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이 워낙 얼어붙은 탓에 이번 달에 0건, 지난 달에는 2건 밖에 매매를 못했는데, 선거 당일인 어제만 매수문의 2건이 들어와서 ‘유력하게’ 진행 중입니다.”(여의도 장미아파트 인근 공인중개업소)

3월 1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삼익아파트 전경. /최상현 기자

지난 10일 만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B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주민들 사이에서 윤석열 당선인이 재건축 규제를 획기적으로 완화해 줄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면서 “어떤 매도인은 오늘 선거결과 나오고 호가를 1억원 올렸다”고 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반포동 일대의 분위기도 비슷했다. 대치동 은마아파트 인근 S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토지거래허가제 때문에 가격이 눌린 감이 있어서 이전 호가보다 1억~2억 더 올려도 다른 강남지역보다 싸다는 느낌이 드는 상황”이라면서 “재건축 규제가 풀리면 이젠 정말로 추진될 것이란 기대감이 커 매도자들이 한결 느긋해졌다”고 했다.

◇ “재건축 급매물은 이제 없다… 하반기에 호가 상승 더 거셀 듯”

대선 결과가 나오자 강남 3구와 여의도 등 서울 주요 재건축 단지는 급매물이 회수되고 매수 문의는 점점 늘고 있다고 한다. ‘똘똘한 한 채’로 분류되는 지역의 물건일수록 지금 팔지 말고 좀 더 두고 보자는 분위기다. 재건축 사업에 대한 기대감이 무르익고 있는 데다 세금 부담도 완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생겼기 때문이다.

윤석열 당선인은 ▲도심 내 용적률 최대 500%까지 상향 ▲준공 30년 이상 공동주택 정밀안전진단 면제 ▲분당·일산·중동·평촌·산본 등 1기 신도시 주택리모델링 규제 완화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완화 등을 공약으로 내놨다. 또 1주택자 뿐 아니라 다주택자를 대상으로 한 취득세·양도세·보유세 감면도 공약했다.

3월 10일 서울 여의도동 시범 아파트 전경. /최상현 기자

서울 압구정동 2·3·4·5구역 인근 공인중개업소들에 따르면 거래할 수 있는 매물이 줄어드는 추세가 감지된다고 한다. 오세훈 시장이 35층 룰을 풀어준다는 내용의 서울플랜 2040을 발표한 데다 윤 당선인까지 재건축 정비사업 활성화를 약속한 마당에 늦게 팔수록 제 값을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 섰기 때문이다.

압구정동 Y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여기는 토지거래허가제로 묶여있어 실거주자가 아니면 매수할 수 없고, 대출도 어려워서 현금부자만 매수할 수 있다”면서 “그래도 사겠다는 사람이 있는데다 선거 이후로 문의는 더 늘었지만, 팔겠다는 사람들 반응은 뜨뜻미지근 하다”고 했다. 매도자 우위 시장 분위기라는 뜻이다.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와 ‘우선미’로 통칭되는 개포 우성·선경·미도 아파트의 분위기도 비슷했다. 실거래가 보다 싸게는 안 판다, 현재 호가보다 조금 올려 받겠다는 분위기가 강해졌다고 한다. 대치동 J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개포동 신축 아파트가 끝없이 올라간다고 하지만, 이 일대가 재건축이 되면 개포동보다 훨씬 좋은 값을 받을 수 밖에 없다”면서 “투자까지 감안한 실거주를 하려면 개포동보다 대치동이 낫다는 계산을 한 사람들의 매수 문의가 많다”고 했다.

그동안 재건축이 오래 지체됐던 여의도 일대도 윤 당선인 취임 이후 사업에 탄력이 붙을 거라는 기대가 커졌다. 여의도 시범 아파트 인근 A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시범 아파트는 올해로 준공 52년차가 됐다. 여느 단지였다면 이미 재건축을 한번 하고 슬슬 리모델링 얘기가 나올 정도 시기”라면서 “재건축에 우호적인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현재 추진 중인 신속통합기획도 더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목동도 재건축 기대감이 부쩍 높아진 분위기가 감지된다. 그간 발목을 잡아왔던 안전진단기준이 완화되면서 재건축 정비사업이 속도를 낼 것이란 전망에 따른 것이다. 그간 목동 1~14단지 중에서 안전진단을 통과한 곳은 6단지 한 곳 뿐이다.

목동의 S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9단지와 11단지는 적정성 검토에서 떨어졌는데, 이제는 정책 방향이 달라졌으니 당연히 통과되리라고 본다”면서 “매물을 알아보는 매수자들에게 9단지와 11단지를 추천하고 있는데 중개업소사이의 경쟁도 치열해 서로 집주인에게 값을 더 잘 받아주겠다고 읍소하고 있다”고 했다.

반포 일대는 갭투자를 하려는 이들의 매수 문의가 많은 모양새였다. 강남 3구 중에서 반포와 송파 일부 지역만 토지거래허가제 구역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반포 J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여기는 전세를 끼고 살 수 있다보니 얼마가 있어야 갭 투자를 할 수 있느냐는 문의가 많이 들어왔다”면서 “살던 집을 팔고 강남 3구로 이동하겠다는 젊은 층이 많았던 것이 특징이고 가장 먼저 묻는 아파트는 한강 조망권을 가진 신반포 2차”라고 했다.

기대감이 컸지만 앞으로 실거래가가 얼마나 가파르게 오를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대출 규제가 강해지고 세금 부담이 커지면서 주택 매수 수요가 일시적으로 줄어든 가운데, 눈에 띄는 규제 완화가 없다면 재건축·재개발 기대감이 아무리 커도 매수여력이 있는 사람들은 한정적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박합수 건국대학교 겸임교수는 “5월이 지나고 하반기로 갈 수록 재건축 아파트의 몸값이 더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6월 1일 중심으로 기산되는 재산세·종부세 부담을 도저히 넘지 못하는 일부만 상반기에 거래되고 하반기부턴 호가 오름세가 가팔라질 것”이라고 했다.

◇ 1기 신도시 “이제 우리도 리모델링 아닌 재건축 수혜지”

분당과 일산 등 윤석열 당선인이 취임 이후 특별법을 만들어 정비사업을 적극 진행하겠다고 밝힌 1기 신도시에서도 집값이 오를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었다. 이전까진 리모델링 사업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면 이젠 재건축 정비사업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1기 신도시의 다수 단지는 준공 30년차가 임박한 상황이다. 용적률 상향과 안전진단 면제 등 공약이 실현되면 적절한 시점에 재건축이 연쇄적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 윤 당선인은 평균 용적률이 169~226%에 불과한 1기 신도시에 토지용도 변경이나 종상향을 통해 용적률을 추가해 10만 가구 이상을 추가 공급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3월 10일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주엽동 문촌마을16단지뉴삼익 아파트에 리모델링 조합설립 창립총회 현수막이 걸린 모습. /최상현 기자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주엽동 인근 D중개업소 관계자는 “이 근처에 재건축 연한이 곧 도래하는 단지가 20곳 정도 되는데, 워낙 규제로 꽉 막혀있다 보니 저평가가 이어지는 상황이고 일부는 재건축 대신 리모델링으로 선회한 것”이라면서 “일산은 용적률이 230% 밖에 안되는데, 이걸 상향시켜주고 안전진단도 잘 통과할 수 있게 여건을 마련해주면 리모델링 추진 단지들도 재건축으로 선회할 것”이라고 했다.

분당 수내동의 S중개업소 관계자는 “재건축 정비사업의 수익성이 안 나올 때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건데, 용적률이 오르면 굳이 리모델링을 할 필요가 없는 만큼 여기도 재건축부터 재차 검토할 수 밖에 없다”면서 “이제 분당은 리모델링 수혜지가 아니라 재건축 수혜지로 바꿔봐야 하는 만큼 값은 더 오를 것”이라고 했다.

‘분당 재건축 연합회’라는 이름 하에 시범단지와 상록마을 우성, 한솔마을 한일 등 27개 단지가 정비사업 추진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분당도 윤 후보 당선을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들은 오는 26일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 어린이공원에서 정비계획 수립을 촉구하는 결의대회도 개최할 계획이다.

이종석 분당 시범단지 재건축추진위원장은 “대부분 단지가 준공 시점이 비슷한 분당은 재건축 첫발을 늦게 뗄수록 단지 간에 이해관계가 얽히며 사업에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다”면서 “인허가권을 가진 지자체장 선거까지 지켜봐야겠지만, 1기 신도시에 안전진단이나 용적률 등에서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는 후보가 당선돼 부담을 덜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