유치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공사진행률이 52%에 달하는 상황에서 거대한 현장이 멈춰선 것이다. 단지 대다수 동이 12~13층까지 올라간 상태다.

둔촌주공 재건축은 서울 강동구 둔촌동 둔촌주공 아파트 5930가구를 철거하고 지상 최고 35층, 85개 동, 1만 2032가구의 신축 아파트 ‘올림픽파크 포레온’을 짓는 사업이다.

15일 오전 서울 강동구 둔촌 주공 재건축 현장의 모습. 공사비 증액 문제를 두고 조합과 시공사업단이 갈등을 겪다가 공사가 중단됐다. / 김송이 기자

◇조합·시공단, 공사비 증액 문제 두고 평행선

국내 최대 규모 재건축 사업 조합과 4개의 대형 건설사가 극심히 갈등하는 직접적인 원인은 공사비 문제다. 둔촌주공 재건축 조합은 지난 2010년 현대건설 컨소시엄을 시공사로 선정했다. 당시 현대건설 컨소시엄은 1조9840억원을 들여 둔촌주공 1~4단지 5930가구를 9090가구로 재건축할 예정이었다.

갈등은 재건축 시공사가 선정된 지 약 10년 만인 재작년 시작됐다. 2020년 6월 둔촌주공 조합 전임 집행부는 시공단과 기존 2조6706억원이었던 공사비를 3조2293억원으로 약 5500억원 증액하는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해당 계약을 맺은 지 두달 만에 조합원들에게 해임됐다.

현 집행부는 당시 공사비 증액 계약을 인정할 수 없다며 전 집행부가 맺었던 공사비 증액 계약을 무효화시키고자 한다. 공사비 증액 계약의 근간이 되는 2019년 12월 관리처분총회에서 한국부동산원의 공사비 검증 결과가 공개되지 않았고, 공사비 증액 계약서에 연대 보증인의 개인 서명이 없어 계약서 자체가 무효라는 등의 이유에서다.

시공사업단의 주장은 다르다. 한국부동산원의 공사비 증액 검증은 총회 전 신청했고, 법적 의무사항도 아니라는 것이다. 계약서 연대보증에 대해서는 연대보증 자체가 착공 전 조합 해산 등 리스크가 클 때 받는 것이라, 이미 착공이 들어간 2020년 계약 당시에는 연대보증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당시 계약이 적법한 절차를 거친 만큼, 조합 집행부가 바뀌더라도 유효하다는 입장이다.

서울시는 양측의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중재자 3명을 파견해 10여 차례 중재를 시도했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조합은 지난달 21일 서울동부지법에 공사비 증액 변경 계약을 무효로 해달라는 내용의 소송을 제기했고, 오는 16일에는 총회를 열어 문제의 공사비 증액과 관련한 의결(의결 시점은 2019년 12월 7일)을 취소하는 안건을 처리할 방침이다.

15일 오전 서울 강동구 둔촌 주공 재건축 현장. 공사가 중단되면서 일자리를 잃은 인부들이 '공사중단 철회하라' 등의 항의성 현수막을 붙였다. / 김송이 기자

◇분양가 상한제에 자잿값 급등도 ‘걸림돌’

그러나 당장의 공사비 문제만으로 이 사업이 멈췄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둔촌주공 재건축 조합과 시공사업단의 갈등이 장기화 된 데에는 정부 정책과 자재비 인상 등의 외부 요인도 영향을 미쳤다. 우선, 시공사업단 입장에서는 인건비를 비롯해 각종 자잿값이 급등해 원가가 계속 오르는 상황이다. 철근콘크리트 연합회에 따르면, 작년 상반기부터 철물과 합판 비용 등이 50% 정도 급등했다.

더구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분쟁으로 러시아산 유연탄 의존도가 높은 시멘트 가격도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 유연탄은 시멘트 원가에서 30~40% 비중을 차지하는 핵심 원료다. 이에 각 시멘트 업체들은 시멘트 가격을 인상했고, 철근콘크리트 연합회 측은 시공사업단에 속한 종합 건설사들을 상대로 계약금액 인상을 요구하며 셧다운을 예고하고 있다. 시공사업단 입장에서 추가로 공사비 증액이 필요하다고 주장할 상황인 것이다.

정부의 분양가 옥죄기 정책도 사태가 여기까지 오도록 만든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둔촌주공은 철거 직후인 2020년 일반 분양에 나설 계획이었다. 그러나 정부가 주택도시보증공사(HUG)를 통해 분양가를 3.3㎡(1평)당 2978만원으로 통제하면서 이를 받아들이자는 조합원과 후분양을 하자는 조합원들 사이의 갈등이 심화됐고 분양을 비롯한 사업 일정이 지연됐다.

조합은 올해 3월 일반분양에 나설 예정이었으나, 분양가 산정을 둘러싸고 조합과 당국이 동상이몽인 모습을 보여 일반분양이 또다시 지연됐다. 당시 한국부동산원은 둔촌주공 택지비가 과도하게 높게 산출됐다며 강동구청에 보완을 통보했다. 결국 둔촌주공 택지비는 ㎡당 1864만원으로 확정됐는데, 업계에서는 둔촌주공 일반분양가가 3.3㎡당 3500만~4000만원에 형성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15일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공사 현장. 공사가 중단되면서 건물 골조가 노출된 채 방치돼 있다. / 김송이 기자

◇시공단·조합 모두 손해 불가피

공사 중단이 현실화되면서 조합과 시공단 양측은 모두 막대한 피해를 입을 전망이다. 우선, 시공사업단은 공정률이 52%에 이르는 만큼 기존에 투입된 공사비에 대한 금융 부담을 져야 한다. 시공사업단은 그동안 투입된 공사비, 조합에 빌려준 대여금 등 각종 비용이 2조5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조합원이다. 조합이 금융권으로부터 대여한 이주비 대출규모는 1조2800억원이다. 사업비 대출액 7000억원을 포함하면 금융권에 빌린 돈만 2조원으로, 연 이자부담만 800억원 규모다. 더구나 이주비 대출은 오는 7월, 사업비 대출은 오는 8월 만기가 돌아오는데 최악의 경우 금융권이 대출 연장을 거부할 가능성도 있다.

둔촌주공 재건축 조합은 애초 올해 상반기 내 4786가구를 일반분양할 계획이었지만, 시공단과의 정면충돌로 사실상 공급이 기약 없이 미뤄지게 됐다. 일반분양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입주 예정 날짜가 나와야 하는데, 법적 분쟁으로 공사가 중단된 상황에서는 이를 확정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둔촌주공 공사 중단이 장기화될 경우 대규모 공급을 예상했던 부동산 시장도 여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조합과 시공사업단은 서로 물러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조합은 지난달 21일 서울동부지법에 공사비 증액 변경 계약을 무효로 해달라는 내용의 소송도 제기한 데 이어, 시공사업단의 공사중단 기간이 10일 이상 계속되면 계약 해지까지 추진하겠다는 초강수의 맞불을 놓은 상태다.

둔촌주공 조합 관계자는 “시공사업단은 적법한 절차를 통해 공사비 증액 관련 계약을 했다고 하지만, 총회에서 조합원들에게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아 의결이 이뤄지도록 했다”면서 “대다수 조합원들은 금융 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시공사업단에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시공사업단도 물러설 수 없다는 방침이다. 시공사업단 관계자는 “조합이 공사가 10일 이상 중단될 경우 시공사를 해지한다고 하는데, 시공사를 해지할 경우 그에 대한 가처분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며 “이미 둔촌주공 공사현장에 대한 유치권을 행사 중이기 때문에 시공사 계약이 해지되더라도 토지 등의 매각을 통해 기존에 투입된 비용을 마련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