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보증금의 80%까지는 대출이 나오고요. 대출 이자는 저희가 2년 간 지원해드리는 조건입니다. 보증보험에 가입하실 수 있으니 못 돌려받을 걱정은 붙들어 매세요.”

서울 강남구 역삼동 저층 주거지 전경.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최상현 기자

서울 강서구의 한 신축 오피스텔은 전용면적 26㎡ 투룸을 3억4000만원에 세입자를 구하고 있다. 인근 공인중개업소에 따르면, 해당 면적대의 신축 오피스텔 전세 시세는 2억5000만~2억8000만원 정도에 형성돼 있다.

이 오피스텔을 건축하고 임대하는 회사 관계자는 “‘이자 지원’이 들어가기 때문에 주변보다 조금 비싼 것”이라면서 “전세대출이나 보증보험 등이 이미 다 세팅이 돼있어서 전체 가구의 절반 이상이 안심하고 계약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세입자는 공짜로 좋은 집에 살아서 좋고, 회사는 전세금으로 다른 신축 사업을 빠르게 진행할 수 있어서 좋은 윈윈(win-win) 계약”이라고 덧붙였다.

8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에서 제공하는 전세보증보험 제도를 악용한 ‘이자 지원 전세’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시세보다 높은 전세금을 받는 전형적인 ‘깡통전세’로, 대신 세입자에게 이자를 지원하고 퇴거시 발생할 전세금 미지급 위험은 보증보험을 통해 회피하겠다는 수법이다.

애초부터 부실한 전세계약이지만 임대인도 세입자도 피해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대신 그 피해는 HUG나 한국주택금융공사, 서울보증보험 등 전세보증보험 기관에 전가되는 구조다.

HUG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보증금반환보증 가입 건수는 23만2150건으로 전년(17만9374건)보다 29.4% 증가했다. 가입 금액은 전년(37조2595억원)보다 38.4% 늘어난 51조5508억원으로 집계됐다. 최근 몇년 간 전셋값이 오른 것을 감안하더라도 가파른 상승세다.

특히 아파트보다 빌라와 오피스텔에서 전세보증 가입 건수와 금액이 늘어난 비율이 훨씬 높았다. 이러한 ‘이자 지원’ 행태는 시세가 불분명해 전세금을 높게 받아도 보증보험 가입이 되는 신축 빌라·오피스텔에서 주로 이루어진다.

전세보증보험 운용 규모가 가장 큰 기관인 HUG의 아파트 전세보증 가입 건수는 지난 2019년 9만6718건에서 2021년 13만6902건으로 41.5% 늘었고, 보증 금액은 21조192억원에서 34조5242억원으로 64.3% 늘었다.

반면 오피스텔 전세보증 가입 건수는 같은 기간 1만7662건에서 3만2553건으로 84% 늘었고, 보증 금액은 2조6325억원에서 5조6166억원으로 2배가 넘게 뛰었다. 연립·다세대(빌라) 가입 건수도 해당 기간 2만9725건에서 4만9638건으로 66% 늘었고, 보증 금액은 5조2804억원에서 9조3354억원으로 76% 올랐다.

주택금융공사가 운영하는 ‘전세지킴보증’ 가입 건수와 금액도 각각 1195건, 2246억원으로 1년 전보다 34.9%, 44.3%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HUG 관계자는 “일부 임대인이 신축 빌라·오피스텔의 주택가격 산정기준을 악용해 보증금을 편취하는 사례가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면서 “보증을 악용한 악성 임대인은 집중관리 대상자로 선정하여 형사조치 및 적극적인 채권회수 활동를 통해 손실 가능성 예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세 대출에 대한 이자를 지원하는 수법을 사용해 보증보험을 악용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하게 파악하지는 못한 단계”라면서 “비슷한 사례가 지속적으로 포착될 경우 주택가격 산정기준을 정교화하는 등 제도 개선을 모색하겠다”고 덧붙였다.

김예림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는 “전세 보증보험만 가입하면 세입자는 피해가 없어 깡통전세라는 것을 ‘알고도’ 들어가는 사례가 많다”면서 “‘이자 지원’이라는 수법은 이보다 한 단계 더 나가서 적극적으로 보증보험을 악용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명예교수도 “언뜻 보면 세입자에게 손해가 없어보이지만, 임대인의 자금 흐름에 문제가 생길 경우 약속한 이자를 못 받게 될 수도 있어 유의해야 한다”면서 “이런 사례는 결국 국가에 손해가 전가되는 만큼 보증보험 기관들이 엄밀하게 제도를 운영하는 것이 요구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